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이기명칼럼】전쟁과 평화는 상극이다. 그러나 인간은 평화를 위해 전쟁을 한다 하고 전쟁은 수많은 인간의 목숨을 요구한다. 역사가 생긴 이래 이런 모순 속에서 인간은 지금도 전쟁을 하고 있다.
한반도의 가운데를 뚝 잘라놓은 38선. 6·25전쟁으로 다시 그어진 휴전선. 언제 터질지도 모르는 전쟁에 위험 속에서 남과 북은 칼날 위에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이것이 평화인가.
■평화는 최선이다
나는 이 자리에서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는 북한의 붕괴를 바라지 않으며,
어떤 형태의 흡수통일도 추진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인위적인 통일을 추구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통일은 쌍방이 공존공영하면서 민족공동체를 회복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통일은 평화가 정착되면 언젠가 남북간의 합의에 의해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일입니다.
나와 우리 정부가 실현하고자 하는 것은 오직 평화입니다.
한반도와 함께 분단에 아픔을 겪은 독일, 베르린 쾨르버재단 초청 연설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가장 역점을 둔 것은 평화였다. ‘평화’ 속에는 국민의 염원이 배어 있고 우리가 후손들에게 남겨 줄 가장 소중한 선물이 들어있다. 평화 없이는 그 어떤 성취도 이룰 수 없다.
김정숙 여사가 지난 5일(현지시간) 베린를 인근 가토우 공원묘지를 찾아 동백림 사건에 연루돼 사형선고를 받은 뒤 특사로 석방돼 서독으로 귀화한 작곡자 故 윤이상 선생의 묘소에 통영 토종 동백나무를 심었다.(사진제공 - 청와대)
■윤이상 묘 앞에 심어진 통영의 동백나무
고향이란 무엇인가. 6·25 전쟁이 터지고 피난을 갔다. 죽고 죽이는 처참한 비극을 목격한 10대의 어린 소년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마을을 가린 언덕 위에 올라서서 내려 다 본 고향 마을. 느티나무는 거기 그냥 우람하게 서 있고 감나무에는 연시가 달려 있다. 조상이 묻혀 있는 묘소가 보이고 초가 굴뚝에서는 연기가 피어오른다. 동산에서 울던 산 꿩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눈물이 왈칵 솟았다. 아 아 얼마나 보고 싶던 고향인가. 불과 몇 달간 떨어져 있었던 고향이건만 무엇으로도 표현할 수 없었던 감동. 그것이 고향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는 7월 5일 단독 일정으로 베를린 가토우 공원묘지 안에 있는 작곡가 윤이상 선생의 묘를 찾아 참배했다. 선생은 현대 음악에 족적을 남긴 세계적 작곡가로, 유럽 유학 중이던 1967년 ‘동백림(동베를린) 간첩단 조작 사건’에 연루돼 사형 선고를 받았다.
2년 뒤 특사로 석방된 뒤 서독으로 귀화한 선생은 1995년 폐렴으로 생을 마감할 때까지 조국 땅의 입국을 허락받지 못했다. 선생에게 고향인 통영의 동백나무는 고향을 만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고향을 그리워하며 베를린에서 숨을 거둔 작곡가 윤이상 선생은 생전에 일본에서 배로 통영 앞바다까지만 와 보고 고향 땅을 못 밟았다. 김정숙 여사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많이 울었다고 했다.
성악을 전공한 김정숙 여사에게 윤이상 선생의 비극적 삶은 깊은 의미를 지닌다. 그는 윤이상 선생의 고향인 통영에서 동백나무를 가져왔다. 그는 윤이상 선생의 마음이 조금은 풀리시길 기원한다고 했다.
윤이상 선생 묘지에는 고향의 향기를 담은 동백나무 한 그루가 심어졌다. 정상회의 참석차 독일을 찾은 문재인 대통령 부부의 귀한 선물이다.
대한민국 통영시의 동백나무. 2017.7.5. 대통령 문재인 김정숙
동백나무 앞 석판에 새겨진 글이다. 이것은 비단 문재인 대통령 부부의 마음만이 아니고 조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위대한 예술가의 비극을 슬퍼하는 한국 국민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윤이상 선생의 고향 통영에서는 현직 통영시장 주도로 그의 흔적을 지우려는 시도가 몇 년째 시도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도에 의하면 그의 생가터는 도로공사로 인해 매몰위기에 처해 있다고 한다. 이럴 수가 있는가. 정녕 이럴 수가 있는가. 가슴을 친다.
■전쟁, 그 피해자는 누군가
국민들은 미국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았다. 세기의 변덕쟁이라는 트럼프와 대화하는 대통령의 표정 까지도 볼 수 있었다. 얼굴은 마음의 거울이라고 한다. 속일 수가 없다. 트럼프와 회담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을 보면서 국민은 무엇을 느꼈을까. 진정성과 당당함이다.
