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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김종인 대표, 총선 참패하면 대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
투표동기 무너지면 대규모 기권사태 불러올 것
등록날짜 [ 2016년03월17일 11시45분 ]
정소앙 시사정치칼럼니스트
 
【팩트TV】수십 년 만에 부활한 국회 필리버스터. 진행되는 내내, 숱한 화제와 어록, 뉴스가 쉴 새 없이 쏟아졌다. SNS와 인터넷에는 야당의원을 격려하는 글들이 봇물처럼 쏟아졌고, 국회 방청석이 모자라는 사태가 벌어졌다. 심지어 국회방송 시청률이 8%까지 치솟는 기현상까지 생겼다. 사람들은 이를 가리켜, ‘민주주의 학교’, ‘마국텔(마이 국회 텔레비전)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야당에 쏟아지던 그 많던 격려는, 어느새 비난과 분노로 바뀌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필리버스터 중단과 공천 컷오프 파동이 원인이다. 불과 보름 만에, 여론의 흐름이 이같이 정반대로 바뀐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유리한 국면을 살리지 못하고, 끝내 선거참패로 이어지곤 하던 야당의 기이한 행태가 이번에도 반복되는 것인가?
 
이제 시간은 채 한 달도 남지 않은 상황, 바둑에서처럼 지나온 과정에 대한 신중한 복기(復碁)가 지금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 ‘출구전략’의 문제점
 
“이러다가 선거 망치면 당신이 책임질 거야?”
 
지난 2월 29일 저녁, 필리버스터 강행 의지를 보인 이종걸 원내대표에게 김종인 대표가 했던 말이다. 그 전후로, 갑자기 더민주 지도부 내에선 ‘출구전략’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필리버스터로 인해 혹시라도 선거구 획정이 지연이 된다면, 여론의 역풍이 불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대목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보자. ‘출구전략’은 말 그대로 위기에 처했을 때 이를 벗어나기 위해 사용하는 단어다. 그런데 과연, 필리버스터가 야당에게 ‘위기’였던가?
 
한 마디로 착각이고 억지다. 오히려 절호의 ‘기회’였다. 냉소와 절망감에 빠져있던 당원과 지지자들이 모처럼 결집하기 시작했다. 오랜만에 보는 ‘야당다운 야당’의 모습에 환호했고 총선에 대한 희망을 키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장면을 뻔히 보면서도 ‘위기’로 판단한다? 도대체 미스터리다. 어떻게 이것이 ‘위기’일까?
 
선거구 획정이 늦어진 것 역시, 새누리당의 막무가내 지연전술 때문이었다. 그저 야당은 이를 널리 알리고 잘 홍보하면 됐을 일.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면서 초조한 쪽은 오히려 정부·여당이었다. 오죽하면 여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날마다 피켓 들고 시위(?)를 했겠는가?
 
4강 신화를 썼던 2002년 월드컵을 떠올려보자. 당시 체력과 신장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태극전사’들은 피를 흘리면서까지 부상투혼을 발휘했다. 그래서 국민들은 진한 감동을 느끼며, 더욱 열렬히 거리 응원을 나섰다.
 
2004년 3월 12일, 헌정사상 최초로 노무현 대통령이 탄핵당했을 때도 마찬가지다. 국민들은 탄핵을 막아내지 못한 열린우리당 의원들을 결코 탓하지 않았다. 오히려 울부짖는 그들을 보며 같이 눈물 흘리고 분노했다. 전국 곳곳에서 촛불을 밝히고 소리 높여 ‘탄핵반대!’를 외쳤다. 그때 여론의 역풍을 맞고 천막당사 신세가 되었던 것은, 막지 못한 열린우리당이 아닌 탄핵을 주도했던 한나라당 아니었던가?
 
아마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을 것이다. 야당이 끝까지 투혼을 발휘해 국민들에게 감동을 줬더라면, 여론의 역풍은 더민주가 아니라 새누리당을 향했을 것이라는 얘기다.
 
