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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칼럼] 회장 님, ‘또 하나의 약속’, 꼭 보시기 바랍니다
등록날짜 [ 2014년02월13일 14시45분 ]
팩트TV뉴스 이기명 논설위원장
 
【팩트TV】중국의 고사다. 병졸 하나가 장난삼아 원숭이 새끼를 잡아 함께 배를 탔다. 어미 원숭이는 슬피 울며 수 십리 배를 쫓아 왔다. 잠시 배를 강둑에 댔을 때 어미 원숭이는 배에 뛰어 올라 새끼를 껴안더니 죽었다.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가르니 창자가 모두 토막이 나 있었다. 단장(斷腸)의 슬픔이란 유래다. 자식 잃은 부모의 애(창자)는 이렇게 타 버린다. 중국의 고사지만 이 나라에도 널렸다. 
 
회장님. ‘또 하나의 약속’ 보셨나요?’
 
12일 오후 4시, ‘또 하나의 약속’을 보았다. 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린 딸을 병원으로 데리고 가는 도중 택시속에서 숨지는 모습을 보는 택시 기사 황상기 부부의 오열을 보며 문득 ‘창자가 끊어진 어미 원숭이’ 생각이 났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이야 짐승과 인간이 따로 있으며 빈부의 차이가 있으랴. 재벌 애비에게는 천륜의 정이 없으며 반도체 회장은 자식의 죽음에 무심할 수 있으랴.
 
하도 세상을 시끄럽게 하고 삼성이 개입해서 조직적으로 영화상영을 방해한다는 소문도 무성하기에 왜 그러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나 꼭 보기로 했다. 관객 태반이 젊은이들이였다. 좌석이 거의 다 찼다. 내용은 모두들 아니까 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다만 영화에 나오는 반도체 회사 이름이 ‘진성반도체’다. ‘삼성’과 ‘진성’이란 이름의 묘한 상관관계가 연상되지만 설마 의도적으로야 그랬을까.
 
자신의 무식을 고백하는 것이지만 반도체에 대해서 아는 게 뭐가 있으랴. 들고 다니는 핸드폰과 매일 드려다 보는 컴퓨터가 반도체에 전부라는 야만의 수준인 내가 백혈병이 반도체 제작과정에서도 발생한다는 문제를 다룬 영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기우였다. 왜냐면 인간에게는 상식이라는 기본적인 판단기준이 있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동안 느낀 충격을 고백한다. 반도체 생산과정에서 위험발생을 어떻게 발견하느냐. 사람의 코로 발견한다는 현장 노동자의 고백이다. 코로 발견하다니. 개인가. 냄새가 난다는 것이다. 아아 인간 사냥개로구나. 그 냄새가 백혈병의 원인이고 죽음의 사자다. 노동자는 자신을 죽이는 죽음의 사자를 마시고 산 것이다.
 
회사 고위간부의 발언은 바로 야만이다. ‘회사는 영원하다.’며 부하 직원들에게 고발을 못하도록 한다. 너희들은 죽어도 그만이지만 회사는 영원히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역시 죽음을 피해 갈 수는 없다. 그래서 노동자는 죽어가고 회사는 공룡으로 자란다.
 
재벌 회장 님, ‘또 하나의 약속’ 꼭 보십시오
 
현실의 얘기다. 재벌가의 자식도 교통사고로 사망했다. 재벌의 자식도 자살을 한다. 이 사실도 비밀이다. 자랑할 것 없으니 광고할 거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식을 잃은 부모의 마음이야 남이 알든 모르든 무엇이 다르랴.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진 어미 원숭이의 ‘단장의 아픔’과 같지 않겠는가.
 
영화속 그림은 현실의 그림과 같다. 재벌회사에서 산재가 생기면 회사는 한사코 산재 신청을 막는다. 회사의 이미지기 훼손되기 때문이다. 회사는 백혈병으로 죽음과 맞 서 있는 절망적인 유미의 산재 신청을 방해한다. 5백만원에서부터 시작해 10억으로 뛴다.
 
