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이기명칼럼】오늘은 언론 얘기다. 기자들 얘기다.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기자는 특권 계급이다. 자신들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첫 번째 경험. 1·4후퇴 후 한강 인도교는 아무나 못 건넜다. 학교에 다녀야 하는데 도강(渡江)하기가 여간 고통이 아니었다. 참으로 부러운 인간들이 있었다. 기자였다.
군복 하나 걸치고 주머니에서 뭔가 슬쩍 꺼내 보여주면 무사통과. 뭐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기자란다. 부럽고 드럽다. 나도 이 담에 기자가 된다. 기자는 아무나 되는가. 아무나 됐다. 가짜 기자가 판을 쳤다. 좌우간 가짜는 어디를 가나 문제다. 요새는 가짜 뉴스다. 가짜 이강석(1957년 이승만 양아들 이강석을 사칭한 ‘가짜 이강석 사건’ 참조)은 그나마 애교다.
■무관의 제왕
‘맨대가리’ 제왕은 없다. 관을 써야 왕이다. 한데 세상에 관을 쓰지 않은 왕이 있다. 무관의 제왕 ‘신문기자’다. 자신들이 붙였는지 누가 붙여줬는지 몰라도 아직도 ‘무관의 제왕’은 통한다. 제왕이라서 그런가. 목에 힘주는 게 꼴불견인 경우가 많다. 대학시절, 시위 현장에서 기자가 얻어터졌다. 기자라고 신분을 밝히는데도 ‘기자’면 다냐. 직사하게 터졌다. 소속은 밝히지 않지만 불탄 신문사도 있었다. 왜 그렇게 속이 시원했는지.
동아일보 해직기자 김태진이 늘 하는 일화가 있다. 옛날 동네에 문제가 생기면 기자한테 달려갔다는 것이다. ‘선은 이렇고 후는 이런데 판단(판결) 좀 해 주십쇼’ 잠시 후 기자의 판결. 그것으로 끝. 대개 그 판결이 옳았다는 것이다. 지금도 그렇다면 판·검사 다 굶어 죽게 생겼다. 한데 이 일화를 들으며 고개가 갸우뚱한 것은 법에 대한 오늘의 불신도 있지만, 언론(기자)에 대한 신뢰가 더 문제다. 요즘 기자 찾아가는 국민이 있을까. 언론에 났잖아? 어느 신문? 그거 가짜뉴스야.
왜 이토록 기자에 대한 불신이 심하냐고 꾸중해도 할 말이 있다. 착한 도둑놈 얘기하면 말이 되느냐고 하겠지만 일지매는 착한 도둑이다. 가짜 기자는 어떤가. 가짜 기자가 많다고 해도 진짜(옳은) 기자는 더 많다.
언론에 대한 기본적 불신은 정도를 넘었다. 어쩌다가 언론이 이 지경이 됐느냐고 장탄식을 읊어도 남의 탓으로 돌릴 수는 없다. 원인 없는 결과가 있던가. 스스로 생각해 보라. 억울한가. 어디가 하소연을 한단 말인가.
한국 언론에 대한 신뢰도가 세계에서 꼴찌라는 것은 비극적 현실이다. ‘조·중·동’이라는 고유명사가 있다. 오랜 친구 하나가 부탁한다. ‘내가 조선일보에 근무했다는 말은 제발 하지 말아주게’
‘나도 나도’하며 뒤따라 부탁하는 게 누구라고 밝혀야 알겠는가.
■기자가 지사(志士)였던 시절
옛날에는 지사였을지 모른다. 지금도 언론의 정도를 묵묵히 걸어가는 후배 기자들이 수 없이 많다. 뭐가 이상한가? 당연히 그래야 되는 거 아닌가. 공정한 기자를 대단한 것으로 평가하는 인식이 틀려먹었다. 도둑 잡는 수사관도 제 할 일을 한 것이다.
자유당 시절 정읍환표 사건을 폭로한 박재표 순경은 대단하다. 그때가 어느 땐데 폭로를 해. 목 잘린 박 순경을 특채한 동아일보도 대단했다. 이게 바로 사람사는 세상이고 희망이 있는 세상이다.
한 때 언론민주화를 외치던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들은 회사 문밖으로 내동댕이쳐졌다. 그러면서도 언론에 대한 신념을 꺾지 않았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했다. 중앙일보 게시판에 성명서를 쓰고 회사를 떠난 기자도 있었다. 쫓겨나서 먹고 살 수 없으니 월부책 팔러 다니는 친구와 소주잔을 비우며 눈물을 쏟았다.
눈 딱 감고 시키는 대로 말 잘 들으면 감투도 쓰고 잘 사는데 왜 고생을 사서 하느냐는 아내의 바가지도 있었지만, 가치는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었다. 그런 속에 언론은 성장했다. 낙하산 사장도 사라졌다. 사장이 노조 눈치를 본다. KBS는 노조 하나로 부족(?)해 셋이나 만들었다.
■폭탄이다 ‘검찰총장 직무정지’
이동재·한동훈 얘기는 접을 수밖에 없다. 쓰던 원고 여기서부터 다시 쓴다.
지금까지 별 소용도 없는 칼럼 써서 뭐하느냐고 한탄했는데 오늘은 그래도 신바람이 났다. 이유를 설명하지 않아도 아는 사람은 알 것이다. 다만 결과가 어떻게 날는지 속이 좀 탄다. 많이 타지는 않고 조금 탄다. 왜냐면 이제 뒤로 돌릴 수 없는 항해다. 그 정도는 윤석열도 알 것이라 믿는다.
윤석열이 직무정지를 먹었다. 그것으로 끝이다. 글을 쓰는 사이에 폭탄이 터졌다. 폭탄이 터졌다니. 테러가 발생했단 말인가. 윤석열과 구태검찰 입장에선 테러가 될 것이다. 그러나 지극히 당연한, 아니 필연적으로 일어날 일이 일어났다. 언론이 제대로 구실을 했다면 벌써 일어났어야 할 일이다.
아아. 저런 일이 있었구나. 윤석열을 직무정지 먹이면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고통스러운 발표를 했다. 고통스럽다는 의미는 국민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얼마나 국민이 속상했을까. 지금 검찰 세계의 내면을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내가 창피해진다)
언론만 그 같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는가. 검찰 출입 군번을 자랑하는 기자님들이 공직자들의 비리나 정치지도자들의 낯 뜨거운 행태를 몰랐다면 거짓말이다. 보도를 안 했던 것이다. 왜 안 하는가. 고백해 보라. 부끄러운가. 부끄러우면 아직 희망은 있다. 기자로 돌아오라.
■새로 태어나는 언론, 검찰
지금 내가 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천하에 상종 못 할 인간들이 바로 기자와 검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아니다. 전혀 아니다. 절대로 그렇지 않다.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맑은 물을 한 대야 떠 놓고 거기에 잉크 한 방울 떨어뜨려 보라. 물은 파란색으로 변할 것이다. 사람들은 파란색만 보고 기억한다.
훌륭한 언론인과 법조인은 얼마든지 있고 그들로 해서 세상이 이렇게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사건을 쫓는 기자들에게 미담가화(美談佳話)는 차순위다.
자신 있게 말한다. 기레기들과 가짜뉴스가 사라질 것이다. 물론 윤석열도 모습이 사라질 것이다. 그리고 또 있다. ‘국민의 짐’이란 별명도 사라지고 진정한 ‘국민의 힘’으로 태어날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국민이 소망하는 그런 정당이 될 것이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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