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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은수미의 눈물. 희망의 눈물
이제 국민의 마음을 알았는가
등록날짜 [ 2016년02월29일 12시52분 ]
이기명 논설위원장
 
【팩트TV-이기명칼럼】
 
(상략)
“가장 힘들었던 게, 나 자신이 용서가 안 되는 거였어.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을 한 20일 받는데, 원래 우리가 약속한 게 묵비권을 행사하자는 거였어. 근데 일주일쯤 버티다 무너졌어.”
 
-고문이 심했구나.
“사람을 밟는 거지. 굴리면서 밟든가 가랑이 사이를 기게 하든가, 물고문에 손가락 꺾기… 그때 허리를 다쳐서 허리를 내내 못 썼어. 21명이 3교대로 잠을 안 재우면서 취조를 했어. 근데 어느 날 그 21명이 다 철수를 하는 거야. 그리고 세 명의 남자가 들어왔어.”
 
-정규 조에 없던 사람들이?
“모르는 얼굴들. 그때 우리한테 군복 같은 걸 입혀놨었는데 지하 2층으로 끌고 가서는 머리채를 끌고 벽에다 치는데 단추가 뜯기고… 알몸이 드러났어. 세 남자는 술에 취해 있었고. 성폭행을 하겠다는 명백한 암시였지. 너무 무서웠어. 내가 거기서…무너졌어.”
 
-넌 지금껏 그런 얘길 한 적 없어.
“얘기 못했지. 그 일이 있고 타협을 한 게 뭐냐면 내가 스스로 불지는 않지만 다른 동료들이 얘기한 것에 ‘예스’는 한다…였지. 그게 두고두고 스스로 용납이 안 돼서 괴로웠어. ‘너, 민주주의를 위해 죽겠다고 하지 않았냐? 근데 성폭행이 두려워서 입을 여는구나….’나와 친구들을 무너뜨린, 짐승의 시간이었어.”
 
한겨레신문에 실린 은수미의 인터뷰 중 일부다. 긴 인터뷰를 읽으며 나는 몇 번이나 눈을 감았고 입에서는 아 아 하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인간은 이렇게 잔인할 수 있고 이렇게 강할 수도 있구나. 은수미의 필리버스터 생방송을 들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방송을 듣는 동안 은수미의 얼굴에 겹쳐서 수 없는 얼굴들이 지나갔다.
 
김대중·노무현·김근태·장준하·최종길·박종철·전태일·권인숙 그리고 부산 ‘부림’사건 때 행방불명된 자식들을 찾아 부산 해변을 헤매던 어머니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일이 거명할 수 없는 사람들, 독재의 희생자들이다. 그리고 기막히게 이근안의 얼굴도 김형욱의 얼굴, 이후락의 얼굴도 보였다.
 


■국민이 필리버스터로 나섰다
 
민심은 천심이란 말을 나는 믿는다. 자신이 하늘인 듯 착각과 망상 속에서 국민을 억압하던 독재자들은 모두 제 명을 다 살지 못하고 비명에 갔다. 일일이 손으로 꼽을 수도 없다. 독재자들에게 인간의 목숨은 어떤 것인가.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필리버스터’란 의사진행 방해 행위다. 요즘 필리버스터가 국민들의 가슴을 꽉 채우고 있다. 감동으로 꽉 찬 가슴도 있고 분노로 부글거리는 가슴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 필리버스터를 19대 선거공약으로 약속한 것이 새누리당이라고 하면 얼마나 대단한 ‘아이러니’인가. 그땐 오늘을 생각도 못 했을 것이다.
 
야당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들으면서 저토록 할 말 잘하는 의원들이 왜 못된 새누리당 정치버릇을 고쳐놓지 못했는지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아무리 잘못된 테러방지법 비판을 한들 몇 시간씩 필리버스터를 계속하는 야당의원들의 올곧은 소리를 따라갈 수 있겠는가. 특히, 은수미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들으며 내가 살아온 인생이 너무나 부끄럽다. 일제를 거처 한국의 온갖 독재를 다 겪어 온 인생은 바로 시궁창이었기 때문이다.
 
