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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팽형(烹刑)’을 아시나요
‘미르’ ‘K스포츠’ ‘최순실’ ‘전경련’
등록날짜 [ 2016년09월26일 10시03분 ]
이기명 논설위원장
 
【팩트TV-이기명칼럼】<백남기 님 사망.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광화문 광장에 구름 같은 인파가 모였다. 무슨 구경인가. 커다란 가마솥이 걸렸다. 밑에서는 장작이 탄다. 잠시 후 오랏줄에 묶인 인간이 끌려 나온다. 죄목이 낭독된다. 부패한 고위공무원이다. 집행관의 명령이 떨어진다. 포청천 영화로 말하면 개 작두 위에서 목이 떨어지는 순간인데 개 작두 대신 가마솥에 끓는 물이다. 오랏줄에 묶인 죄인을 가마솥에 던져진다. 삶아져서 죽는 것이다. ‘팽형’의 집행이다. 옛날얘기다.
 
살기 어렵고 힘들면 차라리 콱 죽어 버리고 싶다고 한다. 나라 꼴이 하도 엉망이면 이놈의 나라 차라리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죽고 싶고 나라가 망해 버리기를 원하는 국민이 어디 있으랴. 고생해도 살고 싶고 내 나라는 절대로 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국민의 마음이다.

(사진출처 - 청와대 홈페이지)

 
■‘미르’는 뭐고 ‘K스포츠는 또 뭐냐
 
‘미르’와 ‘K스포츠’는 재주도 좋다. 재단이야 필요하면 만들 수 있지만 ‘미르’와 ‘K스포츠’는 경우가 다르다. 아무리 초고속 시대라고 하지만 전광석화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신청 하루 만에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 설립을 허가했고 이들은 재벌기업들로부터 800억 원이 넘는 기금을 한 달 안에 마련했다.
 
두 재단의 ‘창립총회 회의록’은 회의 장소, 안건. 회의 순서, 문구, 분량 심지어 회의에 등장하는 상당수 인물까지 판박이다. 회의록은 정관과 함께 설립을 신청할 때 제출해야 하는 중요한 서류 중 하나다. 그러나 두 재단의 회의록은 일부 인물 출연금 액수 등에서 작은 차이가 있을 뿐, 복사라도 한 듯 똑같다.
 
심지어 한 기업 임원은 직책이 부사장인데 상무라고 기재돼 있고 더 어처구니없는 일은 두 재단의 총회 회의록이 아예 가짜로 판명 났다. 실제 회의는 열리지 않았고, 회의록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참석한 적이 없다고 밝히고 있다. 어느 기업 부사장은 “K스포츠 재단이 뭐죠? 전혀 모르겠는데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이용했다고 하는 날짜에 회의장은 대여된 적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정관도 회의록도 모두 엉터리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 물 팔아먹은 솜씨다. 이래도 의혹을 제기하는 것이 이상하단 말인가.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이란 이름이 등장했다. 오랜만에 다시 듣는 이름이다. 대통령과는 언니 동생 하는 사이라고 알려졌고 대통령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던 故 최태민 목사의 딸이다. 또한, 지금은 이혼했지만 온갖 소문의 핵심인 정윤회의 이혼한 부인이다.
 
항간에는 청와대 실세라고 하는 이른바 3인방이 있다고 한다. 한데 이들이 몸뚱이의 살이라고 한다면 최순실은 ‘오장육부’라고 했다. 살이야 썩으면 도려내도 살지만, 오장육부가 썩으면 도리 없이 죽어야 한다. 최순실의 존재는 그만큼 막강하고 소중하다는 의미다. 최순실의 존재가 이 정도로 부각되어 세상을 뒤흔들어 놓는다면 이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국민이 보내는 의혹의 시선은 박근혜 정권의 정국 운영에도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것이다. 이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도 각별한 관심을 표했고 급기야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강도 높은 비난을 했다.
 
