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술인터뷰]문성근편 - 3화. "나는 흔적 남기지 않을 운명, 묘비나 하나 세워달라"
팩트TV가 야심차게 준비한 술술인터뷰 1탄의 주인공은 문성근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다. 성신여대 인근 김카페에서 열린 이날 인터뷰에는 20여명의 팩트TV 애청자와 문 상임고문의 팬카페 ‘문더사세’ 회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진행 됐다. 술술인터뷰라는 이름에 걸맞게 봉하막걸리와 파전, 김카페의 주력메뉴(?)인 커피맥주가 등장했고, ‘담배는 생각을 열고, 커피는 대화를 열고, 술은 마음을 연다’는 말 답게 모두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됐다.
조금 있으면 생일이신데 누구와 보내실 것인지 궁금합니다
제 생일에는 서울에 없을 것 같습니다. 작년에 명계남 씨가 환갑이었거든요. 그 양반이 조용히 지내려는 것을 제가 트윗에 올려버렸어요. 봉하에서 한 200~300명이 참여한 거대한 환갑잔치가 됐죠. 그 때 명계남 씨가 내년에 원수 갚는다 그랬는데 그 때 확실하게 이야기 했죠. 서울에 없을 거다. 미주 쪽에 사람 사는 세상 모임이 있는데요. 미주 전체 전국모임을 발족하면서 5월 23일 이후에 모임을 가진다고 오라고 해서 거기 모임을 갔다가 딸아이가 있는 토론토에 가서 졸업식에 참여하고 올 거 에요.
영화는 자주 보는 편인지? 그리고 자신이 출연한 영화도 다시 보는지?
그 동안 못 본 영화가 많아요. 한국영화를 너무 못 봤어요. 한국영화 VOD에서 돈을 내면서 보는데, 그거 보면서 “아 진짜 연기자들 기가막히군” 이렇게 느끼면서 보면 그럴땐 굉장히 행복해지거든요. 좋은 연기 볼 때. 그런걸 보면서 위로하고 그러죠.
제가 나온 영화는 시사회 때 딱 한 번 봐요. 창피해서. 실종 같은 영화를 케이블에서 그렇게 많이 튼 것은 진짜 나쁜 사람들이에요. 의도가 있었다라고 짐작해요. 한국영화사상 케이블에 그렇게 많이 튼 것은 처음인데, 그 영화가 많이 틀 만큼 명작도 아니고, 그 영화가 그렇게 노출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런데 저를 갈구려고 튼 거죠.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정치인이지만 문화예술인으로서의 위상도 가지고 있는데, 초창기의 초심으로 돌아가서 연극이나 이런 것을 하고 싶은 마음도 있는지?
아예 빠져들어서 연기를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는 제안은 있는데 체력적으로나 자신이 없어요. 방송이나 영화는 쉬었다가 아주 짧게 긴장을 하면 되서 에너지가 덜 소비 되요. 연극은 한 시간 반을 긴장을 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버거운 일입니다. 지금 하는 게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들이 있어서 고민을 하고 있죠. 하긴 한번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까지 같이 찍으셨던 파트너 중에 다시 연기를 해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요즘 배우들이 정말 잘해요, 연기를. 잘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많이 늘어났어요. 한국 연기패턴이 그동안 많이 바뀌었거든요. 송강호, 설경구 나오면서부터 많이 달라졌고, 그 친구들부터 시작해서 황정민, 김윤석...해보고 싶은 사람들이야 많죠.
그런데 이상한 게 왜 여배우는 활동적인 사람이 없는지 아쉽기는 해요. 여성들은 결혼해서 그런지 거친 역을 안 하고 그래서 여배우는 별로 생각이 안 나고, 남자는 많죠. 요새 보면서 연기를 시작하는 대학생들이 굉장히 부러워요. 제가 한창 활동 할 때는 어떤 역을 맡았을 때 선배 것을 보고 배울 게 없었어요. 그런데 요새 아이들은 볼 볼 영화들이 너무 많은 거죠. 그래서 부럽습니다.
