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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호남 출신은 대통령도 안 돼
영남 출신이면 괜찮은가
등록날짜 [ 2021년09월17일 15시02분 ]
이기명 논설위원장
 
【팩트TV-이기명칼럼】 새벽에 눈을 뜨니 머리가 무겁다. 몹시 나쁜 꿈을 꾸었는데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고 대신 머릿속에 꽉 찬 것은 ‘증오’라는 두 글자다.
 
■한국의 영·호남
 
지역적 사랑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병적이면 안 된다. 내가 아는 후배 중에는 전라도 며느리를 안 얻는다는 아버지도 있고 경상도 사위가 싫다는 어머니도 있다. 기막힌 지역 편견이다.
 
고1 때 새로 반 편성을 했는데 내 짝 고향이 대전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하숙하고 있었다. 나무랄 데 없는 좋은 녀석이었다. 반에 어려운 친구 집에 불이 났는데 아이들이 성금을 모았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내 짝은 자기 한 달 치 하숙비를 성금으로 냈다. 물론 집안 형편이 좋은 아이였지만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고등학교 졸업식이 얼마 안 남은 어느 날, 그 친구가 이별의 짜장면을 샀다. 다 먹고 난 다음 친구가 입을 열었다.
 
‘너한테 지금까지 감춰 온 게 있다. 실은 내 고향이 대전이 아니고 전라도다. 미안하다.’
 
큰 충격을 받았다. 전라도에 산다는 걸 왜 숨겨야 하는가. 기막힌 지역 편견이라고 절감했다. 70년이 지난 지금도 그때 그 친구가 그 말을 하면서 미안해하던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전라도 사는 게 무슨 죄냐.
 
■훈련소의 영·호남
 
내가 훈련소에 입소할 때인 1956년도만 해도 중대 향도라면 같은 훈련병이라 해도 권한이 대단했다. 나는 중대 향도였다. 우리 중대는 3개 소대인데 우연이겠지만 경상도 훈련병이 더 많았다. 영·호남이 갈등을 빚었다. 깨지는 쪽은 늘 호남 애들이었다. 잘못도 없는데 당했다. 두고 볼 수가 없었다. 중대장에게 건의했다. 경상도 애들 버릇 좀 가르칠 테니 허락해 달라고 했다. 늘 있는 일이니 말썽만 생기지 않도록 하라고 했다. 그로부터 며칠 후 경상도 애들의 횡포는 사라졌다. 공정한 관리가 주효했다.
 
호남 애들이라고 부당한 처우는 없었다. 앙앙거리던 경상도 애들도 도리가 없었다. 공정한 처리 앞에 무슨 소리를 할 거냐. 까불고 대들던 몇 놈은 내게 당했다. 훈련소 졸업식 날, 나이 먹은 호남 훈련병이 내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나도 눈물이 났다.
 
■지역 편견, 개나 줘라.
 
내가 경상도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전라도에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조상대대 수백 년을 서울 종로에서 살았다. 지역편견과 상관없이 편하게 살던 내가 훈련소에서 영·호남의 추악한 지역갈등을 보고 정말 놀랐다. 나라 망칠 지역갈등이다. 아니 증오다.
 
5·18 광주 학살사건을 방송국에 있으며 상세히 알 수 있었다. 조선일보 사회부 차장 김대중 특파원이 광주 현장에서 쓴 ‘저기 복면을 한 괴한들이 총을 들고 서성이고 있다.’가 그때 기사다. 괴한들은 광주시민이었고 계엄군에게 참혹하게 죽었다. 망월동 국립묘지가 생긴 원인이 된 광주 5·18 학살사건이다.
 
광주학살 후 처음으로 망월동을 찾았다. 망월동은 떼도 덮지 않은 진흙의 무덤 천지였다. 나무 팻말에 쓰인 이름  석자. 만삭 신부의 사진도 있고 어린 초등학생의 무덤도 있었다. 나는 견디지 못하고 그냥 맨땅에 주저앉았다. 아아 저렇게 무고한 생명이 학살을 당했다니. 자유를 외친 국민이 저렇게 땅에 묻히다니. 나는 그날 밥을 먹지 못했다. 망월동 묘지는 광주의 무덤이었다. 호남의 무덤이었다. 자유를 갈망한 대한민국의 무덤이었다.
 
해마다 5월이면 나는 광주를 간다. 언론운동 하는 동지들과 함께였다. 대전에서 광주 방향으로 차가 들어서면 가슴이 저려온다. 5·18 광주학살이 생각나서다. 후배들이 붉어지는 내 눈을 보고 놀린다. 호남 땅에만 들어서면 눈물이 나는 것이다. 불쌍해서다.
 
■사랑하는 대한민국
 
처갓집이 전주다. 아내를 알기 전에 나는 호남을 한 번도 가보지 않았다. 아니 호남을 밟아보지 못했다. 서울에 유학 온 아내를 사귀고 처음 전주를 갔을 때 나는 놀랐다. 아무리 작은 집 뜰에도 연못이 있고 집안에는 동양화 몇 폭이 걸려 있었다. 막걸리 한 잔을 마시는데 공짜 안주는 푸짐했다. 무슨 이윤이 남느냐고 물으니 웃으며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다고 한다. 가만히 있어도 가슴이 뿌듯해지는 인심, 이것이 호남의 인심이었다.
 
