【팩트TV】무슨 특별한 눈물이 있으랴. 그냥 슬프니까 흘리는 것이다. 남보다 착해서도, 동정심이 많아서도 아니고 그냥 눈물이 나와서 울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송파 세 모녀가 자살했을 때 아득한 심정으로 눈물로 하느님을 불렀다. 오늘 또 하느님을 찾는다. 10년 동안 과일장사를 하다가 번개탄을 피워놓고 과일 트럭 안에서 자살한 50대 남성을 생각하며 눈물이 나는 것이다. 하느님, ‘인간은 그렇게 죽어야 합니까.’
새삼스럽게 거론할 것도 없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죽느냐. 태어나고 죽는 것은 인간의 타고난 운명이니 새삼 슬퍼할 것도 아니지만 왜 이렇게 눈물이 날까. 아픈 아내, 아들 딸, 눈이나 제대로 감았겠는가.
40대 가장이 치매를 앓는 70대 아버지와 함께 목숨을 끊었다. 생활고와 빚, 희망은 보이지 않고 치매 앓는 부친과 함께 세상을 떠나 남은 가족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고 싶은 것은 아니었을까. 유서에는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치매 앓는 아버지는 자신이 아들 손에 죽는 줄이나 알았을까.
지금 이 순간에도 번개탄 냄새를 맡으며 이승을 하직하는 생명이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잠든 치매 아버지 곁에서 번개탄을 피우는 가난한 아들이 있을 것이다. 시퍼런 강물을 바라보며 어린 딸을 가슴에 꼭 안은 채 뛰어 내리는 엄마가 있을 것이다.
질병과 가난이야 어쩌겠는가. 타고난 팔자는 도리가 없다니 그 역시 어찌 하겠는가. 그러나 이승을 떠나는 그 순간에도 ‘죽기 참 억울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까. ‘난 지은 죄도 없이 깨끗이 열심히 살았는데 이렇게 죽어야 하는가.’ 하늘을 원망하는 사람은 없을까. 아니 하늘을 원망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태어난 조국이라는 이 나라를 원망하는 사람은 없을까.
글을 쓰면서 자꾸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하루 노역장에서 일하는 일당이 5억이 된다는 ‘허재호’와 그런 판결을 내려준 판사다. 그가 일당을 5억을 받던 10억을 받던 그것이 과일장사 아저씨와 치매 부친을 둔 아들과 어린 딸을 안고 강에 뛰어드는 엄마와 아무 상관이 없는데도 자꾸 그의 얼굴이 떠오르는 이유는 세상이 너무 공평하지 않다는 생각 때문이다.
장롱 속에다 수억을 넣어두고 쓰는 대통령 형님이나 버스 값이 70원이라는 재벌 정치인의 경우는 너무 멀리 떨어진 얘기라서 그냥 웃어버릴 수 있지만 500억 벌금을 절반으로 깎아주고 그걸 하루에 5억씩으로 탕감해 주는 판사님의 처사는 비록 이승을 하직하는 마지막 순간에도 잊을 수가 없을 것 같다.
OECD에 가입해서 세계선진국에 진입했다고 축배를 든 것이 어제 같은데 그들 나라에서 세 모녀가 가난으로 자살했다는 뉴스는 듣지 못했다. 뉴스거리가 되지 않아서 보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일까.
대통령 선거 때 국민들은 후보들이 저마다 내거는 공약으로 이제 선거만 끝나면 낙원에서 살 줄 알았다. 아니 낙원은 아니더라도 가난으로 목숨 끊은 일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그 풍성했던 분홍빛 복지공약은 모두 어디로 갔는가. 늙은이들 표를 박박 긁어가던 기초연금은 어디로 갔는가.
설사 공약이 행방불명이 되어도 목숨이 이렇게 허망하게 사라질 수는 없는 것이다. 이것은 국가가 죄를 국민에게 짓는 것이다. 행복은 못 줄망정 목숨까지 가져가느냐.
재벌의 목숨, 과일장사의 목숨.
생명을 스스로 정리하는 국민들이 왜 이리도 많은가. 똥통에 거꾸로 매달려서도 살고 싶은 게 목숨이라고 했다. 모두 모두 줄 테니까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의미가 무엇인가. 목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목숨을 던진다. 가난 때문이다.
재벌의 대장은 죄 짓고 감옥에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는데도 연봉을 수백억 씩 받는다. SK그룹 회장이 그렇단다. 그는 작년에 한 달 빼고는 구치소에 있었는데 보수로 301억 받았단다. 하루에 1억씩 챙긴 것이다. 허재호는 5억인데 나는 왜 1억이냐고 자존심 상한다고 할까. 51개 재벌그룹 경영진 중 연봉이 5억 이상인 등기임원은 모두 292명, 10억 원 이상은 145명이었다.
‘개천 나무래서 뭘 하나. 눈 먼 탓이나 해야지.’ 앞이 안 보여 개천에 빠진 봉사가 한 말이다. 누가 너더러 돈 없이 살라고 했느냐. 능력 없어서 가난한 걸 어쩌란 말이냐. 그렇다. 능력이 없어서 가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성실하게 살아가는데도 목숨을 끊을 정도로 가난하다면 이건 너무 슬프다. 경향신문 조형국 기자의 기사를 인용한다. 이해를 부탁한다.
고씨는 10여 년 전부터 트럭에 과일과 채소 등을 싣고 지하철역과 아파트 단지 등을 돌며 장사를 했다. 인근 상인들은 고씨를 ‘수완이 좋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으로 기억했다. 정씨는 “고씨는 억지로 손님을 붙잡는 일 없이 정직하게 장사했다”며 “점잖은 성격 때문에 주변 상인들도 좋아했다”고 말했다. 고씨는 이른 새벽 가락시장, 노량진시장 등을 오가며 물건을 떼어와 늦은 밤까지 장사를 하고 들어갔다. 해가 저물면 주택가에서 야시장으로 옮겨 장사를 이어갔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했다.
최근 기업형슈퍼마켓 등이 늘면서 노점은 장사가 안 돼 형편이 어려워졌다. 생전에 고씨가 장사를 했던 대림동 아파트 단지 앞에는 오가는 사람들이 많았지만 노점에 눈길을 주는 이는 없었다. 주민 김모씨(44)는 “인근 마트에서 한꺼번에 장을 봐 오니까 트럭에서 사 먹은 지 오래됐다”고 했다.
고씨는 최근 주변 상인들에게 “장사가 힘들다”고 토로했다고 한다. 고씨는 부인과 아들, 딸 등과 월세 단칸방에서 살았다. 부인은 몸이 아파 살림살이를 거들지 못했다. 최근 1년여간 월세를 제때 내지 못해 집주인에게 독촉을 받기도 했다.
결국 고씨는 10년 넘게 자신과 가족의 삶을 지탱해 준 과일 트럭 안에서 쓸쓸히 생을 마감했다. 고씨의 형은 “동생이 일용직으로 일하는 내 처지를 알면서도 최근 도움을 청해왔다”며 “오죽 힘들었으면 그랬겠느냐”면서 안타까워했다.
이 정도면 성실하게 살아 온 사람이었다. 사람들은 성실하게 열심히 살면 희망이 있다고 한다. 성실하게 살았고 희망이 있었는데도 목숨을 끊었단 말인가. 그건 아닐 것이다.
죽을 용기가 있으면 그 용기로 살라고 한다. 그가 이렇게 묻는다면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용기 있는 당신이 대신 살아 주시겠습니까”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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