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부끄럽다. 4.19도 잊었다.-
수유리 419 민주묘지에서 통곡소리를 들으라.
이 기 명(칼럼니스트)
1960년 4월19일, 서울거리는 독재타도의 함성과 경찰이 쏘아대는 총성과 질주하는 차량들, 바로 전쟁터였다. 전쟁이 별거냐. 사람이 사람을 향해 총을 쏘고 총알을 맞아 피 흘리며 쓰러져 죽으면 전쟁이다.
전쟁은 적을 죽이기 위해 총을 쏜다. 그러나 1960년 4월19일 경찰이 쏜 총은 적을 향한 것이 아니고 이 나라의 젊은이들을 향해서였다. 총알을 맞아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독재정권이 자행한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위를 한 것이 죄며 독재자 이승만의 하야를 요구하는 것이 죄였다.
버스에 매달리고 트럭위에서 목이 터져라 독재타도를 외치던 젊은 대학생들은 경찰이 쏜 총에 맞아 낙엽처럼 떨어졌다. 아스팔트에 낭자한 선혈, 흰 가운을 입은 의대생들이 들것을 들고 시체와 부상자들을 날랐다.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아! 슬퍼요 아침하늘이 밝아오며는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 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 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들였어요
오빠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 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 먹고 저녁도 안 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 19일 그리고 25일과 26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 말 안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이 시는 1960년 4·19항쟁 당시 서울수송초등학교 강명희 어린이가 쓴 것이다. 초등학생 어린이도 왜 오빠 언니들이 총을 맞았는지 너무나 분명히 알고 있었다. 해마다 4월19일이면 떠오르는 이 한 편의 시는 아비규환의 서울거리를 악몽처럼 떠오르게 하며 살아남은 부끄러움에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한다. 견딜 수 없는 분노로 그 때 거리를 달리던 25세 젊은 몸은 이제 삭쟁이처럼 늙어가는 몸을 한탄하며 긴 한숨을 쉰다.
민주주의는 피를 마시며 피는 꽃이라 했던가. 4월 19일, 경찰이 쏜 총탄에 맞아 숨 진 젊은 몸은 지금 수유리 419 민주묘지에 잠들어 있다. 아니 잠들지 못하고 분노의 눈을 부릅뜨고 있을 것이다. 총칼로 민주헌정을 뒤엎은 군사쿠데타로 독재는 끈질기게 이 땅을 더럽혀 왔다. 518로 다시 광주를 피로 물들이고 망월동 묘지는 또 다른 419 민주묘지로 우리를 슬프게 한다.
이제 무슨 낯으로 419를 입에 담을 수 있으랴. 서대문 경무대라고 하던 이기붕의 집 앞에 함께 있다가 다리에 총을 맞은 친구는 이제 늙어서 저 세상으로 갔다.
53년이 흘러 이제 잃어버린 비극의 신화가 되어 버린 419. “419가 뭐에요?” 라고 묻는 것이 당연한 것이 되어 버린 오늘의 현실에서 다시 국정원 선거개입 의혹을 들어야 하는 늙은 귀는 역사의 악순환을 저주할 기운도 없다.
조폭이 대학총학생회를 장악하고 돈을 횡령했다는 기사를 보며 희망을 접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4.19일 집에 책가방을 두고 엄마한테 유서같은 편지를 써 놓고는 다시 시위현장으로 갔다가 숨진 어린 여학생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은 늙은이 망녕이라고 해도 할 수 없다.
이명박은 4대강을 파헤치는 데 12조원을 쏟아 붓고, 해 먹었다 하면 수십억 수백억이다. 이들을 보며 침묵하는 학생들이 선거부정 규탄시위를 한다면 오히려 바보가 아닌가. 이들이 너무 지쳐서 그럴 것이다. 반값 등록금 공약에 속고 군복무 단축공약에 속고 좁은 취직문에 몸이 찢기고 만신창이가 된 가슴속에 419가 살아 있다면 오히려 이상할 지경이다.
그리고 53년 전 <쏘라고 준 총>에 의해 쓰러진 시체속을 달리던 이제는 나이 먹은 늙은이들은 정의도 불법도 불의도 망각한 채 머리가 텅 빈 산송장으로 살아간다. 보수 꼴통 소리를 들어가며 송장처럼 살아간다.
