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이기명칼럼】 식탁 위 접시에서 멸치 한 마리를 집어 입에 넣으려다 문득 넓고 푸른 바다가 떠올랐다. 요 멸치도 망망대해를 헤엄치며 살다가 그물에 걸려 결국 내 입에까지 들어오게 됐다. 이 무슨 인연인가.
인연을 새삼 들먹일 필요도 없이 세상사 모든 관계는 인연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전철에서 마주 앉은 저 여인은 몇 천 년을 이어 온 인연으로 지금 이 순간 서로 눈길을 마주하게 된 것일까.
문득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연을 생각한다. 세속적인 의미에 인연은 전혀 없는 노무현은 내가 KBS 작가실장 시절, 노조에 있는 후배가 노무현 의원이 공개홀에서 강연하니 들어 보지 않겠느냐는 한 마디로 시작됐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후원회장을 하고 서거 후에도 난 후원회장이다. 족보에 올릴 후원회장이다.
또한, 그 인연으로 문재인을 만나고 함께 일하던 두 사람을 보고 참 잘도 만난 인연이라고 늘 생각했다. 조선일보 우종창 기자가 ‘노무현은 과연 재산가인가’라는 맹랑한 기사로 고소를 당했을 때 증인으로 재판에 나온 문재인의 증언을 새삼 소개할 필요가 없다. 우종창은 패소했고 조선일보는 사과했다. ‘노무현의 친구 문재인이 아니라 문재인의 친구 노무현’이란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하늘에서 본 땅
조카 녀석이 공수부대 출신이다. “하늘에서 떨어질 때 기분이 어떠냐” 무식한 질문이다. “처음에는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는 편안해요” 진짜인지 몰라도 대단한 생각이다.
한강대교 노들섬에는 1966년 2월 4일 공수특전단 고공침투 훈련 중 기능 고장을 일으킨 전우의 낙하산을 펴 주고 자신은 한강에 추락, 순직한 이원등 상사의 동상이 서 있다. 동상을 볼 때마다 많은 생각을 한다. 그중에서 가장 가슴을 울리는 것은 전우애다. 아니 인간에 대한 사랑이다. 요즘처럼 이기주의가 존경받는(?) 세상이라 그런지 더욱 그렇다.
군대생활을 영등포 양평동에서 했다. 50년대 말. 그곳은 군복 천지였다. 조금 떨어진 김포·강화에도 해병대와 공수부대가 있다. 토요일 외출 때는 군복이 널렸다. 우리 육군은 늘 쬔 병아리였다. 해병대가 폼 잡고 어깨 펴고 다녔다. 그런데 얼마 후 공수부대(특전사)가 완전히 휘어잡았다. 설명은 그만두자.
난 아직 한 번도 문재인에게 공중에서 낙하하는 순간의 마음을 물어보지 않았다. 어리석은 질문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래도 언젠가는 물어볼 생각이다.
■우정
<전략>
고등학교 1학년 때. 소풍을 가잖아요? 소풍을 가면 일단 버스를 타고 갑니다. 버스를 타고 가서 내려서는 산길로 올라가게 되어있죠. 뭐 저수지를 간다든지, 절에 간다든지...걸어갈 때 다리 불편한 친구가 뒤처진 거예요.
근데 많은 학생들은 다리 불편한 친구가 뒤처지는 걸 보면서도 그냥 지나갑니다, 자기 앞길만. 그때 ‘한 친구’가 그 다리 불편한 친구하고 같이 보조를 맞추면서 걸어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독일의 유명한 극작가 브레이트의 <예스맨, 노맨>의 선택의 기로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브레이트의 교육극이죠. 다리가 불편한 친구가 이야기 합니다. "나는 더 가기 힘드니 너라도 먼저 가라, 너라도 먼저 가서 소풍을 즐겨라. 나는 여기서 기다리겠다." 그때, 브레이트적인 교육극의 선택은 두 가지입니다.
한 친구가 친구를 위해서 같이 소풍을 포기하던지 아니면 ‘나라도 먼저 소풍을 가서 소풍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해줄게.’ 이게 <예스맨, 노맨>인데요.
이때 <한 친구>는 독일 브레이트식 선택을 하지 않았습니다. 완전히 한국적인 선택을 합니다. 한국적인 선택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같이 가~자!"라고 하면서 업어 버린 거예요
업고 가다가 주저앉고, 도시락 같이 까먹고, 하염없이 털래 털래 걸어서 도착 했는데....도착하자 30분 안에 또 돌아오게 됐어요. 그때서야 비로소 같은 반 친구들은 확인하게 됩니다.
우리가 소풍을 즐기고 있는 동안에 저 친구는 아픈 친구를 업고 여기까지 왔다는 거죠. 여기서 1학년 같은 반 학생들은 굉장한 반성과 감동을 받게 됩니다. 돌아올 때는 어떻게 돌아왔겠습니까?
50명이나 되는 같은 반 친구들이 50분의 1씩 자신의 등을 대어줍니다. 아픈 친구를 위해서 업고, 또 다른 친구가 업고, 또 다른 친구가 업고. 그렇게 해서 50명의 같은 학생들을 완전히 하나 된 공동체로 만든 것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는지 모른다. 친구끼리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흐르는 눈물은 주체할 수가 없었고 그냥 울었다.
방송관계로 노무현의원이 KBS를 찾았다. 엘리베이터 앞이었다.
아니 황 병장님
어 노 상병. 아니 노 의원님
노 의원이 황 아나운서의 손을 잡았다. 두 사람은 1군사령부에서 잠시 함께 근무했다. 황 아나가 선배다. 후에 황 아나운서가 들려준 얘기다.
1군사 부관참모부(인사관련부처)에 근무할 때다. 전후방 교대 차출이 있었다. 어느 누구도 가려고 하지 않았다. 노무현 상병이 자원했다. 상관들이 말렸다. 일 잘하는 노무현이 빠지면 지장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도 지원자는 없었다.
제가 갑니다. 후방에서 편하게 군대생활 하는 거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고집을 접지 않고 노무현은 일선으로 떠나 박박 기다가 제대했다.
얼마든지 빠질 수 있었는데 영 고집을 부리는 겁니다. 전부들 그랬죠. 요즘 말로 ‘꼴통’이라구요
첫 번째 얘기는 경남고등학교 출신의 극작가이자 연출가인 이윤택 씨가 쓴 글인데 양해도 없이 옮겼다. 이해를 부탁드린다. 주인공 이름은 <그 친구>로 바꿨다. 노무현 관련 얘기는 내가 직접 경험한 것이다.
노무현·문재인 칭찬하자는 글 아니냐고 할 것이다. 당연하다. 오래전에 쓴 글인데 요즘 하도 사건이 많아 싣는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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