안하무인이 딱 어울리는 트럼프와 마주한 문재인 대통령은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인간은 어느 상대를 만나든지 나름대로 점수를 매긴다. 이건 억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솔직한 점수다. 여기서 나타난 점수가 상대를 대하는 태도에 나타난다. 솔직히 나는 트럼프의 태도에서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신뢰를 느낄 수 있었다. 겉과 속이 다르지 않은 대통령의 인품에 느낌이 각별했을 것이다.
겸손이라든지 신뢰라든지 하는 말들은 그냥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발휘하는 힘은 대단하다. 트럼프와의 회담이 성공적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신뢰였다. 트럼프의 표정에서 신뢰를 읽을 수 있었다. 더 얘기할 필요가 없다. 미국 방문은 성공적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는 별로 말할 것도 없거니와 실제와는 상관없이 부시 대통령을 태우고 ‘골프 카트’ 핸들을 잡은 이명박 대통령에게서 느낀 묘한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힘 센 자와의 만남에서 당당함이란 참 어렵다. 자칫 허세로 보일 수도 있다.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방문이나 G20회의 참가에서 보여준 역량은 외교적 성과와 상관없이 국민이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해외동포들과의 만남은 대통령 부부의 진솔한 동포 사랑이 그대로 배어 나오는 것이었다. 대통령 부부를 대하는 해외동포들의 모습에서도 진심으로 환영하는 마음이 보였다. 그것은 독일에서 동포를 만나는 문재인 대통령을 바라보는 메르켈 독일 총리의 표정에서도 역력히 드러난다. 해외동포들은 가슴이 벅차다. 재미동포의 경우, 과거에는 코리안이라는 말을 터놓고 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이유는 잘 알 것이다. 그러나 이제 촛불 혁명으로 민주주의를 꽃피운 조국에 대한 자부심과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방문으로 재미동포들은 어디를 가서도 ‘코리안’이라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자랑스러운 촛불 혁명으로 불의한 대통령을 탄핵한 민주시민의 절대적 지지를 받는 대통령의 자부심과 당당함은 실로 경험해 보지 못한 감동이었다. 이것은 앞으로 나올 수많은 대한민국 대통령에게 좋은 교훈이 될 것이다.
■국민이 소원 ‘민주주의와 평화’
국내 정치는 파행의 연속이었다. 대선이 끝나고 인수위도 없이 출범한 문재인 정권은 바람 잘 날이 없다. 초장에 길들일 생각이었는지는 몰라도 야당은 청문회라는 칼을 휘둘렀다. 청문회라는 제도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가 있다. 이건 청문회가 아니라 발가벗기기 대회다. 말이 되든 안 되든 우선 상처부터 입히고 보자는 것이다. 세상에 허물이 하나도 없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하도 엉망인 인간들이 벼락감투를 쓰고 난장을 펼치니 억제장치로 청문회를 만들었는지 모르지만, 이것이 모두의 발목을 잡았다. 국민이 잘 알 것이다. 반드시 개선이 있어야 할 제도다.
북한은 ICBM 실험에 성공했다 하고 미국의 B-1B 폭격기가 한국 상공을 누빈다. 김정은이 핵실험을 포기하겠는가. 김정은은 핵 보유에 운명을 걸고 있다. 긴장이 평화의 한 방법이라는 정치평론가도 있지만, 도무지 불안해서 살 수 있는가. 새 정부가 하는 일은 반대부터 하고 보는 야당이다.
정당 간에는 찬성과 반대도 있고 정치싸움도 있다. 그러나 전제가 있다. 민생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민생은 국민의 생활이다. 국민의 생존이다. 추경을 정치싸움에 연계해서 어려운 경제를 더욱 어렵게 한다는 것은 국민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만행이다. 이 짓을 바로 야당이 하는 것이다. 국민의당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더구나 추경을 볼모로 정치를 파행시키고 있는 것은 절대로 국민이 용서할 수가 없다. 지지율이 4%다. 더 이상 더 떨어져야 하는가.
세계의 눈이 한국으로 쏠려 있다. 대통령의 외교는 성과를 거두고 실종된 4자회담을 다시 이끌어 내는 데 성공했다. 4자 회담의 성공 여부는 한반도 긴장을 완화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조금 있으면 추석이 온다. 이번 추석에는 남북의 이산가족이 다시 만나기를 기원한다. 조국을 떠나 만리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다가 타계한 윤이상 선생도 고향인 통영이 그리울 것이다. 비록 통영의 동백나무가 꽃을 피워도 그의 영혼은 고향 통영을 떠나지 않을 것이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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