■은수미의 눈물, 또 다른 희망
 
오마이뉴스가 정리한 간첩 조작 사건, 불법 도·감청 및 시국 사건 등은 수도 없이 많다. 여기에는 경찰·보안사·검찰 등이 주도한 것은 제외했다. 5·16 군사반란 이후다.
 
1961년 조용수 민족일보 사건 
1964년 인혁당 사건 
1965년 경향신문 매각 사건(이준구 사장 간첩과 연루 조작) 
1967년 이수근씨 및 처조카 배모씨 간첩 조작 사건 
1969년 동백림 사건 
1970년 유럽 간첩단 조작 사건 
1973년 최종길 서울대 교수 간첩 조작 및 고문치사 사건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76년 제주 어부 간첩 조작 사건 
1977년 재일교포 간첩단 조작 사건 
1980년 김기삼 간첩 조작 사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981년 1, 2차 진도 간첩단 조작 사건 
1982년 오송회 사건 
1983년 최양준씨 간첩 조작 사건 
1984년 이장형 간첩 조작 사건 
1986년 김양기 간첩 조작 사건 
1987년 수지김(김옥분) 사건
 
죄 없는 국민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 간첩을 만들고 고문 치사한 것은 그 자체가 바로 테러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범국민적인 테러방지법 반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마음만 먹으면 백을 흑으로 만들 수 있는 ‘엿장수 테러방지법’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법이 없어서 테러를 못 막는다는 것인가. 웃기는 얘기지만 ‘국가테러대책위원회’라는 것도 있고 의장이 국무총리다. 단지 총리 자신이 의장인지조차 모르는 한심한 위원회다. 이러면서 무슨 테러방지법인가.
 
은수미 의원은 안기부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사람이다. 그가 필리버스터를 하는 동안 듣고 있는 국민들은 많은 눈물을 흘렸다. 공감의 눈물이고 증오의 눈물이다. 또한, 희망의 눈물이기도 하다.

독재정권이 말하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집단이라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이 테러방지법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다급할 상황이었다면 법이 없어서 방지 못 한 테러는 어떤 것이었는지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테러방지법이 필요하다면 테러방지법으로 핵실험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인가.
 
테러방지법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법이 아니다. 국민들은 그 동안 너무나 많은 거짓날조에 속았다. 이제는 더 속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테러위험가능자가 되어 자유가 박탈될 수 있는 악법은 절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밥 이상의 것을 배려하는 것이 사람이고, 그래서 헌법이 있다”
 
“인간은 어떤 사람도 탄압받아서는 안 되는 존재다”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운명을 자기가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며 “그런 것을 못하게 할 수 있는 법이라고, 그런 의혹이 있는 법이라고 그렇게 누차 이야기하고, 끊임없이 주장을 하는데, 제발 다른 목소리를 좀 들어달라”
 
“사람을 위하는 것은, 약자를 위한 정치는 여당도 야당도 없고 보수도 진보도 없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생각하는 국민과 제가 현장에서 직접 뵙는 국민이 다르다, 그러면 이렇게 다른데, 어떻게 하면 같이 살까, 이 생각 좀 하자”
 
■고문에는 장사 없다
 
은수미의 고백에 ‘성폭행 하려는 자들에게 무너졌다’는 기막힌 대목이 나온다. 나도 고백한다. 1956년 5월 5일, 대학 1학년 시절. ‘해공 신익희’선생이 호남선 열차안에서 서거했다. 그 때 분노한 시민들이 경무대(현 청와대)앞에서 시위를 했다. 이를 ‘5·5 경무대 앞 소요사건’이라고 부른다.
 
