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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태우칼럼] 엔딩을 위하여!
등록날짜 [ 2014년03월27일 11시06분 ]
팩트TV뉴스 남태우 칼럼니스트
 
【팩트TV】단색의 정치와 풀리지 않는 민생경제. 숨이 탁탁 막히는 것이 요즘 누구나 동일하게 느끼는 심정일 것이다. 그래서 오늘은 슬며시 여러분들을 극장으로 모시려 한다.
 
여러분들은 극장하면 무엇이 떠오르시는가? 아마 세대 간에 뚜렷한 인식차가 있을 듯하다. 청소년을 비롯한 젊은 층은 팝콘과 콜라, 안락한 의자, 저렴한 데이트, 화려한 멀티플렉스 등을 떠올릴 것이다.
 
중장년층은 오징어, 땅콩, 정전, 빛바랜 화면, 매표구 아가씨, 검표원, 청소년관람불가 영화를 몰래 보러 온 고등학생을 잡아내기 위해 온 정열을 쏟으시는 선생님, 극장 맨 뒤 높은 자리에 앉아 엄숙한(?) 검열을 하고 있는 경찰관과 그 옆에서 소주를 먹는 게 목적인지 영화를 보는 게 목적인지 모를, 병나발 부는 정체불명의 동네 아저씨들, 문화교실 온 학생들, 그들 사이의 이유 없는 막연한 경쟁의식 등이 펼쳐지던 그런 공간이 아닐까 싶다.
 
상영영화도 지금은 동 시간에 여러 상영관을 선택할 수 있는 공간적 개념의 영화가 주였다면 과거에는 동시상영관으로 대표되는 단관극장에서 하루 종일 여러 편의 영화를 보았던 시간적 개념의 영화가 떠오를 것이다. 불과 몇 십 년에 지나지 않지만, 이렇듯 영화는 다양한 의미로 서민들에게 다가온 오락이자 예술이었다.
 
같은 점이 있다면 언제나 2시간 남짓 그 큰 스크린 속으로 우리를 빨아들이고 여름철에는 더위를, 겨울철에는 추위를 막아준 공간이자 시간여행의 좋은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이제 또 세월이 흐르면 아마 더욱 안락한 영화들이 우리를 찾을 것이고 극장은 그 목적을 성실히 수행하기 위해 우리를 유혹할 것이다. 상영영화의 상황에 걸 맞는 냄새와 진동 등 오감을 자극할 만한 요소로 무장하여 경기가 좋든 나쁘던 그 나름의 변신을 거치며 3D4D든 언제나 우리를 찾을 것이다.
 
어밴져스2’를 보든 고교얄개를 보든 우리는 이 매력적인 매체에 빠지지 않고 배겨낼 재간은 없으리라. 어제도 그랬듯이 오늘도 내일도 서민의 정겨운 친구이자 스승이자 애인인 영화는 극장이라는 매력적인 공간에서 우리를 찾을 것이다. 빛바랜 화면너머 미래를 꿈꾸던 그 시간은 다시 올 수 없지만 초여름 그들의 프러포즈에 빠져 마음껏 과거와 미래를 넘나들어 보면 어떨까?
 
 
영화는 언제 보셨습니까?
 
 
자 이제 정겹든 안락하든 극장에 들어 왔다. 그런데 여기서 궁금한 것은 우리는 그 흔한 영화를 과연 끝까지 보고 있는가?’ 라는 의문이다.
 
예전에 한 극장에서 감동적인 영화를 두세 번씩 본 적이 있는 분들은 최근의 관람환경에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매 회 상영이 끝나면, 아니 정확히 말해 끝이 나지 않은 - 음악이 흘러나오고 엔딩크레딧이 올라가는 - 상황에서 환하게 불이 켜지고 밝은 미소의 여직원이 스크린 앞에서 연신 인사를 해대면 우리는 그 친절함에 놀라기만 할 뿐, 그 것이 얼마나 영화가 가지는 예술성을 죽이는 일인지 느낄 틈도 없이 채근 받듯 극장을 빠져나가야만 한다.
 
이 놀라운 속도의 인사는 감동에 복받쳐 여운을 느끼며 생각과 마음을 정리하는 관객들에게 다양한 영화적 정보를 받아들이고 음미하는 시간을 모조리 빼앗는 월권행위이다. 그리고 비록 관람료를 지불한다 하더라도 창작자의 예술행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도 갖추지 못하게 하는 행위라 아니 할 수 없다.
 
엔딩크레딧에는 그 영화의 시작과 끝이 모두 잘 나와 있다. 어디서 촬영했으며 어떤 기자재를 사용하고 누가 도와주었는가를 비롯해 보다 본질적으로는 평균 연봉 천만 원이라는 기형적인 구조를 가진 한국의 영화산업이 과연 어떻게 현재와 같은 형식적이나마 영예를 누리게 되었는가를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적게는 수십에서 많게는 수 백여 명에 이르는 스탭들의 피땀과 영화예술에 대한 열정을 간접적으로나마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단 한 줄의 이름밖에 나오지 않으면서도 그들이 고통을 감내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 대가로 관객들의 눈길 한 번을 그리워하는데 이것마저도 이윤이라는 가치에 발목 잡힌다면 과연 우리가 영화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는 마치 어떤 방법으로 그렸는지 알지 못하고 생각할 기회조차 뺏기고 그저 그림만 보고 미술관에서 나가야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물론, 이렇게 함으로써 영화관이 가지는 수익은 생각보다 크다. 짧은 영화의 경우 잘만 배치하면 한 회를 더 상영할 수도 있으니 말이다. 사실 요즘은 엔딩만이 문제가 아니다. 결국 영화 시작 전에 원하지도 않는 광고를 틀어대며 날린 시간을 엔딩크레딧의 중간을 잘라 보전하기도 한다.
 
예전에 어떤 이는 영화관의 이러한 횡포에 맞서 입장료를 환불받기도 했다. 적어도 문화시민을 자처한다면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당당히 영화 끝까지 보기 운동이라도 벌여야 하지 않을까?
 
운동 아닌 이 운동을 가장 성실히 수행하고 있는 극장들이 있다. 그 형태로 보자면 멀티플렉스내의 몇 개 극장에서부터 필자가 소속한 동성아트홀과 같은 지방 단관극장에 이르기까지 예술영화관이라는 타이틀이 그들을 하나의 틀로 묶어주고 있다. 뭐 거창한 타이틀도 아니지만 그래도 영화를 정말 사랑하고 끝까지 관객에게 다가가게 최선을 다하는 곳이라는 측면에서 이들의 헌신성은 좀 칭찬받아야 마땅하다.
 
이제 영화인들이 이상과 고단한 현실을 맞바꾸었을 바로 그 영화에 눈길을 돌려보자. 엔딩크레딧을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 극장에는 반값 입장료를 지불함이 정당하지 않은가!
 
이제 관객으로서 정당한 이 권리를 지키기 위해 영화를 끝까지 보자고 주장하자. 엔딩을 지키는 영화인들의 멋진 엔딩을 기원해 주자. 이것이 관객으로서 제작진과 극장에게 던지는 세레나데이자 같은 영화를 함께 한 기억임을 잊지 말자.
 
 
남태우 대구경북시네마테크 대표 / 팩트TV 뉴스디스크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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