당시 중앙일보가 실시했던, “테러방지법안 처리를 막기 위해 야당이 43년 만에 부활시킨 '필리버스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는 온라인투표 결과는 이 같은 판단의 좋은 근거다. 2월 24일부터 27일까지 4일간 약 12만 명에 육박하는 투표가 이뤄졌다. 적절하다는 답변이 10만 1,842명, 부적절하다는 응답이 1만 8,043명, 무려 85% 대 15%였다.
 
그런데 대체 왜 ‘출구전략’이란 말인가? 무엇 때문에 고생고생해서 일궈낸 성과를 한순간 휴지통에 스스로 처박았는가? 김종인 대표가 필리버스터를 갑자기 중단시킨 이유에 대한 매우 색다른 해석이 있다. 컷오프 대상 의원들이 혹시라도 필리버스터로 인해 인기가 올라갈까 봐 일부러 중단시켰다는 것이다. (팟캐스트 ‘정봉주의 전국구’ 45회 참고)
 
필리버스터 중단, 박영선 책임논란
 
필리버스터 중단과정에서 박영선 의원이 했던 역할 또한 아직도 논란거리다. 박 의원은 2월 29일 심야에, 필리버스터 중단 소식을 단독으로 언론에 알렸다. 아마도 중단 결정을 기정사실화 하려했던 조치로 보인다. 그러나 이는 더민주 소속 의원들조차 전혀 알지 못하는 가운데 이뤄졌던 일.
 
이 때문에 당원과 지지자들은 갑자기 뒤통수를 맞은 듯 심한 충격을 받았다. 인터넷과 SNS에서는 “마치 세월호특별법 협상 과정의 데자뷔를 보는듯하다”는 의견들이 마구 쏟아졌다.
 
2014년 8월 첫째 주, 당시 새정치연합 박영선 원내대표가 세월호 특별법 1차 협상안을 전격적으로 발표했던 때의 일이다. 당초 박 원내대표는 세월호 유가족들의 뜻을 반영해 수사권과 기소권이 반영된 특별법을 반드시 관철하겠다는 약속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런데 갑자기 수사권과 기소권이 배제된 엉터리 합의안이 발표됐다. 유가족들에게는 그 과정을 전혀 알리지도 않은 채였다. 그 결과 국민들 사이에 ‘야합’이라는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었다. 그리고 고스란히 새정치연합의 당 지지율 변화에 반영됐다. 26%였던 지지율이 갑자기 21%로 폭락을 했던 것.
 
2014년 8월 첫째 주, 박영선 당시 원내대표의 세월호특별법 1차 합의안 발표시점 당 지지율이 26%에서 21%로 갑자기 폭락했다.(이미지출처-한국갤럽)
 
참사 이후, 벌써 2년의 세월이 지났다. 그러나 진실규명에는 제대로 된 접근이 전혀 이뤄지지 못했다. 그래서 꽃샘추위가 매섭던 지난 3월 초,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월호 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며 또다시 국회 앞에서 삭발·단식투쟁에 나섰다. 자식을 잃은 유가족들이, 대체 무슨 죄가 있다고 아직까지 이런 고통을 겪어야만 한단 말인가? 이 모든 상황의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는가?
  
지난 3월 8일, 세월호 유가족들이 국회 앞에서 세월호특별법 개정을 촉구하며 단식·삭발 투쟁을 하는 모습(사진출처-4.16연대 홈페이지)
 
박영선 의원이 필리버스터 과정에서 했던 ‘눈물의 사과’ 역시 논란거리다.
 
이른바 ‘이상돈 영입파동’이 발생했던 2014년 9월, 당시 비대위원장을 맡고 있던 박 의원은 한바탕 탈당 소동을 연출한 뒤, 기자회견을 통해서 이렇게 말했다.
 
“분노한 분들은 저에게 돌을 던지십시오. 그 돌을 제가 맞겠습니다.”
 
이번 필리버스터 중단과 관련해서는,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저에게 분노의 화살을 쏘십시오. 제가 다 받겠습니다.”
 
결국 ‘돌’이 ‘화살’로 바뀌었을 뿐, 똑같은 형식의 재탕이다. 때문에, 사과의 ‘진정성’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비난은 당연하다. 게다가 발언 이후, 자신의 잘못에 대해 구체적으로 책임지는 모습 또한 없었다. ‘당신들이 돌을 던지건, 화살을 쏘건 나는 내 갈길 가겠다’ 그런 뜻인가?
 
