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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명 칼럼] 한국의 언론, 낯 뜨거운 자화상
등록날짜 [ 2013년10월30일 13시59분 ]
팩트TV뉴스 이기명 논설위원장
【팩트TV】
한국의 언론, 낯 뜨거운 자화상
오욕의 역사. 지워지지 않는 기록.

 

이기명 팩트TV논설위원장
 
식당 갔다가 모 모 신문이 있으면 반드시 들고 나오는 친구가 있다. 누굴 보여주려구 가져가느냐 물으면 천연스럽게 대답한다. ‘오물은 누구든지 빨리 치우는 게 좋은 일’이라고.
 
전철에서 옆에 모 모 신문을 보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코를 막는 친구에게 왜 그러느냐고 물으면 냄새 때문에 도저히 코를 열어놓고 있을 수가 없다고 한다. 친구가 유별난 것인지 진짜 냄새가 나는 것인지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다. 비꼬는 것인가.
 
항의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무슨 그 따위 소리를 하느냐고 욕도 할 것이다. 욕하지 말라. 언론의 황금시대다. 우리 언론은 지금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조 중 동도 얼마나 자유를 향유하고 있는가. 걸레니 찌라시니 하는 조롱을 들으면서도 언론자유 만끽이다. 어찌 조 중 동 뿐이랴. 공중파는 하나도 빼지 않고 언론자유를 향유한다. 종편 역시 아침방송 <애국가 시청률>을 즐기면서 의기양양이다. 욕을 먹으면서 자기 좋은대로 사는 것이다. 진짜 의기양양일까. 누가 한 번 물어보라. 긴가 아닌가.
 
인간은 정치적인 동물이라는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사람이 정치를 떠나서는 살 수가 없다. 정치로 해서 원수도 맺고 사람도 죽이고 심지어 대통령도 죽음에 이르게 하고 죽은 대통령 또 죽인다. 그 중심에 언론도 끼어 있으니 얼마나 대단한가. 정치를 하면서도 스스로 ‘정치가 뭔지’라며 탄식을 하는 정치인이 많다. 그래도 끊지 못해서 정치를 마약이라고 하는 것일까. 마약중독자 수용소로 보내야 할 정치꾼들도 많다.
 
왜 정치를 하느냐고 물으면 백이면 백, 같은 대답을 할 것이다. 국가와 국민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라고 말이다. 대답은 99점이다. 제대로 국민을 위해서 최선을 다 했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을 할 것인가. 할 말이 없을 것이다. 뻔뻔한 정치인들의 대답은 들을 필요도 없다.
 
지금 국정감사 중계방송을 들으면서도 목이 간질거린다. 욕을 못해서다. 보훈처장 박승춘의 꼬락서니를 보라. 이른바 국민의 대표라는 국회 국정감사장에서 자료제출도 못하겠다고 버틴다. 선서를 거부하는 경찰창장 출신인 김용판도 있다. 이게 무슨 똥배짱인가. 국감장에서 실실 웃으며 뻔한 거짓말을 늘어놓은 이런 자들을 누가 고위직에 임명했는가. 정치가 개판이 안 되면 그게 오히려 이상할 것이다.
 
경기도 가평군수는 새로 뽑았다 하면 구속이다. 이들은 구속이 되기 위해 출마를 한 모양이다. 비단 가평군수 뿐이랴. 국회의원도 같다. 우리나라 정치의 현주소다. 이들 오물 정치인들이 횡횡하고 범람하는 원인은 그들 자신의 잘못이 가장 크지만 국민들의 잘못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손벽이 혼자 울수 없는 것이나 다름없다.
 
정치를 감시하는 것은 누구인가. 당연히 국민이다. 국민이 똑똑하면 독재도 불가능하고 정치인의 부정도 불가능하다. 물론 쌀에 뉘는 간혹 있지만. 국민은 먹고 살기 바쁘다. 그래서 국민을 대신해 정치와 정치인이 비리를 감시하고 시정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언론이다. 언론의 감시기능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민주주의 국가에 있어서 언론은 정치부패를 방지하는 소금이다. 소금이 없으면 음식이 썩는 게 당연하듯이 언론이 정치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하면 정치 역시 썩은 오물로 전락해 버린다.
 