### 어느 세상인들 죄 진 놈은 있다.
배고프면 담장을 넘는다. 배고프다고 조르는 손주 새끼 주려고 과자 한 봉지 훔치던 할아버지는 현행범으로 수갑을 찬다. 죄를 졌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 해도 벌은 받아야 한다. 그러나 괜히 억울하다. 보는 국민들도 억울하다. 수백언 해 먹은 놈은 휠체어 타고 법정을 드나든다.
죄 진 놈은 공평하게 벌을 받아야 국민들이 조용하다. 어느 놈은 벌을 받고 어느 놈은 죄를 짓고도 떵떵거리면 나라꼴이 안 된다. 선거는 공정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왜 선거를 하는가. 왜 부정선거를 규탄하며 총알받이가 되어 수유리 민주묘지에 누워 있는가.
전 국가정보원장 원세훈의 지시사항을 담았다는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에는 정치·사회·문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 국정원이 개입하도록 지시·주문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여기서 굳이 밝힌다면 잔소리다.
이제 국정원 대선개입을 조사한다고 한다. 남재준 신임 국정원장은 군대 시절 강직한 장군으로 소문난 사람이다. 그가 군 재직시절 함께 했던 참모들과 함께 국정원에 입성했다. 국민들의 눈이 그에게 쏠려 있다.
검찰총장 채동욱을 국민들이 주시한다. 대표적인 권력기관의 지휘부가 바뀌었다는 것은 나중에 도로아미타불이 되도 우선은 국민의 기대를 모으고 있다.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기를 국민 모두가 두 손 모아 기도한다.
도둑놈도 담장을 넘을 때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다짐을 한다고 했다. 다시는 나쁜 짓 안한다는 것이다. 먹고 살수 없어서 도둑질을 한다면 일말의 동정이라도 할 수가 있다. 더 이상 말을 하면 욕 먹는다.
왜 세상이 이 모양이 됐느냐고 어른이란 사람들이 한탄을 한다. 말 할 자격이 없다. 그들이 보여주는 행위는 고스란히 젊은이들이 보고 배운다. 약속은 지키지 않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정치지도자들이 약속을 지켜야 국민이 정치를 믿는다.
이명박의 말은 들으나 마나라는 말이 있다. 자신의 발언이 동영상으로 두 눈뜨고 존재하는데도 도리질이다. 박근혜 대통령도 후보시절 전 국민이 주시하는 대선토론회에서 전두환에게서 받은 6억 원을 내 놓겠다고 했다. 지금은 돈이 없을지 모르나 날짜 박아서 약속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국민들이 믿는다. 반값 등록금 약속을 지킨 박원순 시장은 시민들이 믿지 않는가.
지난 선거에서 서울시립대 학생들의 부재자 투표율은 80%가 넘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정치인이 약속을 지키면 국민도 약속을 지킨다는 증거다.
오늘의 젊은이들에게 정의를 말해 봐야 코웃음 친다. 민주주의가 밥 먹여주냐. 취직시켜 주냐. “어른들 한 일이 뭐냐. 온갖 못된 짓 다 하고 우리는 취직도 못하고 알바로 지쳐 쓰러질 판인데 정의를 위해 또 피흘리란 말인가요.”
할 말이 있는가. 학생들이 피 흘린 4.19로 민주주의 찾아주니 권력투쟁 싸움질 하다가 박정희에게 정권 넘겨줬다. 5.18도 다르지 않다. 정치지도자들의 죄는 바로 자신들이 민주주의를 독재자에게 진상했다는 것이다. 그들은 민주주의를 말 할 자격이 없다. 제1야당이라는 민주당의 꼴을 보라.
세상을 썩지 않게 만든다는 언론은 어떤가. 터진 입은 있어도 말하기 어려울 것이다. 나라를 망친 또 하나의 주범은 언론이다. 진흙탕 같은 언론환경 속에서 고군분투 정론을 펴고 있는 몇 안 되는 언론인이 존경스럽다.
정치지도자들은 깊은 밤 수유리 419 민주묘지를 찾아 봐라. 거기서 숨 죽여 울고 있는 영령들의 울음소리를 들을 것이다. 국민은 419을 잊었다.
이기명 팩트TV 논설고문
<사진제공 - 한국학중앙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