반도체 회사 재벌 총수는 몰랐을 것이다. 그들의 가치기준으로는 소모품에 불과할지도 모르는 어린 여공이 백혈병에 걸려 목숨이 경각에 달렸어도 돈 몇 푼 주고 해결하면 된다. 하나 둘 노동자들은 죽고 수많은 노동자가 머리 박박 깎고 병석에 누워 있어도 잘 처리가 될 것이다. 로봇처럼 잘 훈련된 회사 간부들과 노동자 관리직원들은 한 방울 눈물도 아끼려는 듯 냉정하다. 그 속에서 유미는 죽고 부모는 창자가 끊어졌다.
 
"지난 6일 개봉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은 삼성전자 반도체공장에서 근무하다 2007년 백혈병으로 숨진 고 황유미 씨 사건을 스크린에 옮긴 작품인데요. 적은 개봉관 수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관객을 모으고 있습니다."
 
이는 ‘또 하나의 약속’ 개봉 후 JTBC가 보도한 내용이다. 사람들은 이 보도를 읽으면서 놀랐을 것이다. ‘삼성반도체’라는 상표를 적시해 보도하는 것을 용기라고 놀라고 이것이 바로 손석희 사장의 ‘언론관’이라고 생각하며 놀랄 것이다. 지극히 정상적인 것이 비정상으로 생각되는 정상과 비정상의 자리바꿈이 제 자리를 찾는 날, 언론의 정상화는 물론이고 사회정의가 똑바로 서는 날이 될 것이다.
 
어느 재벌의 총수라도 잘못 없는 어린 여공이 자신의 회사에서 백혈병에 감염되어 피지도 못한 채 꽃봉오리로 스러져 버리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왜 그들이라고 뜨거운 인간의 피가 가슴에 흐르지 않으냐. 그러나 대한민국의 오늘은 그들 재벌 총수들의 가슴에는 차가운 피가 돌고 있다고 믿고 있다. 한국 유수의 거대 재벌회사에서 일어나고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불공정은 이제 지극히 당연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쌍용노동자들의 복직판결은 마치 세상이 뒤집힌 것 같은 뉴스다.
 
노동자가 재해를 입었으면 법에 따라 산재처리 하면 된다. 이게 순리고 인간의 도리다. 인간의 도리를 외면하면서 얻는 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역리가 순리를 이기는 것 같지만 결단코 역리는 순리를 이기지 못한다. 아프리카 예술가들을 한국에 데려와 노예처럼 부려먹은 집권당의 사무총장 홍문종은 개인의 개망신은 차치하고 몸담은 새누리당과 정권에게 치명적 손실을 입혔다. 노동착취를 전 세계에 과시했다. 
 
재벌 회장님들. ‘또 하나의 약속’ 꼭 보십시오 
 
천근의 가슴을 안고 극장 문을 나왔을 때 밖에는 다음 상영을 보기 위한 관객들이 가득 기다리고 있었다. 무겁던 가슴이 한결 가벼워진다. 국민들은 알고 있는 것이다. 관련 재벌이 아무리 방해를 해도 할 일은 한다.
 
“우리 같이 힘든 사람들을 위한 영화 같아서 보러 왔어요”
 
무심히 흘려 넘길 수 없는 말이다. 세상은 억만금을 쌓아 놓아도 혼자 살 수는 없는 곳이다. 함께 살아야 하는 곳이다. 돈이 많으면 많은대로 좀 잘 먹고 잘 입고 좋은 집에서 살고 돈이 없으면 없는대로 조금 가난하게 살면 되는 것이다. 마음이 편하게 함께 사는 곳이 천국이다.
 
창자를 잘라내는 단장의 아픔으로 평생 한을 품고 사는 세상은 사람이 사는 세상도 아니고 인간이 원하는 세상도 아니다. 돈 많은 재벌 회장들은 꼭 이 영화를 보기 바란다. 회사 노동자들과 함께 말이다. 존경이란 억만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귀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기명 팩트TV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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