더민주 공천과정에서 나타난 ‘친노 패권주의, 운동권 청산’ 프레임의 문제점
 
‘우리는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항일정신과 헌법적 법통, 4월혁명·부마민주항쟁·광주민주화운동·6월 항쟁을 비롯한 민주화운동을 계승하고, 경제발전을 위한 국민의 헌신과 노력,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향상을 위한 노력을 존중한다.’
 
더불어민주당 강령·정강 정책의 전문 첫째줄 내용이다.
 
한마디로, 더불어민주당은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항일정신과 민주화운동을 계승하는 정당이라는 얘기다. 이는 국가로 치면, 헌법 전문의 ‘법통’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런 당의 지도부가, 지금 ‘운동권 청산’이라는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그리고 당과 민주화를 위해서 평생 헌신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쓰러트리고 있다.
 
심각한 자기모순이다. 자신들의 혼이자 뿌리를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행위다. ‘친노’에 대한 배격 역시 마찬가지다. 이는 김대중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을 탄생시켰던 세력의 연합체에서, 그 절반을 도려내겠다는 시도다. 지지기반의 절반을 날리고도, 과연 선거에서 승리할 수 있을까?
 
찍어야할 투표동기(voting incentive) 제시 못하면, 대거 기권사태 벌어질 수 있다
 
친노와 운동권 출신들이 줄줄이 컷오프의 희생양이 된 반면, 7명의 더민주 비대위원 중 6명은 단수후보 공천을 받았다. 출마의사가 없는 김종인 대표를 제외하면, 사실상 비대위원 전부가 단수공천을 받은 셈이다. 게다가 박영선 의원 지역구 외에 나머지 모든 지역은 경합 중이었다. 그런데도 경쟁자들의 도전을 차단한 채, 더민주 지도부가 자신들에게 일방적인 특혜를 줬다.
 
과거 이종걸 원내대표는 트위터를 통해서 박 대통령에게 ‘그년’이라는 막말을 해서 한바탕 소란이 벌어졌다. 이 의원은 문제가 되자 그녀는’ 의 축약이라고 했다가, 이후 ‘오타’라고 말을 바꿨다. 그리고 44일간이나 당무를 거부하면서 당 지도부를 흔들었다. 세월호 정국에서 당 지지율을 폭락시켰던 박영선 의원이나, 장기간에 걸쳐 당무 거부로 지도부를 흔들었던 이종걸 의원의 행위야말로, ‘해당행위’이자 ‘결격사유’가 아닌가?
 
반면 정청래 의원에 대해서는 미국 대선주자 트럼프의 막말까지 거론하며, 여지없이 찍어냈고 재심마저 거부했다. 그리고 친노의 좌장격인 이해찬 의원 역시 ‘정무적 판단’이라는 이유를 들어 컷오프 시켰다. 경쟁력과 당선가능성을 비롯한 모든 기준에 비춰 아무런 하자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린 결정이다.
 
이 부분에 대해 기자들이 질문을 하자, 김종인 대표는 ‘정무적 판단’이라는 극히 애매한 답변만을 반복했다. 명확한 기준이나 근거는 아예 제시하지도 않았다. 심지어 더민주 전략공천위가 전략공천 권한을 비대위로 넘겼다는 소식까지 알려졌다. 컷오프에 대한 대안을 찾기 힘들다는 이유에서였다. 결국 ‘정무적 판단’이라는 표현은, 말장난에 불과하다. 김종인 대표의 ‘주관적 판단’에 의해 ‘자기 마음대로’ 결정했다는 것과 대체 무엇이 다른가?
 
SNS에서는 벌써 비난여론이 폭발하고 있다(<아시아경제> 3월 11일자 기사. ‘정청래 컷오프, SNS선 70%가 반대하는데..’ 참고). 그리고 리얼미터의 3월 둘째 주 여론조사 역시 정청래 의원 컷오프 이후 당 지지율이 한꺼번에 5.5%나 폭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이 이렇게 악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김종인 대표는 3월 14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를 통해 지극히 안이한 인식을 드러냈다.
 
