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요즘 여의도에 고개 숙인 남자들이 많다고 한다. 세상사 걱정이 많아서 그렇겠지. 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게 아니란다. 고개 숙인 사내들이 기자라고 했다. 왜 고개를 숙이고 다니느냐고 했더니 창피해서란다. 문득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혹시 이번 높은 곳에 기자가 일자리 얻은 게 창피해서인가. 아니다. 왜 자기는 거기 뽑히지 못했나. 누구보다 열심히 애완견 노릇 했는데 왜 못 뽑혔나. 그게 창피해 고개를 숙이고 다니는 이유라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다. KBS 민경욱 기자가 청와대 대변인으로 발탁된 데 말이 많다.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논란의 중심은 바로 공영방송의 9시 뉴스 앵커를 했다는 기자가 앵커를 그만 둔지 3개월 만에, 그것도 현직 문화부장 자리에 있는 기자가 대통령의 대변인으로 갈수 있느냐는 것이다. 현행 KBS 윤리강령은 이렇게 되어 있다. 윤리강령 1조3항
“KBS인 중 TV 및 라디오의 시사프로그램 진행자, 그리고 정치관련 취재 및 제작담당자는 공영방송 KBS 이미지의 사적 활용을 막기 위해 해당 직무가 끝난 후 6개월 이내에는 정치활동을 하지 않는다” KBS측은 이렇게 밝혔다. “청와대 대변인은 선출직이 아닌 공직이라 정치활동 대상에 포함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이제는 전직 앵커 민경욱이다. 그의 전력을 굳이 들출 게 뭐냐고 시비를 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과거 기자들이 정권의 시녀로 기어 들어간 게 어디 민경욱 뿐이냐고 할 수도 있다. 중앙일보 논선위원 하다가 집권당 공천신청 한다고 사표 냈고 공천 떨어지니 다시 복직한 기자가 있는가 하면 논설위원 하다가 바로 비례대표 감투 쓴 기자도 있다. 설명이 필요 없이 세계적 인물이 된 윤창중도 있다. 이렇게 따지면 한도 끝도 없어 이 글 당장 접어야 한다. 그러나 KBS 윤리강령을 따지지 않더라도 기자는 기자로서의 자긍심과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가릴 줄 아는 합리적 판단력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남을 비판하고 국정을 비판하고 정의와 불의가 무엇이라는 것을 국민에게 제시할 수가 없는 것이다. 기자가 감시견이라는 말은 옳다. 그러나 이제는 감시견이 애완견으로 바뀌었다. 그 이유야 머리만은 똑똑한 기자들이 너무나 잘 알 것이며 이번 민경욱 의 청와대 대변인 행으로 감시견 기자들은 망연자실 하늘이나 보고 짖을 것이다. 민경욱에 대한 연구발표를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건 밝혀야 한다. 왜냐하면 과거란 좋은 스승이라 자신의 잘못 역시 스승이다. 바로 스승으로 삼으라는 호의다. “민경욱은 2011년 폭로 전문 웹사이트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문서에 등장했다. 당시 위키리크스가 공개한 외교전문에 따르면 민경욱은 대선 직전인 2007년 9월 주한미대사관 관계자를 만나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가 대선에서 당선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 문건에 따르면 그는 “내가 만난 이명박을 잘 아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명박이 ‘매우 깨끗한 사람’이라고 주장했다”며 “이명박은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느껴졌고 수많은 세월이 지나도 큰 탐닉에 빠지지 않은 사람”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명박은 경제적 전문성이 제한됐지만 뛰어난 결단력 덕분에 한국을 경제 위기에서 벗어나도록 한 김대중 대통령과 비슷할 수도 있다”고 이 전 대통령을 칭찬했다.“ 민경욱도 말 한마디쯤은 해야 할 것이다. 대한민국 기자의 자화상 나이를 먹은 죄로 보고 들은 것이 많은 편이다. 어느 시대에도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은 있다. 언론계도 같다. 그러나 박정희 쿠데타 이후 언론계는 눈부시게 망가지기 시작했다. 꼿꼿하던 기자들의 고개가 흐물흐물 하더니 시키는 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유정회 배지 달아주고 국영기업체 사장 벼슬 씌워줬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잡아다가 주리를 트는 바람에 변절한 언론인도 많다. 그러나 지금처럼 자발적으로 권력의 품으로 기어 들어가는 기자들은 많지 않았다. 기개가 사라진 대한민국 기자들의 자화상은 어떤가. ‘모가지 떨어지면 밥 먹여 줄래.’ ‘혼자 잘났다고 떠들어 봐야 오는 건 왕 따다.’ ‘민경욱이 부러워 죽겠다’ 왜 이럴 때 마다 송건호, 리영희, 그리고 당당하게 살다가 돌아가신 언론인들의 모습이 떠오르는 것일까. KBS 지자들이 줄지어 성명서를 발표했다. 민경욱 바람에 KBS 기자들이 오랜만에 화를 내는 모양이다. 곳곳에서 비난이 터진다. KBS기자협회(회장 조일수)와 후배 기자들이 성명서를 발표했다. “말문이 막혔고, 부끄러웠고 참담했다”는 것이다. KBS 38기 기자들은 “후배들은 선배가 부끄럽다. 권력의 정점인 청와대. 그곳을 감시하고 비판하는 일을 했던 한 선배가 이번에는 권력을 변호하고, 대변하는 일을 맡아 회사를 떠났다” “국가를 위한 헌신이라고요. 아니오. 정권을 위한 헌신이죠.”. “KBS가 정권의 나팔수라는 조롱, 이제는 완전히 무뎌져 더 이상 부끄러움은 없을 줄 알았다. 헌데 선배 덕분에 오랜만에 다시 부끄러움이란 감정을 느껴본다”. “KBS 보도의 상징으로 각인된 인물이 정권의 치마폭에 안겼다는 쓰라린 소식에 KBS 기자들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듯한 충격에 휩싸였다” “언론사 뉴스 핵심 인물이 이토록 노골적으로 정권과 손을 잡은 사례는 한국 언론사를 통틀어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 트윗에 걸작은 공지영 씨의 것이다. ‘대변 많이 하시지 않았어요’ 후배 기자한테서 전화가 왔다. 침통한 목소리다. ‘아무리 사람이 없기로 민경욱입니까’ 여의도에는 당분간 어떤 의미에서든지 ‘고개 숙인 남자’들이 많이 다닐 것 같다. 그러나 자신들이 할 탓이다. 고개 들고 다녀라.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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