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이기명칼럼】국정 역사교과서 반대가 전국적으로 퍼져가는 가운데 광화문 광장에는 각가지 반대구호가 넘쳐난다.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중학교 여학생이 반대피켓을 들고 추위에 떨고 있다. 피켓에는 뭐라고 쓰여 있는가.
“대통령님 귀 좀 여세요.” “거짓 역사는 배우기 싫어요.”
비 맞는 어린 여학생이 가엾어 우비를 사다가 입혀주는 어른들의 가슴에는 자신들의 못남을 돌아보는 참회가 있다. 우산을 사다가 함께 받치고 서 있는 어른의 가슴속엔 무슨 말이 들어 있을까.
“대통령은 귀를 활짝 여시라” 닫는 귀에는 아무 소리도 안 들린다. 감은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지금 국민들은 그 말을 하는 것이다. 국민의 귀에는 다 들리고 국민의 눈에는 모두 보이는 현실이 왜 보이지 않는가. 보기도 싫고 듣기도 싫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자리가 아니고 듣기 좋은 소리만 듣는 자리가 아니다.
눈을 떴어도 보이지 않고 귀는 열려 있어도 들리지 않는 이유는 마음의 눈과 귀를 닫았기 때문이다. 대통령도 국민도 함께 불행해진다.
눈에서 뿜어져 나오는 ‘레이저’ 광선을 느끼는 순간 몸은 오그라든다. 레이저와 함께 부르르 떨리는 입술에서 나오는 싸늘한 말을 듣는 순간 몸은 차갑게 식는다. TV를 보면서도 느끼는 오한인데 하물며 눈앞에서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이것은 경험한 사람들의 고백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이상하다. 평소에 그토록 상냥한 모습에서 어떻게 저런 레이져 광선과 부르르 발언이 나온단 말인가. 그만큼 분노가 치솟았기 때문일까. 누가 무엇을 얼마나 잘못했기에 대통령이 저토록 노하셨을까. 유감스럽게도 분노한 대상은 국민이며 정치다.
“이제 국민 여러분께서도 국회가 진정 민생을 위하고 국민과 직결된 문제에는 무슨 일이 있어도 소신 있게 일할 수 있도록 나서달라”
“앞으로 그렇게 국민을 위해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 부탁한다”
대통령이 한 말이다. 바로 선거운동이다. 낙선운동이다.
대통령과 국민은 어떤 관계인가. 상하관계인가. 주종 관계인가. 대통령은 국민이 5년 동안 위임한 자리에서 국민을 위해서 봉사한다. 5년 후에는 더 있고 싶어도 못 잊는다. 아니 재임 기간에도 주인인 국민의 뜻을 어긴다면 탄핵이라는 이름으로 자리에서 쫓겨난다. 국회의원은 대통령의 지시로 고르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판단으로 선출한다.
“자기 나라 역사를 모르면 혼이 없는 인간이 되고, 바르게 역사를 배우지 못하면 혼이 비정상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참으로 생각하면 무서운 일이다”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면서 한 말이다. 자기 역사를 제대로 모르는 국민은 혼이 없는 인간이라는 말이야 얼마나 옳은가. 그 때문에 지금 국민들은 자기 나라의 역사를 바로 알고 혼이 있는 인간이 되기 위해 ‘역사 국정교과서’를 온몸으로 반대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한 말이면 백번 옳다.
친일을 항일이라 하고 매국을 애국이라고 가르치는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으려는 국민의 정당한 요구를 억누르는 작태는 ‘진정 혼이 있는 국민’이길 요구하는 것인가. 국민을 바보 천치를 요구하는 것인가. 역사교과서 집필진 모집에 몇명이 응모했는지 누가 집필을 하는지도 숨기면서 어디다 대고 바른 역사교과서를 만들겠다고 거짓말을 하는가. 이건 대국민 사기가 아닐 수 없다. 왜곡된 역사를 가르치는 것은 그야말로 국민에게 혼을 버리라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
시선을 한 곳에 고정시키면 눈길이 닿는 곳이 세상에 전부다. 알아야 면장을 한다. 모르면 아무것도 못 하는 것이다.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진 프랑스의 ‘마리 앙뜨와네트’의 유명한 말이 있다.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지 왜 꼭 빵을 먹으려고 하느냐.’ 이승만 대통령의 부인인 ‘프란체스카’의 말도 회자됐다. ‘참 한국 사람들 이상해요. 쌀이 없으면 사과와 고기를 먹으면 되찮아요. 꼭 밥을 먹어야 해요?’ 마리앙트와네트의 또 다른 이름은 ‘말이.안통하네.트’다.
■대통령의 눈, 귀, 입
구중궁궐 속에 왕은 민생을 모른다. 밥이 끓는지 죽이 끓는지 알 도리가 없다. 현군은 미복 차림으로 암행을 했다. 국민의 소리를 직접 듣고 백성의 살림을 직접 살폈다. 지금 세상은 암행을 할 필요도 없는 시대다. 인터넷에는 세상 돌아가는 모습이 한 눈에 보인다. 일부러 외면하기 전에는 모를 수가 없다. 보기 싫은 것을 안 볼 자유는 있지만, 대통령은 봐야만 된다. 국민의 삶과 생각을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게 싫으면 대통령 그만 둬야 한다.
박근혜 “앞으로 그렇게 국민을 위해 진실한 사람들만이 선택받을 수 있도록 해주시길 부탁한다”
김무성 “강남 수준이 높다. 전국이 강남만큼 수준이 높으면 선거도 필요 없다"
이 같은 두 사람의 말이야말로 ‘혼’이 없는 혼성 <듀엣>이 아닐 수 없다.
방송 신문에 보도되는 국민의 반대시위를 왜 못 보는가. 왜 안 듣는가. 정말 안 보이는가. 안 들리는가. 그렇다면 도저히 넘겨버릴 수 없는 심각한 사태다. 내년이 총선이다. 민심의 이탈을 두려워하는 집권세력들의 공포를 안다. 그러나 아무렇게나 지껄인다고 공포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좋은 정치를 하면 공포도 사라진다. 나라의 역사를 바로 알아야 민족혼이 정립된다. 가짜 역사로 무슨 혼이 생기겠는가. 대통령은 진짜 역사책을 보아야 할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당하게 선거에 관여하고 있다. 무슨 배짱으로 저런 엄청난 소리를 거침없이 하는가. 마치 ‘짐이 국가’라고 큰소리친 ‘루이14세’로 착각을 한 것은 아닌지 모를 지경이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국민들이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을 지지해줄 것으로 기대한다”는 정도의 발언을 했다가 현 새누리당 등에 의해 탄핵 소추됐다. 박 대통령 발언이 지닌 ‘죄질’의 심각성은 노 전 대통령에 비할 바가 아니다. 브레이크 없는 기차와 같이 폭주하는 박 대통령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귀를 막고 눈을 감고 제대로 말을 해야 할 입에서는 ‘공포’가 쏟아진다.
국민들은 유신독재가 그리운가. 그렇다면 엎드려서 침묵해라. 노예도 자신이 선택한다면 도리가 없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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