더 없이 온순하면서도 불의에 대한 저항은 호남의 정신이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호남이 없었다면 나라가 없었다)라는 충무공의 말씀이 옳다. 이것이 바로 임진왜란에서 조국을 구한 애국의 정신이었다.
 
■김대중·노무현, 이낙연
 
고등학교 때부터 김대중 선생(대통령 당선 전에 나는 그렇게 불렀다)을 존경했다. 정치칼럼을 쓰고부터 노무현 의원을 좋아했다. 호남의 김대중, 영남의 노무현. 나에게 지역감정이란 처음부터 없었고 세상 사는데 아무런 불편이 없었다. 박정희 독재 이후 영·호남 갈등이 시작됐다. 갈등은 점점 확대되어 나중에는 당연한 것처럼 되어 버렸다. 개도 못 줄 망국병이었다. 하늘이 부끄러운 노릇이다.
 
지금 대통령 후보들의 경쟁이 치열하다. 내가 민주당 당원이니 민주당 얘기를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현재 이재명이 지지율 1위, 이낙연이 2위다. 이재명은 확실한 후보가 되기 위해 정신없다.
 
이재명이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지역은 투표가 끝났고 이낙연에게는 유리하다는 호남이 남았다. 왜 서로에게 유리하다고 하는가. 이재명이 영남출신이고 이낙연이 호남출신이기 때문이다. 역시 지역을 중심에 둔 분석이다. 무시할 수 없다.
 
나는 민주당원이고 이낙연의 상임고문이다. 물론 이낙연을 지지한다. 내게도 지역편중의 사랑이 있는가. 그런 거 없다. 나는 세상이 다 알고 있는 고 노무현 대통령의 후원회장이고 그분으로 해서 정치를 알게 됐다. 그는 경상도다. 그분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나는 언론멘토였다. 그도 경상도다. 한데 그들은 호남이 기반인 민주당의 후보로 대통령에 당선됐다.
 
이낙연 후보는 호남이자 전남이다. 나는 영남 출신의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을 지지했고 호남출신인 이낙연도 지지하는 것이다. 간에도 붙고 쓸개에도 붙는 인간인가. 나는 사람을 가장 중시한다. 사람이 먼저인 것이다. 내게 지역을 말하면 벼락 맞는다. 나는 대한민국을 사랑한다.
 
■이낙연·이재명
 
나는 제법 많은 독자를 소유한 글쟁이다. 조·중·동과 기레기들은 이재명이라면 머리를 흔들지만 내 글을 좋아하는 사람도 많다고 자부한다. 그런 내가 날마다 이재명을 비판하니 이재명 쪽은 몸살이 날 것이다.
 
궁금할 것이다. 왜 그렇게 이재명을 비판하는가. 이재명과는 어떤 사이인가. 성남시장 시절에는 초대받아 그들 부부와 식사도 같이 했다. 온갖 고생을 하면서 시장까지 됐으니 입지전적인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형수 욕설을 듣기 전이다. 화가 나면 욕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그가 한 진짜 욕을 들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인간에게는 결함이 많다. 그러면서도 인간에게는 참회라는 재주가 있다. 참회와 용서는 함께 다닌다.
 
이재명이 인간의 한계를 넘었다. 한계를 넘으면 인간이길 포기한 것이나 다름이 없다. 나 역시 이재명 지지를 포기했다. 이재명 자신의 탓이다.
 
■편견으로 선택하면 나라 망한다.
 
대통령이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가. 국민이 잘못 뽑아서 대통령이 감옥살이한다. 내년이면 다시 대통령을 뽑는다. 누가 대통령이 될는지는 귀신도 모른다. 좋은 대통령이 뽑히기를 빌고 또 빈다.
 
인물만 출중하다면 경상도든 전라도든 무슨 상관이냐. 국민은 경상도 대통령을 뽑는 것도 아니며 전라도 대통령을 선출하는 것도 아니다. 대한민국의 대통령을 뽑는 것이다.
 
후보자들의 상대 비판을 들으면 대통령은 고사하고 사기범죄집단의 수괴가 되는데도 부족함이 없다. 국민이 그렇게 어리석은가.
 
설사 영·호남의 지역편견이 있다 하더라도 이번 대통령선거에는 제발 그 짓거리는 하지 마라. 제발 쓰레기통에 버려라.
 
경상도 대통령이면 어떠냐. 전라도 대통령이면 무슨 상관이냐. 그는 영·호남의 대통령이 아니고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다.
 
훌륭한 대통령을 뽑으면 국민으로서 의무는 다하는 것이다. 복 받는 국민이 되는 것이다.
 
후보들이 걸어온 길은 국민이 소상하게 알 수 있다. 냉정하게 비판하고 누가 진정으로 나라를 위할 덕목을 갖춘 후보인지 판단하면 된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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