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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칼럼] 간첩 주문 생산, 이제 끝
등록날짜 [ 2014년03월10일 10시03분 ]
팩트TV뉴스 이기명 논설위원장
 
【팩트TV】지금은 드라마를 쓰지 않으니까 모르지만 젊었을 때 드라마를 쓰려면 먼저 PD와 의논을 한다. 무엇을 그릴 것이냐. 막장드라마로 갈 거냐. 신파로 갈 거냐. 문예물로 가느냐. 의논이 분분하다. 물론 그 안에는 반공물도 끼어 있다. 반공드라마의 필수품은 간첩이다. 어떤 간첩을 그리느냐. 자수하는 간첩이냐. 체포되는 간첩이냐. 그러나 억지로 가짜 간첩을 만드는 드라마는 없었다. 가짜는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기가 없다.
 
‘김삿갓 방랑기’를 비롯해서 이른바 반공물이라는 것을 많이 썼다. 말하자면 반공작가(?)작가다. 간첩을 잡으면 인터뷰도 했다. 울진 삼척에 침투했다가 살아남은 무장간첩도 인터뷰 했고 귀순했다고 세상을 벌컥 뒤집어 놨다가 나중에 간첩으로 처형된 이수근도 먼저 단독 인터뷰 했다.
 
드라마를 쓰면서 등장하는 간첩은 사람도 아니다. 인간으로 묘사할 필요도 없다. 언제든지 사람을 죽일 수 있다. 못된 짓은 맡아가며 한다. 양심은 찾아 볼 수 없는 짐승이다. 그렇게 못되게 그릴수록 드라마의 성가는 올라간다. 인간성 같은 것은 처음부터 부여하면 안 된다. 간첩에게 인간성이라니 그건 금기다.
 
간첩은 당연하지만 간첩의 가족들은 간첩가족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 인간대열에서 제외된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간첩의 가족이라는 족쇄로 지옥에서 살았을까. 보지 않아도 뻔하다. 범인 100명을 놓쳐도 한사람의 무고한 죄인을 만들지 말라는 법어는 해당사항이 아니다. 그래서 억울한 간첩도 많다. 보안법 위반자들도 부지기수다.
 
조봉암, 그는 1959년 7월 30일 대법원에서 사형이 확정된 다음 날 처형됐다. 그는 52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었다. 그는 대법원 선고공판 최후변론에서 “내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라”고 했다. 과연 그의 죽음은 헛되지 않았을까. 부림사건도 같다.
 
국정원이 간첩을 만든 적나라한 예가 ‘수지 김 사건’이다. 1987년 1월 홍콩에서 수지 김은 남편에 의해 살해된다. 국가안전기획부(국정원)는 수지 김이 위장 결혼하여 남편을 북한으로 납치하려다 피살된 간첩으로 만들었다. 당시 안기부는 남편이 수지 김을 살해한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간첩으로 만들었고, 외무부도 안기부 요청에 따라 진실을 외면했다.
 
‘울릉도 간첩단’ 사건에 연루돼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17년간 옥살이를 한 이성희(86)씨는 38년 만에 간첩 누명을 벗었다. 천사처럼 순지무구한 시인 천상병도 동백림사건 연루자로 간첩 누명을 썼다.
 
20년 30년 만에 간첩누명을 벗는 죄인 아닌 죄인이 부지기수다. 사형을 당한 사람도 부지기수다. 조봉암을 비롯해 그 많은 죽은 날조간첩들이 이제 누명을 벗었다고 눈을 감을 수 있을까. 귀신에게 부탁해서라도 물어 봤으면 좋겠다.
 

국정원이 존재하는 이유
 
 
 
국정원의 존재이유는 간첩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가안위를 위해서 간첩을 잡는데 있다. 사실 과거로 돌아가 보면 간첩을 만들어 내는데도 혁혁한 공을 세운 곳이 바로 중앙정보부(국정원 전신)다. 위에서 제시한 사례들로서도 충분히 증명이 된다.
 
그러나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이제는 증거를 날조해서 간첩을 생산해 내는 야만은 없어진 줄 알았다. 아니 당연히 사라져야 할 죄악이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어디에 숨어 있다가 살아 난 망령인가. 누가 이들 귀신을 불러냈단 말인가.
 
유우성은 간첩으로 만들어졌다. 날조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입이 딱 벌어질 일들이 속출한다. 친 여동생을 고문 협박해서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자백을 받아낸다. 천륜을 짓밟아 버리는 것이다. 억지 자백이라며 오빠는 간첩이 아니라고 해도 검찰은 이를 무시한다.
 
가짜 관인이 등장한다. 남의 나라인 중국의 관인이다. 중국 국적의 조선족이 국정원 협조자로 등장한다. 외교관인 영사 직함의 국정원 직원이 출입경 가짜 서류를 만들어 간첩 만드는 증거로 재판부에 제출했다. 헌데 아뿔사 관인이 다르다. 격식도 다르다. 그냥 통과될 줄로 알았는데 세상이 그렇게 어수룩하지 않았다. 천주교 정의평화 위원회는 검사와 국정원 직원을 고소했다. 그들이 고발당한 죄목은 국가보안법상 증거 날조·은닉죄다. 보안법 관련 조항을 그대로 인용해 보자.
 
