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이기명칼럼】 고교 시절, 국어 선생님께서 부르신다. 교무실에 갔다. 선생님이 대뜸 하시는 말씀.
‘기명아. 너 작가 돼야겠다.’
느닷없이 무슨 말씀인가. 선생님 책상위에 교내 신문이 펼쳐져 있다.
‘네가 쓴 수필 읽어봤는데 잘 썼더라. 계속 공부해라.’
공부도 시원찮고 운동이나 하는 내게 느닷없이 글 잘 쓴다는 칭찬하셨던 선생님. 그 선생님은 나중에 동국대학교 대학원장을 역임하신 이동림 선생님이시다. 어렸을 때부터 책 읽기를 엄청나게 좋아했지만, 작가가 된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했다. 그런 내게 선생님의 말씀은 충격이었다. 내가 작가가 돼? 그다음부터 책을 읽을 때마다 선생님이 하신 말씀이 지워지지 않았다. 교내 신문·잡지에 글을 자주 쓰면서 애들 사이에선 내가 앞으로 작가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진짜 내가 작가가 될 수 있는가.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때 하신 선생님의 말씀이 내가 작가가 된 계기가 된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팔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타고난 팔자.
오늘 한겨레신문에 교분이 있는 논설위원 한 분이 쓴 칼럼을 관심 깊게 읽었다. ‘어쩌다 대통령의 시대’라는 칼럼이다. 벌써 짐작하는 국민이 계실 것이다.
조선일보의 김대중 칼럼은 ‘그야말로 어쩌다 대통령이 된 사람’이라는 제목이고 윤 당선자를 지칭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윤 당선자 자신도 “국민이 불러냈다”고 누누이 발언했으니 ‘어쩌다’는 그렇게 틀린 말이 아닌 것 같다.
우리 인생사에서 ‘어쩌다’는 참으로 많다. 어쩌다 돌부리를 잘못 차서 발가락이 부러지는 경우도 있고 생판 모르는 남녀가 ‘어쩌다 눈이 맞아서’ 평생을 함께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대통령은 다르다. 설사 ‘어쩌다 대통령이 됐다’ 해도 한번 대통령이 된 다음에는 ‘어쩌다’로 넘겨 버릴 수가 없다는 얘기다.
지금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살 집 때문에 국민이 피곤하다. 과거에는 대통령이 당선되면 그가 야당이든 여당이든 따질 것 없이 청와대에 들어가 임기가 다 할 때까지 살았다. 정치를 잘하든 못하든 최소한 사는 집 문제로 시끄럽지는 않았다.
이승만·박정희·전두환 같은 독재자도 별말 없이 청와대에서 살았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평생 대통령 할 줄 알았다가 국민에게 쫓겨났지만, 청와대란 집 가지고 말썽을 일으키진 않았다. 그러나 이번 당선자는 청와대가 영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이런저런 이유를 대지만 국민 여론은 이해 못한다. 연필과 공책이 나빠서 공부를 못한다는 농담도 있지만, 청와대를 거부하는 당선자를 이해 못 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무속에 혹해 있다는 오해까지 사게 되는 것이다.
당선자는 당선 전 집무실 이전으로 광화문 시대가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불과 3일 만에 용산으로 바뀌었다. 말 바꾸기가 아니라 처음부터 용산을 염두에 둔 것이고 국민을 속인 것이라면 뭐라고 할 것인가. 대통령의 말은 천근의 무게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만 신뢰가 간다.
내 경우에 ‘어쩌다’ 작가가 되었지만, 지금까지 밥 벌어먹고 80을 넘겨 90 가까이 살고 있다.
당선자는 용산으로 이사해야 정치가 잘 되는 것으로 여기는지 모르지만 이사라는 게 그렇게 쉬운 게 아니다. 보통 가정도 이사하려면 여러 가지 해야 할 일들이 많다. 하물며 대통령이야 말해 뭘 하랴. 당연히 이런저런 말들이 많이 나오게 마련이고 국민은 불안하다. 비용도 몇천억 운운 하니 기가 막히다. 이런 돈을 산불이나 코로나로 절망한 국민위해 쓰면 공덕비 세워줄 것이 아닌가.
■정치도 국민이 먼저다.
정치하는 사람들 보면 이해득실 따지는 데 여념이 없다. 그러면서도 입으로는 국민을 판다. 때문에 국민들은 정치인이라면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불신한다. 국민 없으면 누구하고 정치할 것인가. 이러니저러니 해도 국민에게 칭송을 듣는 정치를 하는 것보다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는가. 당선자의 지지율 저하는 심각한 수준이다. 심각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어쩌다가 작가가 됐지만 최선을 다 하면서 살고 싶다. 설혹 ‘어쩌다가 대통령이 된 당선자’나 정치인들도 국민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이건 ‘어쩌다’ 하는 말이 아니고 정말 많이 생각하고 하는 말이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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