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이기명칼럼】
■5.16반란과 중앙정보부
남산은 무서웠다. 남산은 무소불위였다. 애국가에도 나오는 남산. 얼마나 오랜 세월 동안 서울을 내려다보며 의연하게 존재했을까. 그러나 남산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통금이 있었다. 자정 12시, 어김없이 뚜우~ 소리가 나면 국민들은 발이 묶였다. 통행금지였다. 특수신분만이 통행할 수 있었다. 남산을 팔았다. 그럼 무사통과다. 도대체 남산은 무슨 힘을 가졌는가. 당시 중앙정보부는 남산에 있었고 남산은 바로 중앙정보부의 대명사였다.
박정희가 민주정부를 엎어 버리고 군사반란에 성공한 후 만든 것이 중앙정보부였다. 박정희의 조카사위자 반란의 주역 중의 하나이던 김종필이 부장이었다. 중앙정보부에서 국정원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름이 바뀌었는가. 그러나 바뀌지 않은 것이 있었다. 정권 안보였다.
국가안보를 반대하는 국민은 없다. 세계 어느 국가도 국가안보를 위한 조직이 있다. 미국의 CIA, 소련 KGB, 영국의 M16, 이스라엘 모사드. 일일이 꼽을 수도 없는 안보기구 속에 대한민국의 국정원도 있다. 국가 안보를 책임지고 있는 국정원. 국정원은 최초의 원훈은 ‘음지에서 양지를 지향한다’로 알고 있다.
얼마나 자랑스러운 원훈이었던가.
무슨 말로 변명을 해도 군사반란의 정당성은 없다. 그러나 모택동의 말처럼 권력은 총구로부터 나왔다. 박정희의 총구는 헌정을 중단시켰고 그로부터 군부독재는 시작됐다. 혁명공약은 좋았다. 일부만 소개하자.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로 삼고,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 민생고를 해결,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실력배양, 과업을 성취하고 군 본연의 길로 귀환한다.
은인자중하던 군부가 궐기해서 성공한 쿠데타는 대통령 선거에 댓글부대로 참여하는 타락의 모습으로 변했다. 반공을 국시로 하는 정권은 국시를 수호하기 위해 정보부를 최전선에 세웠다. 안보를 위해서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다. 간첩조작, 고문치사도 할 수 있고 거액의 특활비를 대통령과 문고리 3인방에게 바칠 수도 있다.
왜 이리 설명하기가 구차한가. 박정희는 군 본연의 길로 돌아가지 않았다. 고기 맛을 버릴 수가 없었다. 안보는 구실이었다. 궁정동에서 삶을 마감할 때까지 국정원을 앞세워 저지른 만행, 안보를 볼모로 한 국민의 삶은 국정원의 손안에서 무참하게 구겨졌다.
■동백림, 최종길, 장준하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는 이른바 동백림사건이라는 것을 발표했다. 유럽에 있는 194명의 유학생과 교민을 간첩으로 조작했다. 세계적인 작곡가 윤이상, 화가 이응로를 포함해서 이들은 국내로 끌려와 간첩이 됐고 순진무구한 시인 천상병도 간첩이 됐다.
서울법대 최종길 교수는 동생이 근무하는 정보부에 참고인으로 수사협조를 위해 출두했다. 그리고 사망했다. 전기고문 치사였다. 정보부는 최종길 교수가 간첩행위를 한 자책에 투신자살했다고 발표했다. 서울법대 교수를 고문 치사하는 중앙정보부.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그런 세상에서 우리 국민이 산 것이다. 장준하 선생은 1975년 8월 17일 경기도 포천군 소재 약사봉에서 의문사했다. 추락사로 믿는 국민은 하나도 없다.
중앙정보부 하면 김형욱을 빼고는 할 말이 없다. 정보부를 출산한 김종필과 육사 동기생인 김형욱의 악행은 열거할 수조차 없다. 그의 운명은 어떻게 됐는가. 박정희를 배신한 그는 납치되어 살해됐다고 한다. 전해지는 살해 과정도 끔찍하다. 동물사료 믹서기에 넣었다고도 한다.
97년 대통령선거 직전 중국에서 북한 측 인사들을 만나 판문점에서 총격사건을 요청한 혐의로 구속된 권영해가 있다. 이른바 ‘총풍사건'이다. 중앙정보부장 출신이다. 자살하겠다고 커터 칼을 썼다고 한다. 겨우 커터 칼인가. 원세훈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모두 정보부장 출신이다. 공통점이 있다. 이병호 말고 모두 감옥에 있다. 원세훈이 발군이다.
