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을 아느냐. 지도에서 한반도가 지워진다.-
자중하자. 전쟁은 애들 장난이 아니다.
이 기 명(칼럼니스트)
우습게 생각하지 말라. 1950년 6월25일, 16살 소년은 무장군인을 가득 태운 채 미아리 고개를 넘어가는 군 트럭을 별 생각 없이 보고 있었다. 군인들은 군가를 소리 높이 불렀다. 전쟁이 터졌다고 했다. 전쟁은 무슨 전쟁. 전쟁놀이로 생각했다.
‘양양한 앞길을 바라볼 때에 가슴에 사무치는 애국에 깃발’ 이런 군가가 있었는지 아는 병사들이 지금도 있는지 모르겠다. 다음 날, 미아리고개를 넘어오는 군트럭에는 피투성이가 된 부상병들이 가득했다. 진짜 전쟁이구나.
전쟁을 실감했다. 당시 국방장관이 이승만 대통령에게 보고하기를 전쟁이 나면 평양에서 점심 먹고 두만강에서 커피 드시자고 했다던가. 그런 이승만은 혼자 살겠다고 일지감치 한강을 넘어 대전으로 줄행랑을 치고는 서울은 사수한다고 사기를 쳤다.
서울은 적군에게 점령됐다. 전쟁은 입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무기로 하는 것이다. 지금 한 반도,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 상공에는 보지도 못한 B-52 폭격기와 B-2 스텔스 폭격기가 핵폭탄 16개를 탑재한 채 날고 있고 이번 처음 선보인다는 F-22 스텔스전투기도 전쟁연습을 한다. 북한은 공공연히 핵전쟁을 공언하며 미국 본토를 겨냥한 미사일을 동해안으로 옮겼다고 뉴스는 톱기사로 전한다.
그런가 하면 전쟁은 없다는 이상한 진단도 있다. 이유는 이건희 삼성총수가 해외에서 귀국했기 때문이란다. 전세계의 거미줄 같은 정보망을 가진 재벌 총수가 오랜 해외 체류를 마감하고 귀국했는데 전쟁이 날 리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제 국민들은 이건희 총수의 일거수일투족에 촉각을 세워야 할 판이다. 이건희 회장이 몹시 불편할 것이다. 재벌된 죄인가.
그러나 전쟁은 재벌총수의 해외나들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원래 싸움이라는 게 이렇다. 처음에는 티격태격 서로 욕을 하고 비난을 하고 툭툭 건드리기도 하고 그러다가 귀싸대기 후려갈기면 맞은 놈은 몽둥이 들고 나온다.
전쟁도 같다. 더구나 전쟁못해서 죽은 귀신이 씌었는지 서울을 불바다로 만든다느니 김정은 거처를 박살낸다느니 입을 벌릴 때 마다 화약냄새가 코를 찌른다. 어떻게 할 것이냐. 진짜 전쟁을 하겠다는 것이냐.
며칠 전 읽은 한겨레 곽병찬 대기자의 칼럼은 소름이 끼치게 한다. 인용하는 것을 이해해 주기 바란다.
“1994년 1차 북핵위기 당시 미국은 핵시설에 대한 외과수술식 정밀공격을 구상했다. 게리 럭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은 이 계획을 워싱턴에 보고했다. 북한이 전면전으로 대응할 경우, 하루 만에 군인 20만명을 포함해 수도권에서만 150만여명의 사상자가 나오고, 개전 1주일 안에 미군과 남북한 병력이 최소 100만명 사망하고, 민간인 사상자는 500만명을 넘어설 것이라는 끔찍한 예측은 이 보고서에 포함돼 있었다.
당시 미국의 반핵 환경단체 천연자원보호협회(NRDC)가 정부 비밀문서를 입수해 분석한 내용은 더 끔찍했다. 북한이 2차 세계대전 때 히로시마에 떨어진 리틀보이급(15㏏) 핵폭탄을 용산의 지표면에서 폭발시킬 경우 직접적인 사망자만 125만명에 이르리라는 것이었다. 다행히 실행에 옮겨지지 않았지만, 당시 김영삼 정부는 속수무책이었다. 북한을 설득할 수도 없었고, 미국을 제지하지도 못했다. 계획을 중단시킨 건 럭 사령관이었다. 그때 한국민의 운명은 미국과 북한에 맡겨져 있었다.(이하 생략)”
어떤가. 잠시 잔등에서 흘러내린 식은땀을 식히기 바란다. 조국을 위해서 한 목숨 초개같이 버린다는 우국충정으로 똘똘 뭉친 애국자들, 지금이라도 당장 북한을 공격해 통일을 이룩해야 한다는 별 들이 많다. 이들에게 죽는 것쯤은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과연 그런가. 진심인가. ‘이 몸이 죽어서 나라가 선다면’인가.
그래 믿어주자. 그러나 정권의 핵심에서 정치를 주무르던 정권의 실세들이 재산을 해외로 도피시킨 사실이 들어날 때마다 전쟁이 나면 죽어야 하는 것은 누군가를 생각하며 국민들은 머릿속이 하얗게 비어간다. 그렇다. 우리가 할수 있는 것은 ‘얌전하게 죽는 것 뿐’이다 라고 눈물이나 흘리면서.
## 설마가 사람 잡는다.
북한이 개성공단 입주업체들에게 개성공단에서 10일까지 나가 달라고 했다. 자기들도 철수할테니 너희들도 나가라는 것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개성은 북한 땅이고 북한 땅에 개성공단이 있다. 그러니까 주인이 나가라고 하니 나가지 않을 방법이 없다.
