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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좋은 지도자, 나쁜 지도자
우분투(UBUNTU)를 배워라
등록날짜 [ 2020년09월10일 09시27분 ]
이기명 논설위원장
 
【팩트TV-이기명칼럼】
■송건호 선생님
 
작은 체구. 어눌한 충청도 사투리. 조금 답답. 새로 오신 선생님이다. 공민(사회과목)을 가르치신다고 했다. 책도 펴지 않고 그냥 말씀만 하신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동아일보 칭찬하고 서울신문 비판한다. 70년 전 이승만 독재 치하 자유당 정권 때다. 말조심하던 때다..
 
어눌한 말씀이 가슴을 파고든다. 가슴이 뜨거워진다. 거침없는 자유당 이승만 비판. 어 이상하다. 저런 선생님이 다 있어. 대학을 졸업하자 바로 모교로 오신 선생님. 바로 송건호 선생님이시다. 담임선생님이다. 노무현 대통령 다음으로 내게 많은 영향을 끼치신 선생님이라고 생각한다.
 
내 딸 주례도 서 주셨다.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으로 구속되어 고문을 당하고 파킨슨병을 앓으셨다. 한겨레 계실 때 인사를 갔는데 날 알아보시지 못하고 누구냐고 하신다. 펑펑 울었다. 정말 죽일 놈들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사진-더불어민주당)

 
■우분투(UBUNTU)가 무슨 말인지 아는가
 
좋은 연설을 들으면 맛있는 냉면 한 그릇 먹은 듯 기분이 좋다. 나쁜 연설 들으면 쥐똥 씹은 맛이라고 할까. (씹어본 경험 없다)
 
처음에는 그냥 그렇게 들리다가 점차 가슴이 뛴다. 파도가 친다. 뜨거운 파도다. 가슴이 찬다. 그게 좋은 연설의 힘이다. 나의 무식을 고백한다. ‘우분투(UBUNTU)’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애고 창피해.
 
이낙연 대표의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우분투’라는 말을 듣고 부리나케 찾아봤다. 아프리카 반투족의 말이라는데 참으로 좋은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를 위하면 너는 나 때문에 행복하고,
너 때문에 나는 두 배로 행복해질 수 있다.
 
더 설명하면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는 것이다. 좌우명으로 삼아도 좋은 말이 아니겠는가. 문득 우리 정치를 돌아보면서 정치인들 모두가 이 말을 가슴에 새겨 둔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다.
 
주호영 원내대표의 연설도 들었지만, 언급 안 한다. 나올 소리가 뻔하기 때문이다.
 
■좋은 지도자와 나쁜 지도자
 
젊은 친구들은 잘 모를 것이다. 그러나 내 나이 정도만 돼도 민족의 비극을 절실히 느끼고 살았다. 6·25전쟁 때 눈앞에서 미군 전투기의 기총소사로 벌집이 되어 쓰러지는 피난민들. 아무 죄도 없는 우리 동포들이다. 내 땅에서 주인의 의사는 아랑곳없이 절반을 뚝 잘라 갈라놓고 이북과 이남이라고 했다.
 
행방불명된 아들을 몇십 년 동안 보지도 못하고 돌아가신 어머니. 우리들이 볼까 봐 몰래 우셨다. 이 나라 어느 가족인들 이산에 비극이 없는 집안은 없다.
 
남북 간 화해의 숨통이 좀 트였을 때 북한에 가본 적이 있다. 생판 모르는 남의 집에 갔을 때처럼 써늘하던 가슴이 며칠이 지나자 풀리기 시작했다. 왜 우리가 떨어져 살아야 하는가. 왜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총을 겨누고 있는가. 왜 우리의 땅이 강대국의 정치흥정 거리가 되고 있는가. 진절머리가 나는 얘기는 집어치우자.
 
함께 있는 사람 끼리만이라도 구순하게 살 수는 없는가. 경상도 전라도 가르지 말고 살면 안 되는가. 입을 열면 혀가 닳도록 협치를 말한다. 현실은 어떤가. 상대편 칭찬하는 말은 듣고 죽을래도 어렵다. 세금도 안 내는 말인데 칭찬 좀 하면 어느 하늘에서 벼락이라도 치는가. 오는 정 가는 정이라고 했고 물이 가야 배가 온다고 했다. 칭찬 들으면 욕을 하고 싶어도 참게 된다. 그게 사람이다. 우리 정치를 보면 전생에 백 년 원수가 여·야로 태어나 싸우는 것 같다.
 
