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 - 이기명칼럼】 집에 도둑이 들었다. 친구는 몹시 화가 났다.
“죽어야지. 두 눈 멀거니 뜨고…”
도둑을 맞은 경위는 모르겠으나 친구는 낙심천만이다. 인간은 자신에게 화가 날 정도로 황당한 경우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특히 소매치기를 당했을 때가 그렇다. 도대체 날 어떻게 보고 주머니에 손을 넣다니. 자신이 싫어진다. 박상옥이 대법관 됐다. 국민이라는 것이 싫어진다. 이종걸 의원이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에 당선됐다. 당당한 항일독립운동 가문의 당 대표. 기대가 크다.
정치 돌아가는 꼴이 기막히다고 한탄한다. 3천만 원 이 든 비타500 상자를 받았다는 혐의로 곤욕을 치르는 국무총리가 ‘목숨을 내 놓겠다’는 비장한 결의를 밝혔음에도 쫓겨났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패(팻)감’ 운운하지만 역시 1억을 받았다는 혐의로 피의자 신분이 되어 검찰조사를 받는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허태열과 김기춘은 7억과 10만 달러를 받았다고 자살한 성완종의 메모에 이름이 올랐다. 대선에서 요직을 맡았던 홍문종도 2억, 유종복 인천시장은 3억, 서병수 부산시장은 2억, 현직 비서실장 이병기도 메모에 이름이 올라있다. 억! 억! 뇌물풍년이다. 이들은 모두 혐의를 부인한다. 오죽하면 ‘목숨을 내놓는다’ ‘1원이라도 받았으면 정치를 떠난다’고 호언장담할까. 피의자로 조사받는 홍준표도 혹시 끔찍한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
줄줄이 터져 나오는 불법과 비리는 이 땅이 마치 범죄의 온상처럼 느껴지게 한다. 어느 곳을 찔러서 고름이 흐르지 않는 곳이 없다. 방위산업과 자원외교의 불법부정은 고전이 되었다. 현직 공군참모총장이 비리혐의로 감사를 받고 있다. 대한민국에서 오염되지 않은 곳이 어디냐. 산부인과 신생아실 밖에 없다는 농담이 서글프다.
■과거에 해답이 있다.
국민들은 지금 성완종 자살의 결말이 어떻게 매듭지어질지 지켜보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미 대충 짐작을 하고 있다. 경험을 통해서다. 과거에도 수없이 발생한 정치판의 각종 비리와 범죄사건은 하나둘이 아니다. 결론은 어떻게 되었는가. 국민이 짐작 한대로다. 국민은 점쟁이가 다 됐다.
흔히 반전카드라고도 하고 꼬리자르기 라고도 한다. 세월호 참사가 터졌을 때 유병언 검거소동이 그렇고, 그의 죽음은 묘약이 되었다. 성완종이 자살을 하고 뇌물비리 관련 메모가 발견되었을 때 이제 뭔가 일이 벌어진다고 국민들은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국민은 기다렸다. 이번에는 무엇이 비리메모를 덮을 것인가. 이완구가 퇴진했고 홍준표에게 화살은 집중됐다. 경험에 의하면 사건은 이렇게 끝날 것이다. 재보선은 승리했고 박근혜 대통령은 건재하다.
이제 어떤 사건이 터져도 걱정 할 것 없다. 국민은 눈 멀거니 뜨고도 당하는 데 거부감이 없다. 세월호 1주년이 되는 날, 바로 1년 전 눈물을 흘리며 죽은 아이들의 이름을 부르던 대통령은 전용기에 올라 장기간 외유 길에 올랐다. 광화문에서는 경찰의 차벽이 쳐졌고 ‘캡사이신’에 국민들은 분노의 눈물을 흘렸다.
도덕적인 어르신들은 대통령이 몸이 아프면서도 나라를 위해 여념이 없는데 시위나 한다고 혀를 찼다. 얼마나 믿음직스러운 어르신들인가.
■불가능한 정권교체
비관론자들이 아니라 낙관론자들도 점차 정권교체의 불가능을 절감하고 있다. 멀거니 눈 뜨고도 도둑맞는 세상이고 도둑을 맞고서도 분한지 모르는 국민인데 무슨 정권교체를 바란단 말인가. 정상적인 국가라면 국정원 댓글 사건이 터졌을 때 문을 닫았어야 하고 세월호 참사가 발생했을 때 정권은 물러갔어야 한다. 성완종 사건을 국민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메모에 적시된 인물들이 아무리 부인을 해도 국민의 대부분이 뇌물을 받았을 것이라 믿고 있다. 여론조사가 아니라도 국민들은 경험에 비추어 그렇게 확신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런 확신이 무슨 소용이 있는가. 죄를 지면 벌을 받아야 하고 잘못했으면 매를 맞아야 한다. 누가 매를 드는가. 검찰인가. 법원인가 국민인가.
