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이기명칼럼】
■나의 침실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60여 년 전에 기억이다. 나는 대구에서 군대 생활을 했다. 김해 공병학교에서 1등을 한 나는 근무지를 선택할 수 있었지만, 집이 있는 서울을 마다하고 대구를 지원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이상화가 태어난 곳이기 때문이다.
■나의 침실로
마돈나 밤이 주는 꿈. 우리가 엮는 꿈
사람이 안고 궁그는 목숨의 꿈이 다르지 않으니
아, 어린애 가슴처럼 세월 모르는
나의 침실로 가자. 아름답고 오랜 거기로
■지금은 남의 땅, 빼앗긴 들에도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절절히 가슴을 적시는 이상화 시 두 편의 일부분을 소개했다. 전문을 옮기지 못한 결례를 사과한다. 고등학교 시절, 무척이나 긴 시를 줄줄이 외우는 나를 보며 문학소녀들의 시선은 뜨거웠다.
나는 대구에서 군대생활 전반부를 보냈다. 내가 좋아하는 시인 이상화의 시비가 세워진 달성공원을 많이도 찾았다. 이상화의 고향이라고 해도 생판 타향인 대구의 군 생활은 무척 외로웠다. 그래도 무뚝뚝한 경상도 사투리의 대구 선배들은 쫄따구 이등병을 무척 사랑해 주었다. 음악을 좋아한 나를 일요일이면 향촌동 클래식음악 감상실 ‘녹향’으로 데리고 갔다. 새까만 이등병은 음악실 구석에 앉아 차이콥스키의 ‘비창(교항곡 제6번, Pathétique)’을 들었고 쇼팽의 ‘야상곡(Nocturne)’을 감상했다. 서울의 ‘돌체’를 생각하며 그리움의 눈물도 지었다.
2·28 학생의거 기념탑(사진출처 - 대구시청 홈페이지)
■불의에 대한 대구의 저항
대구의 젊은이들은 불의에 대해 견디지 못한다. 1960년 2월 28일. 일명 2·28 학생의거가 그렇다. 자유당 정권이 학생들을 일요일에도 등교시키자 시위에 나섰고 그것을 계기로 전국적인 반독재 투쟁이 일어났다.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로 독재정권을 성토하던 학생들. 지금은 모두 무엇을 하는지. 빡빡머리에 교복을 입은 채 시위하던 경북고등학교 학생들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때는 지역감정의 장벽도 지금 같지 않았다. 대구도 광주도 다 같은 내 나라 내 땅. 이효상 국회의장의 망국적 지역감정 조장 발언이 있기 전에는 지금 같은 처절한 지역감정은 없었다. 참으로 못된 이효상이다. 같은 시인인 이효상과 이상화는 어쩜 그렇게 다를 수가 있을까.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더불어 숲’ 경북지역 결성식
내가 대구에 온 이유는 ‘더불어 숲’ 대구·경북 결성식 때문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상임고문이자 더불어 숲 상임고문인 나는 힘든데 늙은이는 빠져도 된다는데도 후배들의 만류를 물리치고 대구를 찾았다. 그리움 때문이다. 가보고 싶던 녹향 음악실은 잘 있는지 꼭 가보고 싶었지만, 근처에도 못 갔다.
나는 싸움하는 정치인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한다. 국민들도 그렇게 인정해 줄 것이라고 믿는다. 이유는 내가 걸어 온 길이 그렇기 때문이다. 난 못된 정치를 비판하는데 여야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그 정치인이 걸어 온 길이 어떠했는지를 기준으로 정치인을 판단한다. 제아무리 입으로 애국을 떠들어도 그가 걸어 온 길이 아니면 아닌 것이다. 아무리 거짓말을 해도 걸어 온 길은 흔적을 남긴다. 그래서 과거란 무서운 것이다.
과거에 흠결이 많은 인간일수록 위선은 극을 달린다. 내가 비록 나이는 먹고 죽을 날이 가깝다 할지라도 참고 볼 수가 없다. 그런 자들을 정치판에서 도태시키는 것이 나의 할 일이라고 믿고 산다.
내 말을 더불어 숲 대구·경북 창립회원들은 어떻게 들었을까. 판단이야 그들의 마음이지만 제발 바로 들어주기를 바란다.
지도자를 잘못 선택한 국민의 잘못된 판단이 역사를 뒤틀리게 하고 자신들에게 얼마나 극심한 고통을 주었는지는 경험을 통해 잘 알았을 것이다. 지도자를 자처하는 인물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진정한 지도자는 어디 있는가. 국민이 두 눈 크게 뜨고 찾아야 한다.
■진정한 지도자는 어디 있는가.
많고 많은 겉으로 보는 허상의 지도자가 아닌 마음의 눈이 보는 진정한 지도자를 찾도록 하자. 잘못된 지도자를 선택한 과오는 우리들 국민이 고스란히 져야 한다. 얼마나 국민이 고생했는가.
20대 청춘의 한 부분을 묻은 대구. 너무나 사랑한 대구였다. 그러나 지금 대구는 광주와 더불어 지역감정의 높은 벽을 넘지 못한다. 어떻게 할 것이냐. 이 벽을 그대로 둔 채 자식들에게 넘겨줄 것이냐.
동대구역에서 기차가 떠날 때 나는 기도했다. 내가 다시 대구를 찾을 때 수십 년 전 이상화의 시를 외우며 녹향 음악실에서 클래식 음악을 듣던 젊은 이기명의 모습으로 돌아가기를 빌고 또 빌었다. 우리는 한 민족 영원히 하나다.
사랑하는 대구여. 대구여.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영상제보 받습니다]
진실언론 팩트TV가 독자 여러분의 소중한 제보를 받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