### 언론은 무엇을 했을까 
 
언론인들에게 언론의 사명이 뭐냐고 물으면 뭐라고 대답을 하는가. 사회비리를 깨우치는 목탁이고 거울이라고 한다. 모범답안이다. 실제로 언론에 입문할 때 그런 각오를 하지 않은 기자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 사회에 비리를 파헤치고 악당을 응징하는 정의의 투사를 꿈꾸며 기자의 길을 영광스럽게 딛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은 어떤가. 영광스러운 길은 오욕의 길이 됐다. 촛불을 켜드는 시국회의 현장에서 쫓겨나는 동료 기자들을 보면서 다행스럽게 쫓겨나지 않는 기자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당장 기자노릇 때려치우고 싶다고 하는 후배들을 많이 본다. 그러나 그럴 수가 없다. 그것이 현실이다. 또 다른 변명도 있다. 기자 그만 두면 어쩔 것인가.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기자라도 하니까 어쩌다가 옳은 소리 한 마디 쯤 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또 있다. 내가 그만 둔다면 세상이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누가 내 식구 먹여 살릴 것인가. 정론기자라고 표창장 주는가. 다 부질 없는 짓이다. 언론자유 찾는다고 파업하고 상급자들과 싸운 결과는 어떻게 됐는가. 모두 해직기자가 됐고 기자에게 샌드위치 만드는 요리법이나 배우란다.
 
목이 날라 간 후 몇 년 째 백수다. 아내 보기가 미안하다. 처음에는 그래도 큰 결단이라고 칭찬하던 동료들도 멀어진다. 왜 이 짓을 하는가 후회도 된다. 그냥 엎드려 시키는대로 쓰면서 살걸. 왜곡이면 어떻고 불공정이면 어떻고 허위보도면 어떠냐. 아부아첨이면 어떠냐. 어떤 놈은 그렇게 안사냐. 어차피 한 번 살다가 사는 인생인데 살아 있을 때 편하게 잘 살아 보자.
 
사실이다. 대부분의 기자들이 그렇다.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던 적어도 행동은 그렇다. 어쩌다 마주 앉은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죄송하다는 말이다. 그 말 한마디에 모든 것이 포함되어 있다. 길에서 나만 보면 얼굴색부터 변하는 기자가 있다. ‘아직도 거기서 밥 얻어먹고 사냐?’ 물으면 ‘갈 곳이 없습니다’ 천연덕스럽게 웃으며 하는 말이다. 이제는 뻔뻔해 졌다. 얼굴이 악어가죽이다. 그러나 가슴 밑바닥에 깔려 있는 다른 또 다른 말은 ‘가엾다’ ‘측은하다’는 생각이다. 머리 좋다는 기자들이 왜 모르겠는가. 속으로는 통곡을 할지도 모른다.
 
비난만 할 것인가. 아니다. 지금 이 척박한 언론환경에서 열심히 사는 기자들이 있다. 할 말 하는 기자들도 많다. 그들의 발이라도 씻겨주고 싶다. 업어주고 싶다.
 
### 치열하게 싸운 기자들도 있었다 
 
언론민주화의 거센 바람이 불 때 현장을 지켜봤다. KBS 사옥에 전경이 상주하는 비극과 민주광장에서 피를 토하듯 언론민주를 외치던 기자는 병을 얻어 세상을 떴다. 그 때 민주광장에서 소리높이 울부짖던 젊은 기자는 이제 간부가 되어 반민주 언론에 선봉장이 됐다. 타락도 발전하는 것이다. 못된 시집살이 겪은 며느리가 더 못된 시어미가 된다더니 옛 말 틀린 거 하나도 없다.
 
머리에 띠를 두르고 거리 시위를 하던 MBC 기자들의 뒤를 따라가며 그들의 핏발선 눈을 본 기억은 생생한데 지금 MBC 뉴스는 시청률 최하위, 조롱의 대상이다. 파업에 가담했던 직원들에게 손해배상 가압류 소송을 한다. 자랑스러운 MBC가 창피한 MBC가 됐다. 스스로 정권의 개, 권력의 개라고 한다.
동물원에 가면 맹수도 길들이기 나름이라는 생각을 한다. 맹수가 사람들의 눈치를 슬슬 본다. 맹수도 눈치가 빤하다. 사육사가 먹을 것도 주고 자신을 돌봐주는 절대자라는 것을 안다. 말 안 들으면 손해라는 것을 아는 것이다. 으르렁 거려 봤자 돌아오는 것은 채찍과 허기다. 무릎 꺾자.
 
기자를 무관의 제왕이라고 했다. 불의는 용서 없다. 기개가 하늘을 찌른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초짜 기가가 경찰서장실 들어갈 때 발끝으로 밀고 들어갔다고 한다. 기죽지 말라는 것이었다. 진짜로 기죽지 않았다.
 