당시 특무대(현 보안사)로 잡혀갔다. 대학 1년생인 내게 누구로부터 돈을 받고 시위를 했느냐는 것이다. 부인하자 지하로 데리고 갔다. 어느 방문을 열었다. 수염이 더부룩한 사람들이 벌거벗고 있었다. 간첩 용의자들이라는 것이다. 너도 저렇게 되고 싶으냐고 윽박질렀다. 다시 심문이 계속됐다. 다시 부인했다. 몽둥이가 떨어졌다. 한 대 두 대, 몇 대인지 셀 수 없는 순간 나는 무너졌다. ‘네! 돈 받았습니다.’ 지금도 죄송스러운 건 당시 민주당 고위 간부인 두 명의 의원들을 불러 주는대로 찍었다. 그들 의원에게서 돈을 받았다고 자백한 것이다. 죽을 날이 머지않은 지금 이 나이에도 그때를 생각하면 얼굴을 못 든다. 몽둥이 몇 대에 무너져 버린 나였다.
 
석방되어 학교에 갔을 때 유일하게 구속되었던 나는 영웅이었지만 영웅은 부끄러움에 쥐구멍을 찾고 싶었다. 허위자백에 남을 끌고 들어간 비겁자였다.
 
“가장 힘들었던 게, 나 자신이 용서가 안 되는 거였어.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을 한 20일 받는데, 원래 우리가 약속한 게 묵비권을 행사하자는 거였어. 근데 일주일쯤 버티다 무너졌어.” 은수미의 고백이다.
 
세월호 시위 때 잠시 보았던 은수미 의원은 내게 그냥 야당의 비례대표 의원일 뿐이었다. 이제 새롭게 그를 보면서 부끄러운 61년 전 내 과거가 살아났다.
 
■집권을 포기해라
 
‘탁 하고 치니 억 하고 쓰러졌다’는 박종철 열사가 눈에 선하다. 술 취한 군복들이 가슴을 더듬는 짐승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 순간 무너져 버린 은수미의 모습이 애처롭다. 이것이 테러다. 테러방지법은 이런 자들을 처단하기 위해 만들어져야 한다. 짐승만도 못한 테러행위로 해서 몸이 망가지고 죽고 지금도 행방불명이 된 사람은 부지기수다.
 
역설적이게도 지금 전국을 뜨겁게 달구고 전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필리버스터는 국민에게는 또 다른 희망이며 한국이 진정으로 정신적 선진국으로 가는 계기가 될 것이다.
 
필리버스터에 참가해 온몸으로 절규한 야당의원들의 노력은 여야를 막론하고 아마 처음으로 국회의원이 된 뿌듯한 감격을 맛보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의원들의 말을 진심으로 들어주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인가. 국회의원들의 말이 국민 가슴에 아무런 감동도 주지 못했기 때문이다. 진실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이제 국회의원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깨달았을 것 같다. 아니 모든 국회의원이 알았을 것이다. 여야를 가릴 것 없이 모두 알았을 것이다.
 
무엇이 국민을 위하는 것이며 무엇이 국민으로부터 제대로 대접을 받는 것이며 그것이 바로 국민으로 하여금 조국을 더욱 사랑하게 만드는 방법임을 알았을 것이다. 이제 정부여당이 만들려는 ‘테러방지법’을 왜 국민이 반대하는지 왜 악법인지 알았을 것이다. 알았으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자연스럽게 알게 돼었을 것이다. 더 설명이 필요한가.
 
글이 너무 길었다. 은수미 의원의 말로 글을 맺는다.
 
“나는 계속 같은 얘기를 해왔지만 세상은 더 나빠지고, 사람들은 더 고통스러워한다. 쌍용차 노동자들을 구하지 못했는데, 내 앞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을 구하지 못했는데, 그런데 또 같은 얘기를 하는구나, 그래도 해야지, 앞으로도 계속할 거야, 그러면서 운다. 그때가 그런 순간이었다. 힘은 빠져 있지, 거리두기는 안되지, 갑자기 사람들이 내 안으로 확 들어와 버린 거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팩트TV후원 1877-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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