그 동안 문화예술인으로 여러 작품을 하셨는데 제일 기억에 남는 작품과 베드신이 있다면?
연극에서는 ‘칠수와 만수’가, 영화에서는 ‘경마장 가는 길’이 제일 기억에 남습니다. ‘경마장 가는 길’이 기억에 나는 것은 그게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식의 문학작품에서 처음 나왔어요. ‘자유종’과 ‘경마장 가는 길’이 거의 동시대 나온 소설인데 그걸 영화로 만든 거고, 한국 문화사에 줄거리도 그렇고 인물도 그렇고 그런 스타일의 이야기는 처음이었습니다.
그때는 열심히 하느라고 했는데 제가 힘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것이 알고 싶다 하고나서 방송프로그램이 워낙에 그런 거라 호흡이 길어졌어요. 아! 지금하면 훨씬 더 잘 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베드신은 정말 괴롭습니다. 옛날에는 비디오라 잘 안보였는데, 지금은 TV가 커졌잖아요. 만약에 DVD로 보면 섹스 장면에 안고 있다가 지치거나 잘 안 되서 돌아눕는 장면이 있는데, 보면 무릎에 일일밴드가 붙어있는 장면이 있는데 이게 떨어졌어요. 연출부가 요를 촬영하니까 깨끗한 거를 가져다 놓는단 말이에요. 요에 풀을 먹이면 얼마나 딱딱하겠어요. 일주일을 넘게 찍었는데, 제가 엎드려 있잖아요. 정말 괴로운 일이고. 그게 지금도 증거로 남아있죠. 화면속에서는...
다음 영화에 하고 싶은 배역이 있다면?
멋진 사랑을 하는 영화. ‘메디슨 카운트의 다리’ 같은 영화가 미국에서는 됐어요. 그런데 우리는 안됐거든요. 80년대 까지만 해도 우리 관객을 조사하면 23살 여자가 중심이에요. 그분들의 취향하고 아래위로 퍼지는 거거든요. 그런데 요즘 와서 50대 관객들이 굉장히 늘어났어요. 사회적인 변화죠. 경제적인 여력이 있는 분들도 계실 것이고 아니면, 다 잘렸으니까. 정규직 비정규직화에 대한 부분, 정년퇴직 빨라진 부분, 자영업자가 늘어난 부분, 이런 경제적 고통 속에서 시간이 늘어난 부분도 있어요. 불행이죠. 그래서 나이든 분들이 생을 뒤돌아보는 영화도 이제는 가능해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사실 50~60대 남자들이 살아온 과정이 쉽지안죠. 그런 절절한 이야기들 좀 꼭 찍어보고 싶은데, 감독들이 20대 초반 여성중심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는 사람들 빼고는 자꾸 없어지잖아요. 그러다보니 나이든 감독들이 활동하는 분들이 별로 없어요. 그래도 중년의 어려움 같은 것을 다룬 영화를 해보고 싶죠.
한 때 감독을 해보겠다는 생각도 하셨다는 이야기가 있던데요?
그랬어요. 우리 사회에 모순구조라든가 , 하고 싶은 말도 있고 그래서 한동안 하고 싶다고 했었는데, 계속 다른 일이 생기면서 못했죠. 노사모 활동을 하면서 한동안 시간이 갔고, 참여정부 때는 제가 언론에 나오면 조선일보가 뭘 해도 씹으니까 아예 난 없어지는 게 좋겠다 해서 아예 아무것도 안하고 지냈어요. 그리고 참여정부가 끝나고 나서 해방감이 왔거든요. 이제 마음대로 해도 된다. 그런데 갑자기 세상을 떠나시니까 이제 난 어떻게 하지? 뭔가 해야 될 것 같아서 고민하다가 국민의 명령을 시작한거라 못했죠. 그 다음에 포기했습니다.
요즘 노래방에 가면 부르는 애창곡은?
