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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서지현 검사
깨문 입술이 해방을
등록날짜 [ 2018년02월02일 10시30분 ]
팩트TV 보도국
 
【팩트TV-이기명칼럼】 글로 쓰지 않으려고 했다. 무슨 험한 소리가 나올지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은 내 생에서 다시는 이런 글은 쓰지 않기를 빈다.
 
사과를 드린다. 비록 늙었지만 숱한 사내놈들이 저지른 죄 값을 함께 짊어지지 않을 수 없다. 내 죄는 얼마나 많은가.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오리발만 내밀지 않았던가. 할 말이 없다. 8년 동안 아무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을 서지현 검사에게 잘못을 빈다.
 
■세상에서 가장 슬픈 눈물
 
1월 29일, JTBC 뉴스룸에 나온 서지현 검사는 온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조용한 그의 목소리는 몸 안에 수분이 전부 모인 눈물이라고 느꼈다. 보이진 않더라도 전부 눈물이었다. 질문하는 앵커의 얼굴도 서지현 검사와 다르지 않다. 가슴을 타고 흐르는 앵커와 서지연 검사의 눈물. 한국 검찰의 민낯이 남김없이 드러나는 현장에서 국민들도 함께 울었을 것이다.
 
그놈의 손이 허리에 감기고 엉덩이를 쓰다듬을 때 느꼈을 절망은 사내인 내가 상상을 해도 가슴이 떨린다. 하물며 검찰에 몸담고 있으면서 상관이란 자가 저지르는 짐승 같은 행동을 서지연 검사는 어떻게 견뎠을까.
 
자부심 강한 여검사가 아랫입술을 깨물며 참고 있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하늘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왜 벼락은 있으며 전지전능하신 하늘의 뜻이 왜 그럴 때 발휘되지 못했는가.
 
8년 동안 한시도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을 짐승의 얼굴. 남편을 볼 때마다 떠올랐을 것이다. 아이까지 유산했다. 내 자식을 죽게 한 살인범을 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검찰은 뭐 하는 곳인가. 술 마시고 여성 검사의 허리나 쓰다듬고 엉덩이나 만지는 조직인가. 서비스가 업무인 술집 여성이라 할지라도 이런 대우를 안 받는다. 하물며 여성검사다. 그 자리에 법무부 장관이 있었다. ‘저놈이 나를 수행하는지 내가 저놈을 수행하는지 알 수가 없다’ 탄식하는 법무부 장관. 도대체 당신은 어느 나라 장관인가. 훌륭한 검사들도 얼마나 많은가.

(사진출처 - pixabay)

 
■벌거벗은 임금님
 
대한민국의 검찰은 벌거벗은 임금님이 아니다. 자신들의 모습을 너무 잘 안다. 그렇다면 왜 벌거벗은 모습을 드러내고 사는가. 수치와 겁이 없기 때문이다. 공직자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으면 조폭이다. 검찰은 국민을 겁내지 않는다. 그렇게 살아왔고 그것이 통했다. 통하니까 짐승도 하지 못 할 짓을 자행했고 승승장구 양심을 덮고 살았다.
 
지옥과 같은 8년에 악몽을 떨쳐버린 서 검사의 처절한 용기가 없었다면 검찰은 지금도 벌거벗은 몸뚱이로 상갓집에서 여검사의 허리와 엉덩이를 더듬고 있을 것이다. 사실을 알면서도 덮어버린 검찰국장 최교일은 기가 막힐 것이다. 어쩌다가 검찰이 이 지경이 됐는가. 성추행이 아니라 성폭행을 당해도 입을 꿰매고 살던 여검사가 TV 생방송에 나와 성추행 사실을 그림을 그리듯 그려낸다. 검찰이 이렇게 망해도 된단 말이냐.
 
검사 자식 잘 뒀다고 자랑하던 친구가 입을 봉했다. 자식 자랑은 팔불출이라고 한다지만 잘난 자식이 왜 자랑스럽지 않겠는가. 그러나 속은 꺼멓게 탔다. 열린 귀로 왜 비리를 못 들었겠는가. 이번에 저지른 성추행은 입이 함지박만 해도 할 말이 없다. 검찰이란 동네는 사람 살 곳이 못 된다는 한탄이다.
 
■이제는 안 된다
 
아침에 눈을 뜨고 뉴스를 보기가 무섭다. 어디서 대형 비리가 또 터졌는가. 누구에게 영장이 떨어지고 구속이 됐는가. 이명박 박근혜 정권이 참혹하게 썩은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골고루 사이좋게 썩은 줄은 그래도 몰랐다. 특히 불의를 척결하고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검찰이 이 지경이 됐다는 사실에는 할 말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서지현 검사의 용기는 안타깝지만 위대한 희생이다.
 
비리의 주인공들에게는 한결같은 공통점이 있다. '기억상실증 환자'라는 것이다.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다. 온갖 범죄자들에게 죄를 물었던 훌륭한 검사들이다. 도둑놈이 잡히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은 부인이다. 증거를 코 앞에 들이대고 잡아뗀다. 그들에게서 배웠는가.
 
이제 잡아떼도 안 된다. 증거를 대라고 해도 소용없다. 국민의 뇌리 속에 찍혀있는 영상은 그 어느 증거보다 선명하다.
 
“안아보자” “나랑 자자”
“너는 발목이 왜 이리 굵냐” 
“여자가 웃음이 헤퍼 쓰냐” 
“네 덕분에 도우미 비용 아꼈다” 
“잊지 못할 밤 만들어줄게” 
“누나 오늘 너무 외로워요” 
19금 소리 모음이다. 누가 한 소리인지 알 것이다.
 
■깨진 철옹성이다. 등에 칼 꽂지 말라
 
천년을 두고 깨지지 않을 것이라고 믿었던 철옹성이 깨졌다. 서지현 검사의 작은 주먹이 두들긴 철벽이 깼다. 문을 열어야 한다. 안태근이 교회에 가서 간증해도 소용이 없다. "서 검사 메일 받은 적 없다"던 법무부 장관도 “메일을 받았고 답장도 했다"고 시인했다. 이것이 순리다.
 
여성검사의 큰 언니라라는 조희진 서울동부지검장이 진상조사단장으로 임명되었다. 부단장도 여성검사라고 한다.
 
적폐세력의 저항은 집요하다. 예상했던 대로다. 검찰 내부에서 서지현 검사에 대한 음해가 고개를 든다. 서지현 검사가 정치 할 것이라는 맹랑한 소리가 들린다. 당장 걷어치워라. 언론은 2차 피해의 공범이 되어서는 안 된다.
 
받아드려라. 안태근도 최교일도 장관도 순응해라. 보았을 것이다. 광화문 광장을 밝힌 외로운 촛불 하나가 수 천만의 촛불이 되고 마침내 박근혜는 탄핵당한 뒤 재판을 받고 있다. 여성들의 입을 막았던 강철 자물쇠가 풀렸다. ‘#미투’ 가 촛불처럼 번진다.
 
검찰이 바뀔 것이다. 얼마나 똑똑한 집단인가. 바뀌지 않으면 망한다. 조직이 아닌 진정으로 국민의 위하는 검찰로 태어날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8년을 꽉 깨물고 살아온 서지현 검사의 입술이 해방될 것이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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