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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칼럼] ‘재벌’과 ‘죄벌’
등록날짜 [ 2014년03월14일 10시16분 ]
팩트TV뉴스 이기명 논설위원장
 
 
【팩트TV】말도 많고 탈도 많은 우여곡절을 겪고 개봉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을 보고 쓴 칼럼 제목이 ‘회장님. 꼭 ’또 하나의 약속‘ 보십시오’다. 영화에 나오는 회사 이름이 진성이지만 영화를 본 사람은 그 회사가 ‘삼성’을 말하는 것임을 다들 알 것이다. 피지도 못하고 백혈병에 목숨을 잃은 유미 가 택시 속에서 아버지 품에 안겨 숨을 거둘 때 남의 눈도 생각지 않고 흐느껴 울었다.
 
내 딸년이 저렇게 죽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못 살 것 같았다. 몸에 신나 뿌리고 같이 죽자 했을 것이다. 그게 자식을 죽인 부모의 마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법이 무슨 빌어먹을 거냐는 생각이 들었다. 법에 대한 존엄이 개떡이 됐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공장에 3라인인지 어딘지는 그야말로 ‘죽음의 라인’이었다. 딸년이 좋은 회사 취직했다고 히뜩해서 친구들에게 자랑하던 아버지는 죽을 때 까지 죄책감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부모 잘못 만나 죽었다고.
 
돈이야 많을수록 좋은 것이다. 돈만 있으면 좋은 일 할 것이 얼마나 많은가. 신문 한 장 봐도, 거리를 다녀도 좋은 일 할 것은 쌓이고 쌓였다. 배고픈 사람이야 얼마나 많은가. 이 설움, 저 설움, 해도 배고픈 설움과 집 없는 설움이 제일이라는데 가난이야 나라님도 구할 수가 없다고 했으니 남 잘 사는 거 원망하지 말고 부지런히 일을 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을 열심히 해도 가난을 면할 수 없고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니 나라 원망하고 회사 원망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팔자타령도 함께 한다. 왜 낳아 줬느냐고 부모 원망도 한다.
 
300년을 부자로 내려 온 경주 최 부자 집, 지금으로 말하면 재벌이라고 부를 것이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가장 존경받는 부자가 아닐까. 최부자집에 가훈을 한 번 들어보자.
 
*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
*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 흉년기에는 땅을 사지 마라
* 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 며느리는 시집 온 후 삼년간 무명옷을 입어라.
* 벼슬을 진사 이상 하지 마라.
 
300년 내려 온 가훈이 참으로 존경스럽다. 우리나라 재벌들 중에는 자신도 최 부자 못지않은 가훈도 있고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재벌도 있을 것이다. 이 나라 경제를 누가 꾸려가는데 재벌에 대한 나쁜 인식이 매우 서운하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그런 것을 따지자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어느 재벌은 사회에다 천억을 기부한다고 해서 신문 방송에 대문짝만하게 소개 됐다. 또 어느 재벌 역시 5,000억이라는 돈을 사회에 기부한다고 해서 떠들썩했다. 대단한 일이다. 5,000억이 얼마인지 상상이 가질 않는다. 그런데 대단히 죄송하지만 이런 큰 일이 국민들에게 큰 감동으로 전달되지가 않는다. 얼마나 재벌들이 섭섭하겠나. 은혜를 모르는 인간들이라고 화를 내도 할 말이 없다. 머리 검은 짐승에겐 은혜를 베풀지 말라는 말도 있다고 할 것이다.
 
 
4만 7천원의 기적. 노란봉투를 아는가
 
 
4만7천원의 기적을 아는지. 아마 듣기는 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너무나 아름다운 얘기니까. 아니 그런데 신경 쓸 시간이 있을라고.
 
”47억원… 계산기를 두들겨보니 4만7000원씩 10만명이면 되더라고요. 법원에 일시불로 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우선 이 돈 4만7000원부터 내주실 수 있나요?”
 
한 통의 편지, 지난 연말, 시사주간지 ‘시사IN’의 편집국장 앞으로 손 편지 한 통이 도착했다. 쌍용차 노조의 47억원 손해배상 판결 기사를 보고 두 아이의 엄마라고 밝힌 시사IN 독자 배춘환씨가 “작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시작하고 싶다”며 4만7000원을 봉투에 넣어 보내온 것이다. 편집국장은 시사IN 신년호를 통해 이 사연을 소개하며 “그저 눈물만 나왔다”고 전했다
 
이 기사를 보고 가수 이효리 씨가 자필 손 편지와 함께 현금 4만7000원을 보내왔다. 불과 며칠 사이 2억이란 성금이 모였다. CBS방송에 나와 조용조용히 말하는 배춘환 주부의 말을 들으며 세상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생각에 너무 기분이 좋았다.
 