마음만 먹으면 무슨 짓이라도 할 수 있는 집권세력이라 국민들은 믿고 있다. 안경을 벗기고 캡사이신을 쏘아대는 정권은 국민에게 절망을 넘어 인간이길 포기하도록 강요한다. 분노할 줄 줄 모르는 게 인간인가. 인간이되 송장이다. 마음 놓고 무슨 짓을 해도 된다. 국민은 이미 포기했다.
■죽은 듯이 살아라
두 눈 멀거니 뜨고 도둑맞은 인간은 못 난 탓이라고 자책한다. 맞는 말이다. 도둑맞았다고 광고하고 다니면 칭찬 듣는가. 가만히 있는 것이 낫다. 공작이라고 하면 박정희 시대 중앙정보부의 전매특허인 줄 알았다. 지금은 공작에 전성시대다.
남북정상 발언록이라는 것이 터져 나왔다. 사실여부는 따질 필요가 없다. 언론이 연일 대서특필이다. 거짓은 진실이 된다. 논두렁에 버린 1억짜리 시계를 비롯한 노무현의 ‘노방궁’ 노건평의 골프장, 거짓은 언론의 날개를 타고 끝도 한도 없이 퍼져 나간다. 거짓임이 밝혀졌을 때는 아무 의미가 없다. 버스는 저만치서 손을 흔든다.
‘총선에서 야당이 이길 것 같은가. 대선에서 승리할 것 같은가. 꿈도 꾸지 말라. 절대로 정권 내놓지 않는다.’
세상을 읽을 줄 안다는 사람들의 얘기다. 왜 이런 끔찍한 얘기가 설득력이 있는가.
‘정권을 뺏기면 모두 죽는다고 믿는 세력들이 무슨 짓은 못하겠는가. 그중에는 언론도 당연히 포함된다’
어렸을 때 들은 얘기다. 뱀은 확실하게 죽여야 한다고 했다. 어설프게 죽이면 다시 살아나 반드시 복수한다는 것이다. 정권을 뺏기면 죽는다는 생각은 지나친 비유인가.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들 얼굴 위에 캡사이신을 뿌려대는 권력을 보면서 너무나 끔찍한 생각이 든다.
서울 광장과 광화문에 모이는 수만 명의 국민은 국민이 아니다. 국민이라 생각한다면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가 있단 말인가.
이완구의 퇴진을 바라보는 충청도 주민들의 눈도 곱지가 않다. 대권반열에 오른 이완구를 제거하기 위한 공작설이 무성하고 홍준표 역시 일부에서는 공작설이 유포된다. 이제 공작은 모든 문제를 단숨에 해결하는 모범답안이 됐다. 그보다 더 편한 해답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실제로 공작이 횡횡하고 확실하게 실효를 거두는 한국정치의 현실은 스스로 파고드는 무덤이 될 것이다.
■공작의 낙원
이제는 세상에 없지만, 정보기관에 고위직에 있던 친구가 있었다. 만나면 늘 냉소다. “야 민주화 운동 한다는 너희들, 야당 하는 인간들 꼴 좀 봐라” 그게 무슨 말인지 안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지금 그 친구가 살아 있다면 뭐라고 할 것인가.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다.
문재인이 광주에 사과하러 갔는데 공항에 플래카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카메라에 잡힌 얼굴들을 보던 한 친구가 내 뱉는 말. ‘저 친구도 저기 꼈구먼’ 정당 안에서의 공작과 음해 모략도 보통이 아니다. 거기까지 타락했으리라고는 생각지 않지만 관악을 재보선에도 공작이 작용했다는 설도 있다. 이유는 너무나 상식과 동떨어진 행동 때문이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그토록 사랑을 받던 한화갑·한광옥·김경재의 오늘을 보라. 사람의 일은 알 수 없다.
주승용의 집요한 행태를 이해하기 힘들다. 공개된 최고회의에서 당대표를 질타했으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러나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 저의를 의심받는다. 모든 책임을 문재인에게 물어 내쫓으면 대안은 무엇인가. 대안 없는 문제 제기는 불평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주승용은 최고위원 값을 해야 한다. 누굴 돕고 있는지 분별은 해야 한다.
그러나 무슨 상관이랴. 우선 제거한다는 것이 급선무다. 김무성이 문재인의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은 새누리당이 가장 잘 안다. 제거할 수 없으면 상처라도 입혀야 한다. 내부 분열을 일으켜라. 언론은 잘 써 줄 것이다. 국민이야 걱정할 거 없다. 가라면 가라는 대로 오라면 오라는 대로 움직인다. 정권 뺏기면 알거지 된다. 정신 차려라.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고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 국민은 하늘이라고 했다. 주인은 서러워 말라. 못 난 주인은 머슴에게 종아리 맞는다. 그러나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일이 있다. 국민이 정부를 믿지 못한다면 어떤 일이 생기겠는가.
나라에 재난이 닥쳐올 때 국민이 팔짱 끼고 있다면 어쩔 것인가. 눈 멀거니 뜨고 자유도 권리도 모두 도둑맞았다. 권리는 지키지 않으면 무용지물이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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