국정원 요원들은 우수한 인재들이다. 스스로 그렇게 믿고 실제로 인재들이다. 그들이 지금 느끼고 있는 자괴감이 딱하다. 쏟아지는 비난을 감당하기가 얼마나 괴로울 것인가. 마치 취재현장에서 쫓겨나는 기레기들과 비슷한 심정일 것이다. 이들의 자부심을 되살려 주어야 한다. 지금까지 국가의 안보를 책임지는 국정원이 아니라 정권의 안보를 책임질 수밖에 없도록 강요된 그들에게 자긍심을 느끼도록 해 줘야 한다.
■국정원 제자리에 세우기
집이 무너지려고 한다. 아니 무너졌다. 그냥 버려둘 것인가. 깔려 죽으려면 가만히 있으면 된다. 지금 국정원이 그 꼴이다. 자부심 모두 잃고 국민의 눈총을 받으며 지낸다. 우리가 무슨 잘못이냐 그저 시키는 대로만 했다. 책임질 자들은 따로 있다. 옳은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조폭 두목이나 행동대나 잘못을 저지른 건 같다. 경중은 있을지라도 말이다.
국정원이란 막강한 조직을 동원해서 정권안보를 위해 진력했다. 댓글부대를 조직 동원해서 민심을 왜곡시켰다. 국민이 피땀 흘려 번 돈으로 낸 혈세를 마치 주머닛돈처럼 마구 뿌렸다.
특활비라는 이름의 국정원 활동비는 대통령의 또 다른 주머니였다. 국정원장이 갖다 바친 36억의 상납금은 대통령의 의상비와 화장비, 격려금으로 사용됐다. 지금 법정에서 얼굴을 맞대고 재판을 받는 대통령과 국정원장들의 모습을 보면 나라가 이렇게 망하고 대통령이 이렇게 타락하고 국정원이 이 꼴이 되는 과정이 서글프기 짝이 없다. 거대한 비극이다. 희생된 국민들이 얼마나 많고 그들이 흘린 눈물은 강물을 이루었다.
■국정원 바꿔! 대공수사 손 떼!
차를 정비하고 출발선에 섰다. 우수한 운전자가 운전석에 앉았다. 목적지도 분명하다. 이제 악셀을 밟으면 차는 달릴 것이다. 목적지에 도착할 것이다. 축구경기에서 차범근이 볼을 잡으면 관객은 안도한다. 믿기 때문이다. 이명박·안철수가 아무리 약속을 해도 사람들은 믿지 않는다. 믿고 안 믿고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난다.
드디어 국정원 개혁안이 발의됐다. 발의자는 민주당의 김병기 의원이다. 그는 풍부한 경험과 훈련으로 준비된 선수다. 국정원 인사처장의 경험으로 거울 속처럼 국정원을 속속들이 알고 있다.
국정원의 이름부터 바꾼다. ‘국가정보원’을 ‘안보정보원’으로 바꾸는 것이다. 정보 수집을 한다는 이유로 온갖 불법을 일삼던 국내 정보수집 기능도 삭제하며 직무 수행의 구체적인 범위를 규정해 직무 일탈을 제도적으로 차단한다.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넘긴다. 대공 수사라는 칼을 들고 마음대로 휘두르던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은 경찰로 넘긴다. 탁 치니까 억하고 쓰러졌다는 경찰을 믿을 수 있겠느냐. 칼 잡으면 쓰고 싶은 게 인간이다. 경찰의 권한 남용을 막아야 한다.
국정원 직원들의 상실감과 억울함이 있을 수도 있다. 당나귀 이것저것 다 떼어버리면 남는 게 뭐가 있느냐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국민이 국정원의 개혁을 원하고 또한 과거에 대한 성찰과 반성은 반드시 필요하며 국정원이 아닌 국민의 시각에서 개정안을 수용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지지 이상으로 힘이 되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번 개정안의 핵심은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고, 국회를 중심으로 내·외부 관리 감독 및 통제 기능을 강화하여 권력기관에 대한 상호 견제와 균형을 이루도록 한 것이다”
“그동안 무너진 정보기관 본연의 순기능을 강화하여 오로지 국민과 국가만을 수호하고 헌신하는 순수 정보기관으로 거듭나게 하기 위한 간절한 바람이 담겨있다”며 “대공수사권의 경찰 이관은 국정원 창설 이후 57년 만에 순수 정보기관으로 도약하는 전기가 마련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더는 망가질 수 없을만큼 망가진 국정원. 이제 새로 태어난다. 국민의 뇌리에 공포와 증오의 대상으로만 남아 있다면 안보정보원의 미래는 없다. 국민과 함께해야 한다. 진정으로 음지에서 탈출해야 할 것이다. 국민의 사랑이 가득한 양지를 지향해야 할 것이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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