설마 지들이 우리를 쫓아내기야 하겠는가 느긋하게 생각했을지도 모르지만 딱 눈앞에 닥치니까 정신이 아득한 모양이다. 이해득실 따지면 너희들이 더 손해다 라고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과연 그럴까. 개성공단 문제가 이해득실로 계산될 문제일까. 따져보자. 개성공단에 목을 매고 있는 중소기업체와 하청업체 등 연관기업이 7천여 개라고 한다.
그러나 골 빈 실세들과 똑똑한 언론들은 뭐라고 했는가. 북한은 절대로 개성공단 못 닫는다. 거기서 벌어들이는 외화가 얼마며 개성공단에 목을 매달고 사는 식구가 얼마나 많은데 문을 닫느냐 어림없다. 오장을 박박 긁었다. 가난뱅이 북한으로는 어림 반푼어치도 없다. 과연 그런가. 개성공단이 문을 닫는다는 엄숙한 현실이 코앞에 닥쳤다.
개성공단은 이해득실의 대상이 아니었다. 연평도, 천안함 사건이 일어났을 때도 개성공단은 돌아갔다. 지난 9년 동안 개성공단은 남북간에 증오가 사라진 특수 완층지역이었다. 밖에서 아무리 지지고 볶아도 개성공단이야 설마 어쩔것이냐 했다. 그러나 설마가 사람 잡게 생겼다.
완충지대가 사라지는 것이다. 핵폭탄 16개를 실은 B-2 스텔스 폭격기가 한국 상공을 나른다. 훈련이 무엇인가. 실전에 대비한 것이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다는 스텔스 폭격기. 한국 국민들은 그냥 멀거니 하늘만 쳐다볼 수밖에 없다. 여기는 한국 땅이지만 우리는 주인인지 아닌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기껏 할 수 있는 것이 재벌총수가 귀국했으니 전쟁은 없을것이라는 서글픈 안도감인가.
다시 52년 전, 6.25의 열여섯 살 소년으로 돌아가 보자. 누이의 혼수로 마련해 두었던 비단 치마감을 보리쌀 한 말로 바꿔 등에 진 소년은 한 여름 뜨거운 햇볕에 지친 발길을 옮기고 있었다. 아마 지금의 성남의 분당 쯤이었을까. 산등성이를 타고 넘어 온 미군 전투기 무스탕(나중에 알았다)이 기총소사를 했다. 논두렁에 엎어졌다가 한참만에 일어 선 눈앞에 펼쳐진 아비규환, 조금 전까지 같이 걷던 내 또래의 소년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려져 죽었다.
시골 동네 어른들과 함께 전사한 국군의 시체를 옮기던 기억, 의용군으로 끌려갔다가 포로가 된 초등학교 동창 오대호, 핵폭탄 한 방에 수십만 수백만이 죽는다는 그것만이 전쟁이 아니라 내 기억속에 남아 있는 더 아픈 전쟁은 기총소사에 맞아 숨진 소년과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포로가 된 초등학교 동창 오대호의 슬픈 전쟁인 것이다.
민심이 수상하다. 서로 대놓고 말은 안하지만 전쟁을 걱정한다. 달러 값, 금값이 치솟는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걱정을 해도 국민들에게 무슨 힘이 있는가. 이 땅에 힘 있는 사람이 누구인가. 누가 국민의 운명을 쥐고 있는가.
우리에게 ‘던져진 운명’은 비참하다. 역사가 그랬다. 이 땅에서 벌어진 전쟁은 우리의 뜻과 무관했다. 분단도 6·25도 대리전으로 치렀다. 남의 장단에 춤을 추며 살아 온 역사. 그나마 자신의 주체성을 키우려 했던 민주정부들은 남과 북 서로간에 화해로 자신들의 운명을 남들이 요리하는 일이 없도록 노력했다. 개성공단도 그 중에 하나였다.
주권이 무엇인가. 내 손으로 밥을 먹는 것이다. 남이 먹여주면 먹고 안 주면 굶는 것이 아니다. 남에게 밥숫갈을 맡긴 이명박 정권은 그 모든 노력을 공염불로 만들었다. 맹목적인 대결과 압박으로 남북관계를 철저하게 파탄시켰다.
평화는 거저 주어지지 않는다. 운명에 대한 결정도 마찬가지다. 냉정하게 판단해서 솔직하게 얘기하자. 우리 역사에서 우리가 주인으로서 강단있게 결정한 것이 무엇이든가. 기억해 내 보라. 내 세울 것이 없다. 그러면서도 명을 부지해 온 것은 참으로 끈질긴 목숨 덕이다.
자주국방을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얼마나 자신 있는가. 미국눈치 안 봐도 되는가. 똑바로 쳐다보면 식은 땀 난다. 그래도 국민한테는 큰 소리다. 국민이 믿는다고 생각하는가. 이미 국민에게 신뢰를 잃은지 오래다. 믿지 못하는 국민이 야속한가. 빈대도 낯짝이 있다. 전쟁이 나면 미국 땅에서 하느냐 중국에서 하느냐 일본에서 하느냐. 바로 남과 북, 이 땅에서 벌어진다.
개성공단은 문닫기 직전이다. 어쩔 것인가. 방치할 것인가. 아직도 북한이 달러 때문에 절대로 개성공단을 포기 못한다고 할 것인가. 폐쇄된 개성공단을 그냥 바라보고만 있을 것인가. 무엇으로 문을 다시 열 것인가.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아무 힘도 없는 우리다
이기명 팩트TV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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