적어도 국회의원이라면 사회의 지도자들인데 하는 행동을 보면 가슴이 답답하다. 자식 기르는 사람들의 금기가 있다. 남의 자식 거명하며 심한 말은 안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요즘 여·야 가릴 것 없이 대표급 쯤 되는 인사들은 잘잘못은 나중이고 자식들로 해서 곤욕을 치렀다. 이래서 무자식 상팔자인가.
 
요즘 추미애 장관의 아들 물고 늘어지느라 애 많이 쓴다. 그렇게 할 일이 없느냐. 까놓고 본심을 고백해라. 정부 흠집 내려고 하는 거 말고 무슨 의미가 있느냐. 아니라고 할 사람 손들어 보라. 기레기들이 장구 쳐주니 신바람이 난다. 국민이 말한다. 세비 토해내라.
 
내가 군대 생활을 할 때 금배지 아들쯤 되면 나이롱 군대였다. 집에서 근무했다. 국방부 명찰 달고 폼 잡고 다녔다. 60년 전 나도 편하게 군 생활 했으니 할 말이 없다. 얘기가 옆길로 샜지만 대한민국 지도자들 생각할수록 한심무쌍하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지난 8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하고 있다.(사진-국민의힘)

 
■다시 우분투(UBUNTU)를 생각하자
 
이낙연 민주당 대표의 연설을 듣고 난 후 의원 중에 가슴 절절히 느낀 의원은 몇이나 될까. 공자 말씀하고 계신다며 코웃음이나 치지 않았을까. 그래도 우분투는 기억해 둬라. 자식들에게 들려줘도 결코 손해나는 말은 아니다.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의 연설 중에도 우분투를 언급한 부분이 있다. 잘 새겨둬라.
 
내가 젊었을 때부터 좋아하던 경구가 있다. ‘천망회회 소이불루(天網恢恢 疎而不漏)’다. 노자의 도덕경에 있는 말이다. ‘하늘 그물이 성긴 듯해도 빠져나가지 못한다’라는 뜻이다. 하늘은 못 속인다는 의미다. 하늘이 누군가. 바로 국민이다.
 
우분투에 얽힌 얘기도 들려주겠다. 어느 인류학자가 아프리카의 한 부족 아이들을 모아 놓고서 게임 하나를 제안했다.
 
나무 옆에 맛있는 과일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놓고, 누구든 먼저 바구니까지 뛰어간 아이에게 과일을 모두 다 주겠다고 했다. 한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아이들은 미리 약속이라도 한 듯이 서로의 손을 잡았다. 손을 잡은 채,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모두가 일등. 아이들은 과일 바구니에 둘러앉아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에게 물었다. 왜들 1등을 안 했느냐. 왜 손을 잡고 달렸느냐. 나온 대답이 ‘우분투’다.
 
"일등 못한 다른 아이들은 다 슬픈데 나만 기분 좋을 수가 있나요?"
 
학자는 말문을 닫았다.
 
"우리가 함께 있기에 내가 있다!"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강조한 말이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 말의 유례까지 알고 있었는가. 몰랐으면 이번에 잘 알아두고 나한테 고맙다고 하기 바란다.
 
■훌륭한 지도자, 나쁜 지도자
 
세상에 지도자는 너무나 많다. 자천 타천 지도자를 모두 모아 놓는다면 세상은 지도자로 산을 이룰 것이다. 그러나 수많은 곤쟁이다. 국민이 진정으로 인정하는 지도자는 누구이며 몇이나 되는가. 자화자찬 스스로 광을 내도 국민 보기에는 모두 꽝이다. 국민이 뭘 아느냐고 웃을지 모르지만 정작 웃어야 할 사람은 국민이다.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안다.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안다.
 
이낙연·주호영의 연설을 듣고 주위에 물어봤다. 문제는 무엇이 진실이냐다. 누가 신뢰를 주느냐다. 신뢰는 하루아침에 생기는 것이 아니다. 시간은 그냥 지나가 버리는 것 같지만 시간 속에 역사는 기억이라는 이름으로 남는다.
 
솔직히 지금까지 우리 국민들이 얼마나 많은 정치인에게 속아 살았는가. 그래서 진실과 거짓을 칼처럼 알아본다. 무섭다.
 
어려운 시대일수록 훌륭한 지도자가 아쉽다. 좋은 지도자는 국민이 만들어 낸다. 눈 크게 뜨고 살펴보자.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이 훌륭한 지도자로 우뚝 설 때 그보다 더 기분 좋은 일이 어디 있는가. 모두가 국민이 할 탓이다. 정신 차리자.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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