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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인터뷰]문성근편 - 2화. 먹물 뺀 '그것이 알고싶다'는 문익환목사 작품
등록날짜 [ 2013년03월21일 17시50분 ]
신혁
[술술인터뷰]문성근편 - 2화. 먹물 뺀 '그것이 알고싶다'는 문익환목사 작품

팩트TV가 야심차게 준비한 술술인터뷰 1탄의 주인공은 문성근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다성신여대 인근 김카페에서 열린 이날 인터뷰에는 20여명의 팩트TV 애청자와 문 상임고문의 팬카페 문더사세’ 회원이 참석한 자리에서 진행 됐다술술인터뷰라는 이름에 걸맞게 봉하막걸리와 파전김카페의 주력메뉴(?)인 커피맥주가 등장했고, ‘담배는 생각을 열고커피는 대화를 열고술은 마음을 연다는 말 답게 모두 마음을 열고 대화를 나누는 자리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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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필을 보니 일본에서 태어나셨어요?
그래서 저보고 친일분자라고 트위터에서 욕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MB도 일본인데 똑같다고...
 
몇 살까지 일본에 살았는지, 그리고 남은 기억이 있다면 어떤 건지?
두 살 때인가 들어왔어요. 문 목사가 49년도에 미국에 유학을 가셨는데 한국전쟁이 나서 귀국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어떻게 할까 하다가 유엔군에 문관으로 자원입대서 동경으로 오셔서 한 반도에 오는 미군들한테 간단하게 한글을 가르치는 학교를 했어요. 그때 같이 한 사람들이 박형규 목사하고 정경모 선생이에요. 나중에 정경모 선생이 자료를 조사해보니 당시 미군은 국군이 다 밀려나면 일본에 망명정부를 세워, 그 망명정부 명의로 다시 한 번 진입을 해야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하고 유학하고 있던 한국인 청년들을 집합을 시켰다고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그 때 일본에서 태어 난거죠. (일본 생활은)아무것도 기억 못하고 사진만 남아있어요.
문 목사는 헬기타고 판문점 가서 휴전협정 통역을 했었어요. 그런데 재미있는 이야기가 휴전협정 하는데 이승만 대통령이 안한다고 해서 우리 국군이 빠졌지 않습니까. 미국이 대표하는 유엔군, 그 당시 중공군, 북한군 이렇게 삼자협정을 하는데, 국군 대표가 들어가 있긴 했어요. 그런데 우리말을 못하는 겁니다. 우리 장성이 일본말만 하는 거예요. 그래서 통역이 영어에서 한국말로, 한국말로 해서 일본말로 했잖아요. 그래서 굉장히 많은 야유를 많이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어릴 적 아버지에 대한 추억이나 기억이 있다면?
아주 어렸을 때는 네가 너의 주체를 만들어가라 그러면서 무엇도 강요한 적이 없었어요. 할아버지부터 목사신데 대게 그런 과정을 보면 3, 4대 성직자로 연결됩니다. 그런데 우리 대에서 끝났어요. 자녀들한테도 교회가라는 이야기를 하신 적이 없습니다.
 
아버님께, 어머님께 언제 배우의 길을 가겠다고 말씀드렸나?
한 번도 의논한 적은 없습니다. 대학 졸업하고 연극으로 먹고 살수는 방법이 없으니 자신이 없었어요. 그 당시는 유신 때니까 방송국 탤런트를 한다는 것은 투항 같은 생각이 들어서 못하겠더라고요. 그래서 남는 방법은 연극인데, 연극으로는 먹고살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까 취직을 했던 거고요. 취직해서 시간이 지나다보니 도저히 이렇게 생활을 끝 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정리를 했는데, 한 번도 의논한 적은 없고, 회사 그만두고 연극 할 랍니다 했더니 잘했어 그렇게 이야기를 하셨어요.
 
문 목사님 위에 선조들을 보면 문화예술적인 기질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 아닌가요?
그거는 문 목사하고 문 목사 동생 분을 보면 그런 기질이 있죠. 그 윗세대는 그걸 표현할 기회가 없는 것이었으니까요. 문 목사나 문동환 목사는 음악이나 글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실제로 지금 세대에 태어나서, 20세라면 예술 쪽으로 갔을 수도 있죠.
그러나 나라가 없는 상태였기 때문에 집안에서 계속 자녀들에게 나라를 찾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었고, 독립운동을 하면서 제일 좋은 방법이 목사가 되는 것이었어요. 이동휘 선생이 그렇게 이야기를 하셨다는 것인데, 일제시대 때 백성을 만날 수가 없잖아요. 백성에게 무슨 이야기를 하면 국가보안법 위반을 하는 것인데, 목사는 합법적으로 한 30분 동안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거니까요. 시대가 그랬죠.
 
문익환 목사님의 아들로 태어나지 않으셨다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아마 상업배우로 돈 많이 벌고 편안하게 잘 살고 있었겠죠. 연기자로서는 누구의 아들이냐가 중요한 게 아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알고싶다는 결정적으로 도움을 받았어요. 저는 어려서부터 문 목사가 성경번역을 하셨기 때문에 밥상에서 매일 번역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거든요. 아름다운 우리말. 어떻게 하면 우리말이고, 어떤 건 영어의 번역이고, 어떤 건 일어의 번역이고, 이론적으로 아무것도 모르지만 이런 말을 너무 많이 들었어요
이오덕 선생께서 우리글 쓰기 이런 걸 하시잖아요. 그것은 국어학자로 이야기 하시는 거잖아요. 저는 국어학적 소양은 전혀 없는데 하도 귀에 들어가지고 그것이 알고싶다는 시사프로그램 중에서 유일하게 초등학생이 보는 프로그램이었어요. 이해를 하는 거죠. TV수첩이나 2580의 문제는 먹물들이 지식인의 입장에서 글을 써요. 그래서 중학생들이 못 알아들어요. 그런데 나는 중학교, 초등학교 아이들로 알아듣는 우리말로 했었다는 거. 사실 먹고사는 면에서는 문 목사의 영향이 굉장히 컷죠. 제가 문 목사 아들이 아니었다면 아마 2002(노사모와 대선)에 참여하지 않았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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