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박종철이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고문으로 죽고, 이한열이 최루탄에 맞아 숨지고, 서울 법대 최종길 교수가 정보부에서 고문으로 사망했다. 인혁당 관련 피의자가 사법살인으로 떼죽음을 당하고 장준하 선생이 등산길에 시체로 발견되었다. 독거노인이 굶어 사망해 한 달 만에 발견됐을 때 하늘을 보았다.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부림사건과 강기훈의 유서대필 사건이 무죄가 되고 국회에서 윤석열 권은희가 증언을 할 때 김용판이 무죄선고를 받을 때 하늘은 올려 봤다. 시청공무원이 간첩으로 조작되었을 때도 하늘을 올려다봤다. 하늘에 계신 분. 안녕하십니까. 박창신 신부가 군산의 수송성당에서 강론을 할 때 조용기 목사가 3년형을 선고받을 때도 하늘을 봤다. 그 밖에도 얼마나 많은 날들을 하늘을 올려다보았던가. 하느님은 지금 이 순간에도 저 위 어디에선가 이 땅을 내려다보고 계시리라. ‘하느님은 아신다. 기다려라’ 톨스토이에 작품 제목이다. 지금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가. 하느님. 기다리면 되나요. 지난 22일 토요일 아침, 신문을 접어 든 순간 깜짝 놀랐다, 신문 제1면에 거의 절반을 차지한 얼굴이 있었다. 천주교주교회의 의장이며 제주대교구 주교 강우일 주교다. 왜 저 분이 저렇게 크게 얼굴을 보이셨을까. 무슨 일이 난 것일까. 우선 걱정이 됐다. 강주교의 온화한 얼굴을 보다가 신문을 펼쳤다. 방대한 지면에 인터뷰 기사다. 인터뷰 내용은 대한민국의 민주투쟁사를 옮겨 놓은 듯 했다.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던 독재시절, 입에서 '민주'란 소리 한 번 나왔다가는 어디로 간지도 모르게 끌려가 개처럼 얻어맞았다. 인권은 사전에만 있는 단어였다. 사람이 사람대접 못 받은 가장 처참한 사례가 박종철의 고문치사다. ‘탁’하고 치니까 ‘억’하고 죽었다는 염라대왕도 놀랄 박종철의 사망이다. 종철이는 아버지의 ‘종철아 애비는 할 말이 없데이’ 한 마디와 함께 한 줌의 재로 강물에 뿌려졌다. 독재정권은 이 사실이 영원히 은폐될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럴 수는 없었다. 그렇게 천인공노할 만행이 덮일 수는 없었다. 1987년 5월18일, 명동성당에서는 광주민주항쟁 6주기 기념식 미사가 열리고 있었다. 바로 이 자리에서 김승훈 신부는 떨리는 목소리로 박종철 고문치사의 전모를 발표한다. 박종철 고문치사가 어떻게 은폐 조작됐으며 배후에 누가 있는가를 만천하에 폭로한다. 이것은 폭탄이었다. 김승훈 신부의 폭로가 아니였으면 박종철이 어떻게 물고문으로 사망했는지 영원히 어둠속에 묻혀 있었을지도 모른다. 박종철의 고문치사가 폭로되고 연이어서 천주교 사제들의 민주화를 위한 시국미사가 열렸다. 긴급조치 위반이란 죄목으로 외국에서 귀국하던 지학순 주교가 공항에서 체포됐다. 지학순 주교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이다.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만들러진 것도 지학순 주교의 체포가 계기가 됐다. 함세웅 신부를 비롯한 수많은 사제들이 동참하고 앞장섰다. 함세웅 신부는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을 만들어 본격적으로 민주화운동을 시작했다. 1976년 3.1명동 민주구국선언 때 대통령 긴급조치 9호 위반혐의로 서대문형무소에서 감옥살이를 했다.
사제들이 일어섰다
‘1974년 7월 10일 청와대에서 김수환 추기경과 박정희 대통령이 만나 시국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왜 사제가 정치적 발언을 하는지' 따져 물었고, 김 추기경은 '세상의 빛과 소금 역할에 충실한 것'이라고 대답했다. 나름 회담이 만족스러웠던지 박정희 대통령은 선물(?)로 지학순 주교를 풀어주었다. 그러나 풀려 나온 지학순 주교는 '죽음을 각오하고 독재권력과 싸우겠다는 결의'를 내보였다. 상황은 심각해져 갔다. 결국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지학순 주교는 선언한다. "본인은 양심과 하느님의 정의가 허용치 않음으로 비상군법회의 소환에 불응한다. 유신헌법은 민주 헌정을 파괴하고 국민 의도와 관계없이 폭력과 공갈과 국민투표라는 사기극에 의해 조작된 것이기 때문에 무효이고 진리에 반대된다…." 크게 화가 난 박정희는 지학순 주교를 구속했고, ‘양심을 고백한 죄’로 유신정권은 징역 15년을 선고한다. 교계는 거세게 들끓었고 가톨릭 각 교구는 시국기도회를 열어 유신정권의 탄압을 규탄했다. 천주교의 모든 사제들이 국민과 함께 일어섰다.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가 분명히 선언했다. “(가톨릭)교회나 성직자는 사회문제에 대해 침묵하면 안 된다” “성직자의 정치참여는 1962년부터 1964년까지 이어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결의에 따라 마땅히 이뤄져야 하는 것이다” “우리 사회의 문제가 불거질 때 앞장서서 이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 이를 위해 어떠한 정치적·사회적 활동도 망설이지 말라는 것이 역대 교황의 일관된 가르침이었다”.