(어릴 적)집에서 가족예배 볼 때 찬송가 외에는 노래를 들어본 적이 없어요. 영화하는 사람들끼리 술 먹고 2차가서 부르는 노래는 ‘못다핀 꽃 한 송이’에요. 김종서의 창백한 손 그런거...그거는 한 번 부르면 목이 갑니다. 너무 고음이다 보니...운동 노래는 거의 한 적이 없어요.
프로야구는 좋아하시는지? 지역구가 부산이신데 그럼 롯데팬이신지?
지금은 부산롯데가 제 지역구거든요. 부산 롯데 팬은 정말 기가막힌 게 쓰레기봉지를 머리에 쓰고, 신문지 찢어서 하잖아요. 그런데 그것보다 더 놀라운 게 파도타기를 쫙고, 그 다음에는 슬로우비디오로 해요. 천천히 일어나는데 그걸 전 관중이 다 해요. 그러더니 그게 끝나고 나니까 그 다음에 패스트 포워드로 해요. 그거를 전 관중이 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어요. 일반적인 파도타기는 다 하잖아요. 부산의 야구 열기는 놀라울 정도에요. 재미있었어요. 특히 슬로우비디오로 하는걸 보면서 그건 정말 다 미치는 거예요.
워낙에 초등학교 때부터 좋아했었어요. 사실 5공이 만든 스포츠인데, 당시가 광주 직후라서 늘 안쓰러웠고 해서 한동안 해태를 응원했었죠. 김응룡 선수가 퍼스트 볼 대 그때 세컨은 하일 이었고 써드는 김충 이었고, 센터필드는 박현식 선수였고....
인간 문성근은 나쁜 남자인가? 아니면 따뜻한 자상한 남자인가?
제가 따뜻하다거나 그렇지는 못한 것 같아요. 뭔가 몰두하고 그러면 주변이 안 보이는 거죠. 운동가로서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하는데요, 대의가 분명하고 가야될 길이라고 생각할 때 옆에 활동가에게 같이 가자는 그런 권유를 안 합니다. 이 길 맞는데 이 길 말고 어디 다른 데 갈 길이 있어, 어차피 대의에 동의하면 그냥 갈 거라는 예상을 하는 측면이 있어요. 그래서 왕자병이라고 굉장히 지적을 많이 받았죠.
배우로서 일종의 정상급에 가봤기 때문에 오는 현상이 아니냐는 생각을 하시는 분들이 계신데 그런 것은 아니고, 어차피 갈 길인데, 이 건 어차피 희생이니까 권유하고 그러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따뜻하지는 못합니다.
따뜻하지는 못하고 뜨겁다는 표현을 하는 표현이 맞을 것 같은데요, 혹시 나중에 자신의 묘비명에 뭐라고 적혀있으면 좋을지 생각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대신 화장하고 묘소를 만들지 말고 이왕에 만들어진 제 형 묘가 있으니까, 거기에 뼈는 뿌리고 비석을 하나 세워달라고 이야기 했어요. 그런데 비석을 세웠을 때, 그 내용에 대해서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어요.
지금 제가 별로 흔적이 남을 것 같지는 않아요. 역사가 승자의 기록이거나 아니면 기록한 자 것만 남는 거잖아요. 그런데 저는 일기도 써본 적이 없고 제 기록을 해본 적이 없어요. 국민의 명령 하면서 요번에는 기록을 하리라 생각을 했어요. 초반에 그걸 트위터에 올렸더니 강풀이 메모노트에 연필을 붙여가지고 종로에 찾아왔어요. 형 기록해 그런 뜻으로 가져다줬는데 그 수첩을 잃어버렸어요.
국민의 명령 초반에 왜 그런 생각을 했으면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는지 그런 생각을 못해요. 그래서 저는 이 사회 안에 흔적이 많이 남을 것 같지 않아요. 제가 기록을 안 하면 흔적이 남지 않는 사람이 될 운명인 것 같고, 열심히 살다 갔다든지 또는 지 맘껏 살다간 사람이다. 사실 전 그런 면에 있어서는 정말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