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5분 드라마 '김삿갓 북한방랑기'를 오래 동안 썼다. KBS라디오에서 12시 55분부터 5분 동안 방송되는 ‘김삿갓 북한방랑기’는 가수 김정구가 부른 ‘눈물젖은 두만강’의 구성진 선율이 배경에 깔리면서 김삿갓이 시 한 수를 읊어댄다. 지금도 나이 먹은 사람들은 기억할 ’김삿갓 방랑기’는 당시 중앙정보부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중앙정보부는 반공과 관련해서는 전천후였다. 방송에서도 북한관련 자료를 도움받았고, 담당 조정관하고도 친분을 쌓고 여러 사람을 알았다. 당시는 방송국에 중정 조정관이 상주했고 그들과 친분이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뒤(빽)가 든든했다. 반공을 국시의 제1로 하는 나라에서 ‘반공드라마’를 쓴다는 사실이 얼마나 보람찬 일인가. 방송국장 쯤 우습게 아는 중앙정보부 조정관이 빽이니 어깨에 힘이 들어간 당연했다. 그 시절, 밤 12시가 되면 싸이렌이 울렸다. 여기저기서 호르라기 소리가 들린다. 급한 발소리도 들린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아니다. 통행금지 시간이 된 것이다. 밤 12시면 국민들의 발을 묶어 놓는 야만이 시작된다. 12시가 넘으면 여관을 찾아야 했고 통금 위반으로 즉심에 넘겨져 벌금을 물어야 했다. 사람 눈이 없는 밤, 도둑들은 마음 놓고 담을 넘었다. KBS에 있을 때 명동에서 술을 퍼 먹다가 통금이 되면 돈 없어 여관도 못가고 남산 방송국으로 올라간다. 통금순찰에게 걸린다. 목에 딱 힘주고 ‘남산’에 있다고 한다. 거짓말 아니다. KBS가 남산에 있었으니까. 경찰은 경례 척 부치고 수고하시라고 한다. 왜 ‘남산’이라는 말에 경례를 부치는가. 중앙정보부가 남산에 있었고 남산 하면 중앙정보부로 통했기 때문이다. 박정희가 영구집권을 위해 개헌 국민투표를 했다. 온갖 선심이 쏟아졌다. 방송작가들이 호강을 했다. 호화버스를 전세내고 특별열차를 동원해서 전국을 돌며 산업시찰을 했다. 전국의 도시는 작가들의 해방구였다. 도지사 시장, 기업의 회장이 만찬을 베풀고 최고급 호텔에서 잠을 자고 고삐 풀린 망아지었다. 가슴에 단 비표는 특권의 상징이었다. 경찰들은 비표를 보고는 허리를 굽혔다. 중앙정보부는 그렇게 쎘다. 그들은 얼마나 속으로 비웃었겠는가. 쓸개 빠진 작가새끼들. 지금도 생각을 하면 얼굴이 달아오른다. 지금 기자들이 그 꼴이 아닐까.
얼룩진 정보부의 발자취
1961년 6월 10일은 중앙정보부(이하 국정원)의 생일이다. 사람도 이름이 나쁘면 팔자가 드세다는 속설이 있지만 좌우간 국정원도 이름을 3번이나 바꿨다.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지금의 국가정보원이 됐다. 공부 못하는 애가 이름탓 한다든가. 요즘 같아선 다시 한 번 개명을 했으면 하는 생각이다. 정보부장을 지낸 인물이 얼마나 될까. 참 많다. 그 중에서도 악명이 자자한 김형욱은 지금 생사도 모른다. 박정희를 배신한 보상으로 파리 교외에서 살해된 후 믹서기 신세를 졌다는 끔찍한 소문도 있다. 업보라고 당연하다는 사람도 있지만 역시 불쌍한 인간이다. 그로 인해 생명을 뺏길 사람은 얼마며 가정이 파괴된 국민은 얼마나 많은가. 감옥에 간 정보부장도 꽤 되고 지금도 원세훈은 교도소에 있다. 국가정보원은 정치에 관여하지 못하도록 법률로 정해져 있지만 그것은 형식적이다. 지금도 국정원은 정치에 관여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를 좌지우지 했고 요즘도 유우성이란 서울시청 공무원을 간첩이라고 조작해 나라를 벌컥 뒤집어 놓고 나라 망신까지 시키고 있다. 왜 유우성을 간첩으로 만들려고 별별짓을 다 했을까. 언론은 박원순 시장에게 상처를 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러나 너무 억지를 부리면 바로 부메랑을 맞는다. 간첩조작 사건은 이제 온 국민이 다 알고 국정원의 맨 얼굴이 그대로 들어났다. 그 얼굴을 보면서 국민은 몸서리를 친다. 자신이라고 하루아침에 간첩이 되지 말란 보장이 없다. 바로 국가의 신뢰가 땅으로 처박혔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국정원이라고 별것인가. 국정원은 창설이후 너무나 많은 잘못을 저질렀다. 잘못 저지르기 위해서 만든 국정원이 아니지 않은가. 더구나 잘못을 반성할 줄 모르는 파렴치 수준이다. 아무리 수준이 낮아도 그래도 명색이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에서 국정원 직원들이 얼굴을 숨긴 채 늘어놓는 증언을 들었는가. 믿는 국민이 몇 명이나 될 거 같은가.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거의가 교양과 실력을 가춘 준재들이다. 