“최근에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유행이어서 마치 SNS에서 소란스러우면 당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내가 보기엔 당에 질서가 없다.”
 
“유권자들은 결국 1번(새누리당)과 2번(더민주당) 중에서 선택할 것이라 믿는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승리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인터넷이었다. 2012년 미국 오바마 대통령 재선의 일등공신은 SNS였다. 인터넷과 SNS 여론을 우습게 여기는 것 자체가, 시대에 뒤떨어진 구시대적인 사고다. 또한, 지난해 말 김한길·안철수 의원 등 탈당사태 때, 더민주를 지키겠다고 한꺼번에 입당 한 10만 온라인 당원을 무시하는 발언이다. 그 10만 당원들의 반발을, 그냥 방치하고 넘어갈 생각인가?
 
유권자들이 결국 1번과 2번 중에서 선택할 것이라는 생각 역시, 심각한 착각이다. 김종인 대표는 지금, 유권자들에게 또 다른 정치적 선택지가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놓치고 있다. 만약 상황이 이대로 흘러가게 된다면, 자칫 더민주는 궤멸적인 타격을 입고 총선에서 참패할 가능성이 높다. 이에 대한 반면교사는 바로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 결과다 
 
2007년 대선에서 이명박 후보가 위장전입과 BBK 등 수많은 약점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532만 표라는 역대 대선 사상 가장 큰 표차로 참패했다.
 
16·17·18대 대선 결과 (이미지 출처-중앙선관위)
 
그다음 해인 2008년 치러졌던 18대 총선 역시, 통합민주당은 겨우 81석에 그치는 참혹한 성적표를 받았다. 당시 손학규 대표 체제 하에 박재승 공천심사위원장은 대폭의 현역 의원물갈이를 주도해 ‘저승사자’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그러나 선거결과에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2008년 제 18대 국회의원 선거결과 (이미지 출처-중앙선관위)
 
이 두 번의 선거결과에는 뚜렷한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역대 최저투표율’이 바로 그것이다. 2007년에는 역대 대선사상 최저인 63.0%의 투표율이었고, 2008년 총선 역시 역대 최저치인 46.1%였다.
 
그 원인은 당시 정동영 후보와 당의 주류가 탈당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 결과 친노·개혁성향의 젊은 유권자들은 대거 기권을 선택했다. 그들은 정치적 기대를 저버린 당과 후보를 위해서, 굳이 투표장까지 가는 수고의 이유를 찾지 못했던 것이다.
 
지금 김종인 대표가 지닌 권한은, 잠시 동안만 위임받은 ‘관리형 권력’에 불과하다. 결코 ‘선출된 권력’을 넘어설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떤 선출된 권력보다도 더한 칼날을 휘두르고 있다. 이는 어렵게 지켜온 ‘시스템 공천’이라는 대의명분이, 김종인 대표에 의해 무너지고 있음을 뜻한다. 작금의 공천 컷오프 사태를 보면서, 감동 받거나 박수치는 더민주 지지자가 과연 얼마나 될까? 공정성에 의문이 제기되면, 그것은 공천(公薦)이 아니라 사천(私薦)이다. 지금의 후폭풍을 결코 간과하지 말라.
 
지금 무엇보다 경계해야 할 것은 지지자들의 ‘투표동기(voting incentive)’가 붕괴되는 일이다. 적극적인 지지자들은 바로 이 ‘투표동기’에 대한 확신이 있을 때만 움직인다. 그래야 이를 근거로 다른 유권자들의 설득에 나선다. 그러나 그 역할을 할 지지자의 상당수는 지금 마음이 돌아선 상태다.
 
이 때문에 심각한 우려와 함께, 김종인 대표가 이종걸 의원에게 했다는 질문을 똑같이 던지지 않을 수 없다.
 
“김종인 대표님, 총선 참패하면 대체 어떻게 책임질 것인가요?”
 
 
정소앙 시사정치칼럼니스트
 
 
(※본 칼럼의 주장이나 의견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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