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의 근원지로 이명박 정권의 숨은 실세였던 임경묵(68)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을 지목해 파문이 일고 있다. 임경묵 이사장은 2007년 당시 ‘북풍’ 공작의 핵심인물이기도 하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전주혜 부장판사)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당시)서울지방경찰청장이던 당시 나보다 경찰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2010년 3월 31일 강연에서 말한 내용은 그로부터 불과 며칠 전 임경묵 이사장으로부터 전해들은 그대로였다”고 밝혔다.
그는 "당시 차명계좌와 관련된 발언을 2년에 걸쳐 2번 이야기해준 사람은 당시 수사를 했던 대검 중수부 최고책임자"였다며 당시 이인규 대검중수부장(현 변호사)도 출처로 지목한 뒤, 한 경찰 정보관이 대검찰청 금융자금수사팀장으로부터 들었다고 말해 당시 검찰 고위급에서 광범위하게 이런 소문이 돌고 있었을 가능성도 시사했다.
조 전 청장은 1심 판결 전까지 “제가 안고가야 할 문제지 남한테 미룰 생각은 없다”면서 출처를 밝히지 않겠다는 입장을 보여 왔었다. 그러나 1심에서 징역 10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뒤 모든 책임을 자신이 뒤집어 쓸 수도 있다는 위기감에 입장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지목한 임경묵 이사장은 지난 1997년 대선당시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의 당선을 위해 국가안전기회부(현 국정원)가 자행했던 ‘북풍’공작의 핵심인물 이기도 하다. 1997년 대선 당시 안기부 102실장(대공담당)이었던 그는 ‘북풍’공작을 이유로 권영해 전 부장 등과 함께 안기부에서 쫓겨났었다.
이후 개신교 장로로 변신한 그는 2003년 극동포럼을 창설하고 초대 회장을 맡아 철저한 반(反) 노무현 활동을 하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 친형인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고문을 맡는 등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과 친분을 쌓아왔다.
임 전 이사장은 2007년 대선 당시 개신교와 보수층을 규합해 이명박 대통령 당선에 기여를 한 뒤, 정권 출범 이후 국정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으로 있다가 지난달 사퇴했으며, 대통령과 독대할 수 있었던 몇몇 핵심 실세중 하나로 전해지고 있다.
차명계좌의 근원지로 지목당한 임 이사장은 황당하다는 반응이다. 언론과의 전화인터뷰에서 그는 “민간인이 그런 내용을 어떻게 알겠냐”며 관련 여부를 강하게 부인했다. 이어 임 이사장은 단체모임에서 한 번 정도 스쳤을 뿐 잘 알지도 못한다며, 조 전 청장을 고소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법원은 이날 임 전 이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하고 다음달 14일 불러 차명계좌 발언을 한 것이 맞는지 확인할 계획이다.
발언의 사실 여부에 따라 정권 실세가 개입했을 뿐만 아니라, 그 배경의 정점에 이 전 대통령이 있을 수 있다는 추측이 나오면서 앞으로 파문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