수십 대 수백 대의 경쟁을 뚫고 합격한 영재들이다. 그들이 정치개입으로 망가진다. 얼마나 심각한 국력의 손실인가. 유우성 간첩 증거조작의 한복판에 국정원이 있다. 검찰, 외교부가 옆에 있지만 이건 모두 들러리다. 누구보다도 자신들이 잘 알 것이다. 국회에 출석한 조백상 총영사의 증언도 결국은 ‘국정원이 모든 것을 다 했고 외교부는 들러리만 섰을 뿐’이라는 고백이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위조문서가 국정원 직원으로 파견된 이인철 영사의 ‘개인문서’라는 것이며, 이인철 영사가 국정원 직원이냐고 물으니 ‘확인해 줄 수 없다’는 대답이다. 총영사란 사람이 밑에서 일하는 영사의 신분을 확인해 줄 수 없다면 누가 확인해 주는가. 중국의 공문서가 위조가 되고 중국은 범인을 조사하겠다고 나서니 이 낭패를 어쩐단 말인가. 당사자인 국정원은 입 악물고 뻥끗도 않는다. 진상조사 얘기도 없다. 조사야 다 아는건데 무슨 조사인가. 궁지에서 벗어날 연구를 하고 있을 것이라고 한다. ‘잔꾀’는 있다. 이인철 영사의 ‘개인적 일탈’이지만 너무나 많이 써 먹었다. 일부 얼빠진 언론들이 이번 ‘중국 공문서 위조’로 대북 정보망이 무너지고 국익이 손상될 위기에 처했다고 안달이다. 미친 소리다. 일개 국정원 영사 따위가 타국의 공문서를 위조한 것이 국익을 위해서란 말인가. 국가정보원의 능력은 겨우 이 정도란 말인가. 지금 국정원이 ‘국익’이란 말을 입에 담으면 단군 할아버지가 화내신다. 나라 망신시키고 중국 정부와 외교적 마찰은 물론, 조사도 받을 판이고 최고 정보기관이 어설프게 꼬리나 밟히고 정보망이 와해된다고 엄살이나 떨고 있으니 어물쩍 넘길 생각 말고 확실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두 말 할 것도 없이 국정원장의 결단이다. ‘국민의 인권을 침해하는 정보기관’의 책임자가 어떻게 얌전히 있을 수 있단 말인가.
국가안보와 민심은 나라를 버티는 기둥
아픈 마음으로 오늘의 한국을 바라보는 국민의 눈이 많다. 박근혜 정권이나 새누리당이나 국정원은 설마 무슨 일이 있으랴 하는 어설픈 안도감에 젖어 있을지도 모르나 똑바로 깨어나야 할 것이다. 근본적으로 대수술을 해야 할 것이다. 박근혜 정권 출범 후 1년 동안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다. 핑계는 대고 싶겠지만 야당 탓으로 돌리면 안 된다. 국정원의 대선개입이 분명한데 야당이 가만있으면 이건 야당의 존재이유 부재다. 나라를 위해서라도 안 된다. 나라의 기본을 흔드는 선거부정을 알면서 가만히 있으면 왜 야당이 존재해야 하는가. 성사는 안됐지만 김한길 대표는 ‘직’까지 건다고 하지 않았던가.
경주 리조트 체육관 사고를 온 국민이 목격했다. 폭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불과 11초 사이에 지붕이 무너져 학생들 수백 명이 깔리고 10명이 사망했다. 원인이야 더 설명할 필요도 없다. 정권의 신뢰가 무너지면 마치 쌓인 눈 무개를 견디지 못하는 체육관 지붕처럼 정권도 힘없이 무너진다. 재난을 피할 방법을 모르는가. 다들 안다. 체육관을 제대로 지었으면 무너지지 않는다. 눈이라도 제대로 취웠어도 피할 수 있었다. 정권은 어떤가. 신뢰를 잃지 않으면 안전하고 설사 잃었다 하더라도 노력해서 회복하면 된다. 어떤가. 지금 정권이 신뢰를 회복하려고 노력한다는 국민의 인식인가.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눈 앞에 재난을 뻔히 보면서도 아무 대책도 없는 정권을 국민은 어쩌란 말인가. 모든 국민의 원망이 국정원과 대통령에게 향한다. 자상한 시어머니처럼 요것조것 모두 참견하는 대통령은 국정원 공문위조 사건에만은 대범하다. 국정원은 왜 침묵인가. 대통령의 입을 바라보고 있는 것인가. 국가안보에 대해 국정원의 신뢰가 철벽같다면 국민들은 걱정이 없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정치집단화한 국정원을 걱정한다. 국정원의 처사가 두렵다. 이제 개인일탈이란 핑계도 약발은 제로다. 억압으로 국민의 저항을 제압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주 심한 착각이다. 국정원은 대한민국의 안위를 위해 존재하며 국민의 신뢰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지금 국정원은 위기다. 국정원장은 국정원이 걸어 온 발자취를 조용히 되돌아보기 바란다. 지나 온 발자국에는 반드시 남는 게 있다. 빨리 개인일탈의 끝을 보여 줘야 할 것이다. 국민이 불쌍하지 않은가.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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