“이런 비상시국에 난무하는 비방과 확인되지 않은 폭로성 발언들은 우리 사회를 흔들고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미르’ ‘케이(K)스포츠’ 재단과 관련된 각종 의혹과 대통령 최측근이라는 최순실의 ‘비선 실세’ 논란을 비판하며 ‘안보위기 극복’의 저해요인으로 지목한 것이다. 대통령의 말은 맞다. 그러나 방향은 틀렸다. 먼저 조사가 우선이다. 정치는 여론을 무시할 수 없다. 폭로성 발언의 실체를 명백하게 국민에게 밝히도록 조치를 하고 그 결과를 국민에게 알리는 것이 우선이다. 자신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불순세력이라 단정한다면 국민 누구도 동의할 수 없다.
 
■재벌의 인심은 그토록 후한가
 
주머니에서 인심이 난다고 했다. 재벌이야 원래 돈이 많다고 하지만 위조지폐 찍어내는 것도 아닌데 너무 했다. 불과 보름 동안에 800억이란 돈을 선 듯 냈다. 내 돈 내가 쓰는 데 무슨 말이 많으냐고 하면 할 말이 없지만, 국민도 내 입으로 말할 권리는 있다. 의혹이 산처럼 쌓여있는 사건에 대해서 국민이 왜 입 다물고 있어야 하는가.
 
기막힌 일은 또 있다. 기금을 출연한 재벌기업, 특히 건설업체들은 비슷한 시기 자신들이 설립한 ‘사회공헌재단’에는 약정액에 턱없이 부족한 3%만 출연하거나 아예 한 푼도 내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고 경영난 등을 이유로 분담액 납부 시기를 늦춰 달라고 국토부에 사정했다는 것이다. 이러면서도 강제모금이라고 하지 않을 것인가.
 
"이번 사건은 권력 실세, 비선 실세 문제로 시작해 대기업의 거액 자금 출연, 불투명한 재단 운영 등 종합적으로 볼 때 권력형 비리".

"대통령과 최 모 씨와의 특수 관계로 설립된 재단을 허가하는 과정에서 문화부의 태도가 이해 안 된다" "공익재단의 설립 목적과 추진 주체를 정밀하게 점검할 의무가 부처에 있는데 어떻게 하루 만에 확인할 수 있나. 이것은 미리 해주기로 권력 실세가 합의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대기업의 묻지 마 출연 문제도 800억 원이 넘는 게 자발적 모금이라고 하는데 과연 가능할까. 10개월간 별 사업 없이 돈만 쌓고 세월을 보냈는데 이 정도면 문체부와 관리 관청이 실사해 징계받을 사안".

"당사자가 분명히 해명하고 문제를 해소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국회 차원에서 집중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겠다"

우상호 민주당 원내 대표의 말이다.
 
청와대는 어떤 반응인가. ‘언급할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한 마디. 간단해서 좋다.


(사진출처 - JTBC 영상 캡쳐)

 
■유언비어 유포죄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말이다. 소름 돋는 죄목 아닌가. 1970년대와 80년대. 철저한 언론 통제로 사실을 알 수도 없고 알일 수도 없던 시절에 사람들은 입에서나마 나직하게 전해지는 진실을 독재는 ‘유언비어’라 했다. 1980년 5월 광주에서 죄 없는 국민이 어떻게 죽었는지 국민은 ‘유언비어’를 통해 귀동냥했고 이는 처벌의 대상이 됐다. 이제 다시 그 시대가 부활하는가. ‘미르’ ‘K스포츠’ 시대인가.
 
박근혜 정권은 공식적으로 발표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이 입을 닫고 살 거 아닌가. ‘임금님의 귀는 당나귀 귀’는 대나무 숲에서만 들리는 소리가 아니다. ‘
 
‘정권차원의 일에 우리는 입이 없다.’면서 먼 산만 멀거니 쳐다보는 재벌기업들. 이른바 온갖 소문을 유언비어로 처벌한다면 남을 국민은 몇 명이나 될 것인가.
 