출근길, 사무실 앞 은행에서 4만7천원을 송금했다. 은행원이 활짝 웃으며 “돈 보내시는 분들 많으세요. 저도 보냈어요.” 주책없이 눈물이 났다. 어느 재벌이 아무도 모르게 47억의 배상금을 물어주면 어떨까. 아마 그 재벌은 평생을 흐뭇하게 살 것이다.
 
늙은 친구와 함께 길을 가다가 한 경험이다. 손수레에 폐지를 실은 할머니가 힘들게 수레를 끌고 간다. 친구가 주섬주섬 뭔가 꺼내더니 할머니의 수레를 세운다. 할머니는 겁이 나는 얼굴이다. 친구는 할머니 손에 뭔가 쥐어주고 급히 자리를 떠났다. 할머니가 멍하니 우리를 처다 보았다.
 
친구가 할머니 손에 쥐어 준 것은 2천 원이었다. 마음이 편하다고 했다. 할머니가 민망해 갈까봐 빨리 피했단다. 한동안 생각했다. 몇 푼 되지 않는 액수지만 할머니가 얼마나 고마워하실까. 천억을 기부하는 재벌과 할머니에게 2천원을 쥐어주는 친구의 마음은 같은 것일까. 다른 것일까.
 
유산을 둘러 싼 재별 형제의 재판도 보고 재벌형제가 나란히 법정에 서서 유죄선고를 받는 모습도 본다. 400억 벌금을 물지 않고 해외로 도망가 카지노 앞에 앉아 있는 건설업자와 불법으로 몇 천억 축재한 대통령의 사돈도 있다. 구속만 되면 휠체어와 환자복이 단골인 재벌도 있다.
 
재벌의 반도체 공장에 취업했다가 백혈병에 걸려되어 죽은 유미. 자식은 누구에게나 소중하고 귀엽다. 재벌의 자식도 죽음을 피할 수는 없다. 사고를 당한 경우도 있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도 있다. 이유가 어디에 있어도 부모 마음 다 같다. 그처럼 슬픈 일이 어디에 있을까. 그들도 운명을 감수해야 한다. 그런데 왜 백혈병에 감염된 여공들의 산재처리를 방해하는건가.
 
반올림에 직업병 피해자라며 제보해온 삼성전자 계열사 직원은 193명. 그 가운데 73명이 숨졌다. 그러나 삼성 반도체 노동자의 산재가 인정된 것은 황유미·이숙영의 죽음이 산재라고 본, 2011년 서울행정법원 판결이 처음이란다. 지금까지 3명의 산재가 인정됐고, 3명이 1심에서 산재를 인정받은 뒤 항소심을 진행중이다. 일과 병의 인과관계를 노동자가 직접 입증해야 하는 현재의 산재제도 아래에서는 그저 죽은 사람만 억울하다.
 
 
월급 1만원만 가져간다는 시장후보
 
 
재벌들이 돈을 얼마나 많이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냥 엄청 많다는 것만은 알 수 있다. 내가 노력해서 돈 많이 벌었는데 왜 그렇게 말들이 많으냐고 항의를 할 수 있지만 괜히 항의하는 것만은 아니다. 자선사업을 하지 않아도 좋다. 그러나 왜 그렇게 법을 어기느냐는 것이다. 왜 그렇게 휠체어를 타고 법정에 서는 재벌들이 많으냐는 것이다.
 
나라에서 재벌과 감정이 있어서 없는 죄 간첩조작 하듯이 잡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땀은 분명히 돈을 버는 또 하나의 원동력인데 노동자들이 그래도 좀 괜찮은 조건에서 일할 수 있도록 해 줄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월급도 좀 제대로 주고 병이 나면 산재처리도 해 주고 파업했다고 배상처리에 가압류해서 철탑에 올라가고 자살하지 않게 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다. 세계에서 자살율 1위라는 영광의 뒤안길에 무슨 사연이 있는지 알고 싶지 않은가.
 
자기 흉보는 거 좋아할 사람 없겠지만 그런 얘기가 언론에 나면 어떻게든지 못나가게 하려고 온갖 압력 다 넣고 하는 짓은 하지 말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약속’이나 ‘탐욕의 제국’은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던 중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의 얘기를 중심으로 재벌의 어두운 뒷모습을 그린 영화다. 세상에 어두운 얘기가 그 뿐이랴만 사람들이 분노하는 이유는 재벌이라는 사람들이 그들의 고통을 조금은 덜어 줄 수 있는데도 모른 척 하고 있다는 인식 때문이다.
 
돈만 있으면 혼자라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렇지 않다. 인간은 있는 사람이고 없는 사람이고 서로 얽히고 설켜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보이지는 않아도 서로 줄로 연결이 되어 있는 것이다. 줄의 이름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이다. 인간처럼 소중한 것이 어디 있는가.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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