좋은 부분만 얘기하자면 시민들의 기자를 보는 눈도 남달랐다. 일제시대 기자들은 애국투사였다. 자유당 때도 그랬다. 동아일보 경향신문 기자들은 반독재투쟁의 선봉이었다. 서울신문은 찌라시였다. 오늘의 조 중 동 같은 평가다. 결국 4.19 때 화마의 입속으로 들어갔다.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다.
 
기자들이 길 들여진다. 이젠 입사 때부터 아예 반골기질은 걸러낸다고 한다. 경력기자 뽑는다. 말 잘 듣는 순한 양만 필요한 것이다. 반골기질은 기자의 필수조건이라고 생각한다. 불법이나 불의를 파헤치고 응징하려면 반발이 엄청 셀 것이다. 더구나 권력을 쥔 자들이 얼마나 열을 받겠는가.
 
방송도 못할 거 뭐하러 찍느냐. 꺼져라. 시위현장에서 온갖 모욕 다 당하고 돌아서는 기자들을 보면서 참 견디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을 늘 한다. 회사에 들어가면 취재 못했다고 구박은 안 당할까. 50여 년 언론현장을 지켜보며 지금처럼 악랄한 때는 처음이라는 생각이 든다. 몰론 박정희 전두환 시대에 당한 살인적 학대야 이루 말할 수 없지만 지금은 잡아다가 주리를 틀지는 않지만 정신을 갉아 먹는다.
 
세상이 바뀌면 기자들의 처신은 어떻게 될까. 시류에 따르면 된다. 얼마나 철저하게 훈련을 받았는가. 지금 데스크가 국장 본부장들이 한 줄타기를 모두 기억할 것이다. 기억대로 행동하면 된다. 과연 그럴까. 두고 볼 일이다. 역사는 기록이다. 언론도 역사가 있다. 지금 한국언론의 작태도 모두 기록이 된다. 세상이 좋아져서 영상으로도 남는다. 전두환을 찬양하던 김인규의 리포트를 보면서 그는 이를 원망을 했을 것이다. 자자손손 모두가 자랑스러운 자신의 모습을 볼 것이 아닌가.
 
### 사는 거 중요하다. 그러나 양심을 울게 말라
 
우리가 못된 짓을 얼마나 했기에 그러느냐고 항의는 못할 것이다. 일일이 거론을 하면 서로가 고통이다. 현실을 인정하기게 KBS의 김용진 기자처럼 그만 두라는 말은 안한다. 이용마 이상호 최승호 박성재 박성호 등 MBC해직 기자처럼 목이 잘리면 안 된다.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 어느 놈이 무슨 소리를 해도 세상은 바뀌고 그들이 이 나라 언론을 끌고 갈 주인공이다.
 
지금 언론에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불법과 불의를 얼버무려 합리화 해 기사를 써 넘기고 부끄러워 다시 읽어보지 않더라도 가슴속에 남아 있는 기사는 도리가 없을 것이다. 자신이 죽어도 기사는 남는다. 송건호 선생님이나 리영희 선생님이 위대한 것은 그들이 올바른 언론사를 썼기 때문이다.
 
걸레와 찌라시를 만들어 내는 기자들에게 말한다. 먹고 살기위해 더러운 기사를 쓴다. 출세를 위해 권력에 타협을 한다. 다 좋다. 그러나 한 가지는 잊지 마라. 니들 자식이 너들의 기사를 읽는다는 사실만은 절대로 잊지 마라. 도둑놈도 도둑질한 물건은 절대로 자식들에게 보여주지 않는다.
 
“윤창중 이후 똥값이 된 기자들 눈에도 현실은 보일 것이다. ‘공안할배’들의 세력화. 교과서 파동, 언론 장악 기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패륜적 공권력의 만행, 역사를 되돌리는 제2의 새마을 운동 선언. 박근혜 정권이 벌리는 일련의 사태는 영구집권의 기초다지기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다. 영구집권이 무엇인가. 영구독재다. 유신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이다.
 
순한 양처럼 길들여 진 것을 안다. 그러나 기자들아. 굶어 죽지 않을 정도로만 아부를 해라. 모가지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만 기사를 써라. 그것도 못할 정도가 되면 몸을 던져라. 한 번 죽지 두 번 죽느냐. 니들이 짓고 있는 죄는 백 년을 두고도 씻지 못할 죄다. 기자들 양심을 한 번만 살려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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