“우병우 민정수석은 온갖 의혹이 제기되는데도 도저히 수긍할 수 없는 이유로 사퇴를 거부하고 있다” “우 수석의 민정비서관 발탁, 청와대 입성은 최순실 씨와의 인연이 작용한 것이라는 얘기가 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의 대정부 질문 발언이다. 우병우 민정수석은 검사장 승진에서 탈락. 변호사 개업 중 2014년 5월 청와대 민정비서관에 임명됐고, 8개월 만인 이듬해 민정수석으로 고속 승진했다. 연배를 중시하는 박 대통령의 인사 스타일을 고려할 때 파격적인 인사였지만 자세한 배경은 알려진 바 없었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의 대정부질문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재계가 수백억 원을 출연해 만든 미르 재단과 케이(K)스포츠 재단의 설립·운영에 최순실 씨가 깊숙이 개입했다는 정황이 드러난 가운데 제기된 주장이어서, 박 대통령과의 관계를 둘러싼 의혹이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 눈은 무섭다
 
범죄는 적법한 절차에 의해 처벌되어야 한다. 죄인을 가마솥에 삶는 ‘팽형(烹刑)’은 말이 안 되지만 오죽하면 국민은 팽 형을 생각하는가. 국민의 분노를 끓도록 한 검사장들의 비리가 팽 형으로 처리된다면 국민은 뭐라고 할 것인가. 국민의 마음속에서 그들은 이미 팽형을 당하지 않았을까.
 
지난 9월7일 손석희 앵커 브리핑 제목은 “'팽 형에 처하노라~' 잊어버린 수치심” 이였다. 브리핑 인용을 이해 바란다.
 
<뉴스룸 앵커브리핑을 시작합니다.> 

조선 철종 임금 시절. 한양 우포도청 앞 혜정교 한 가운데에 커다란 가마솥이 걸렸습니다. 

'팽형에 처하노라~'

포도대장의 명이 떨어지면 탐관오리로 붙잡혀온 사람이 포박을 당한 채 가마솥에 들어갔습니다. 

'팽형' 즉 물이 펄펄 끓는 가마솥에 넣어 삶아 죽이는 형벌을 받게 된 겁니다. 실로 '엽기적'인 형벌이었지요… 모두가 숨죽이는 순간… 

그러나 반전은 있습니다. 가마솥의 물은 그저 미지근했습니다. 실제로 삶아 죽이는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그러나 솥에 들어갔던 사람은 마치 죽은 사람인 양 칠성판에 실려 돌아갔고, 장례가 치러지고, 그길로 금치산자가 되었다 합니다. 

'수치심'으로 벌하는 것. 

탐관오리에게 사회적인 죽음을 내렸던 조선시대의 팽형은 그렇게… 수탈당해온 백성을 위로했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이들 역시 그 팽형의 수치심을 느꼈을까…

현직 부장판사가 구속되고… 현직 검사장이 구속되고… 또 다른 부장검사가 또다시 특별감찰선상에 오른 사건… 이들이 내세웠던 사회정의보다 결국 돈이 앞선 시대의 민낯…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굶어죽는 게 더 영광이다" 

현직 대법원장이 대국민 사과에서 인용한 초대 대법원장의 이 말은 지금 과연 어떤 무게를 갖고 있는가…

그들은 스스로만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사실은 국민들로부터 이미 '팽형'… 즉, 신뢰의 죽음을 당한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다리 위에 커다란 솥이 걸리던 그 시대. 당시의 수치스러움이 한평생 이어질 부끄러움이었다면 지금의 수치스러움은 잠시만 버티면 지나갈 것만 같은, '유효기간'이 설정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무엇보다도 무거워야 할 대법원장의 사과 역시 사람들의 가슴 속에 깊이 가라앉지 못하고 그저 연기보다 더 가볍게 떠돌고만 있는 오늘…

서울 광화문 인근 옛 한양 우포도청 앞 혜정교는… 이젠 실체도 없이 그 터만 남아 오늘날의 탐관오리들의 잊어버린 수치심과 시민들의 위로받을 길 없는 자존심을 상징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팩트TV후원 187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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