제12조(무고, 날조)
 
① 타인으로 하여금 형사처분을 받게 할 목적으로 이 법의 죄에 대하여 무고 또는 위증을 하거나 증거를 날조·인멸·은닉한 자는 그 각 조에 정한 형에 처한다.
 
②범죄수사 또는 정보의 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나 이를 보조하는 자, 또는 이를 지휘하는 자가 직권을 남용, 제1항의 행위를 한 때에도 제1항의 형과 같다. 다만, 그 법정형의 최저가 2년 미만일 때에는 이를 2년으로 한다.”
 
보안법 위반 사건에서 증거를 날조은닉하면 사실상 간첩과 같은 엄벌에 처할 정도로 추상같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조항으로 처벌을 받은 정보기관 수사관이나 검사는 단 한 명도 없다. 두고 볼 일이다.
 
 
‘우리가 간첩이라면 간첩’
 
 
조용필 평양공연에 SBS 방송팀과 평양에 다녀왔다. 기자협회와 함께 백두산에도 올랐다. 백두산 정상에서 ‘천지연’을 내려다보며 분단의 아픔을 눈물로 잠시 달랬다면 불순사상이라고 매도할 것인가. 빨리 통일이 되어 중국을 통하지 않고 바로 백두산에 올랐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생각은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요즘 유우성의 간첩조작 사건의 전말을 보면서 문득 소름이 끼쳤다. 유우성을 간첩으로 둔갑시킨 국정원이 마음만 먹으면 나도 순간에 간첩으로 만들 수 있겠다는 공포가 밀려 왔기 때문이다.
 
내가 중국을 통해 백두산에 다녀왔으니 중국에서 누굴 만났느냐. 연변에도 갔었고 북한의 공작원은 만나지 않았으냐. 북한은 다녀오지 않았느냐. 유우성 사건의 경우를 보면 그런 증거쯤 만들기는 식은 죽 먹기다. 서류야 돈만 주면 얼마든지 조작할 수 있지 않은가. 8분이면 중국관인 새긴다.
 
조용필 공연도 그렇다. 새누리당 심재철도 갔다. 만찬에는 북한의 고위층들도 나왔다. 물론 대화도 했다. 밤에는 호텔 앞도 산책했다. 여기서 문득 떠오른 생각. 나를 간첩으로 만들 생각이라면 어떻게 할까. 그건 조작의 달인들이니 그들의 몫이고 결과는 어떻게 되는가. 노무현대통령의 후원회장이 간첩이다? 이거 대단한 수확이 아닌가.
 
서울시 공무원인 유우성을 간첩으로 만든 것은 박원순 시장에게 흠집을 내기 위한 것이라는 설이 분분하다. 시장 선거와 앞으로 차차기를 겨냥한 것이란다. 만약 노무현 후원회장인 내가 간첩이 된다면 문재인 의원에게 흠이 될 것이다. 머리가 띵 해진다. 그만 생각하자. 이러다간 내가 병원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서도 가슴에서 끓어오르는 분노를 금할 수가 없다.
 
유우성이 간첩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를 간첩으로 만든 인간들의 두뇌조직은 어떻게 생겼을까. 양심의 세포는 존재하는 것일까. 천 만 원 주고 만든 가짜 서류를 제출하고 이제는 됐다 하면서 희희낙락 의기양양 했을 그들의 모습에서 귀기가 느껴진다. 왜들 이러느냐.
 
지금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의 진상이 밝혀지는 것을 보면서 누구인들 작심만 하면 간첩이 되겠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거짓말은 만들기로 마음만 먹으면 진실보다도 더 진실처럼 보이게 할 수가 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이렇게 타락했단 말인가. 하느님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지금 새누리당과 국정원 검찰은 유우성 간첩조작 사건이라는 오물통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국민이 주시하고 있다. 처리결과에 따라 박근혜 정권의 운명이 판가름 난다. 새누리는 뭐라고 하는가. 간첩조작과 간첩사건은 다르다고 한다. 조작해서 간첩을 만들었는데 무슨 소린가. 검찰이 조사에서 수사로 전환하고 국정원 직원을 출금조치 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를 국민들은 얼마나 믿는가. 국정원과 검찰을 공범관계라고 생각하는 국민은 없을까. 비극이다. 이 나라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기관을 믿지 못하면 국민은 믿을 곳이 없다.
 
역대 국정원장(정보부장)들의 운명은 순탄치가 않았다. 김형욱을 보라. 생사가 불명하며 얼마나 끔찍한 소문들이 난무한가. 감옥에 다녀 온 국정원장이 얼마나 많으며 지금도 존재한다. 예부터 역적이 충신이 되고 충신이 역적도 된다. 그러나 거기에는 순리가 있어야 한다. 억지로 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이 해괴한 조직 그대로 둘 것인가’ 한겨레 여연호 기자가 쓴 칼럼이다. 대통령도 국회의장도 읽어봐야 할 것 같다. 선량한 국민을 정치적 이유 때문에 간첩으로 만드는 조직이라면 국민을 위해서 무슨 득이 있는가. 남재준 원장이 결심해야 한다. 자리에서 물러나야 한다. 그게 명예를 지키는 것이며 그가 살아 온 대로 사는 것이다.
 
간첩의 주문생산은 필요 없다. 간첩질을 하지 않은 한 간첩이 아니다. 억지간첩은 만들지 말아야 한다. 이 땅에서 간첩이 얼마나 끔찍한 이름이라는 것은 자신들이 잘 알지 않는가.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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