왜 사제가 국민 앞에 서는가.
2월 25일은 박근혜 대통령이 집권을 한지 1년이 되는 날이다. 바로 이 날 국민들이 ‘전국민 파업의 날’로 선언하고 거리로 나왔다. 20만의 국민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는 보도를 보며 국민들은 참담하다. 박근혜 지지율 57%를 기록한다면서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새삼스럽게 여론조사를 거론할 필요는 없다. 여론은 늘 그랬으니까. 그러나 거리로 뛰쳐나온 20만의 국민은 해석이 안 된다. 해석이 되는 방법은 이들이 종북이라고 몰린다는 것 뿐이다. 과연 그런가. 자식들에게 경제적 부담을 주기 싫다고 강물에 투신하는 병든 아버지가 종북인가. 하느님의 뜻으로 사제의 길을 가는 신부들이 종북인가. 대통령은 취임이후 부정선거 시비와 공약파기 비판으로 정신이 없었다. 야당과 국민들은 특검을 주장한다. 그러나 법원은 김용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국민은 납득을 못한다. 국정원 파견 영사라는 사람이 외국의 공문서를 위조했다가 발각됐다. 국격을 어디로 갔는가. 강우일 주교의 한탄이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에 대한 재판이 있었지요. 같은 경찰 내부에서조차 그분의 처신에 대한 문제제기가 이뤄졌는데, 재판부는 이런 주장을 거의 받아들이지 않고 무죄를 선고했습니다. 그러면서 재판부는 판결문에 스스로 문제를 인정하는 듯한 표현을 남기지 않았습니까. 모든 국가기관 가운데서도 가장 신뢰받아야 할 사법부마저 판결문을 통해 진실을 제대로 밝히지 않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이들에게 딱지를 붙여 단죄하는 일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역적’이, 일제시대에는 ‘비국민’이 그런 사람들이었습니다. 역적이든 비국민이든 용어는 다르지만 그 피해는 지금의 종북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딱지를 붙여 단죄하는 건 참 쉬울지 몰라도, 당하는 이들의 삶은 평생 망가지는 겁니다. ‘유서대필 사건’으로 억울한 옥살이를 한 강기훈씨가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서도 지금 또 증거 서류까지 위조해서 서울시 공무원 간첩사건이라는 걸 만들었는데, 간첩으로 몰린 유우성씨라는 분의 고초는 말도 못할 겁니다. 사람 인생을 그렇게 망가뜨리면…”
화해와 소통
대선 6일전 '2012년 12월 13일 늦은 오후, 해가 뉘엇뉘엇 지는 한 야산을 박근혜 후보가 오르고 있었다. 천주교의 대표적 성지인 '베른성지'를 찾아 '지학순 주교' 묘소를 참배한 것이다. 왜 지학순 주교 묘소 앞에 섰을까. 박근혜 후보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아버지 박정희를 독재자라고 반대했고 유신 반대한 죄로 15년 언도를 받은 지학순 주교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박근혜 대통령은 후보시절 김대중 대통령 묘역과 봉하 노무현 대통령 묘역도 찾았다. 5.18 묘역도 4.19 묘지도 찾았다. 이 같은 일련의 행동은 모두가 화해와 소통을 위한 것이었다. 이런저런 정치적인 행위로 해석을 하지만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하면 감정은 녹는다. 그래서 대화가 필요한 것이다. 박대통령이 깊이 음미해 볼 말이 아닐까. 박근혜 대통령 취임 2년이 시작됐다. 그는 1017년까지 고용율 70% 국민성장율 4%, 국민소득 3만불 시대를 약속했다. 물론 약속이니까 지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못 지켜도 할 수 없다. 박근혜 후보시절 화려하고 거창하게 약속했던 공약은 빌공자 공약이 됐고 대통령이 된 박근혜는 사과조차 변변히 하지 않았다. 그래서 국민들은 대통령의 공약은 믿지 않는다. 애들끼리의 약속도 중요하다. 개인 간의 약속도 소중하다. 대통령의 대국민 약속은 천금의 무게다. 그러나 믿지 못하니 얼마나 가벼운가. 그런데도 지지율은 57%다. 과연 지지율은 믿을 수 있는가. 앞으로 닥칠 일이니 더 말하지 말자. 교회나 성직자는 사회문제에 대해 침묵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우리 사회의 문제가 불거질 때 앞장서서 이를 지적하고 바로잡는 것, 이를 위해 어떠한 정치적·사회적 활동도 망설이지 말라는 것이 역대 교황의 일관된 가르침이었습니다. 하느님의 뜻이라는 의미다. 사제는 하느님의 말을 따른다. 사회나 국가가 어려울 때 천주교 사제들은 늘 입을 열었다. 지금 사제가 거리로 나왔다. 사제들에게 무슨 정치적 야심이 있는가. 국민이 판단할 것이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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