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TV - 이기명칼럼】 ‘절체절명’은 사전에서 지워라
죽으라 뛰었다. 숨이 턱에 찬다. 멈췄다. 막다른 골목이다. 벽이 가로막았다. 나갈 곳이 없다. 끝났다. 과연 끝난 것인가. 벽은 뚫으면 된다. 망치를 들고 내리쳐라. 뚫린다. 이승만 독재도 무릎 꿇었다.
수십 년을 두고 아무 씨나 뿌려도 길러주던 호남의 유권자가 변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이란 갑옷이 뚫렸다. 이제 호남은 순한 양이 아니다. 이건 아니라고 눈을 뜬 것이다. 호남정치인들에게 매를 들어야 한다. 출마가 당선인 줄 아는 버릇을 잘라내야 한다. 호남푸대접에 매달리는 정치인들은 쫓아내야 한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 날
4월 29일 이후 절체절명이란 말을 많이 듣는다. <4 대 빵>으로 패한 새정치민주연합을 두고 하는 말들이다. 문재인의 입에서 나왔다. 비장한 선언이다. 선언 뒤에 각오가 중요하다. 각오는 되어 있는가. 새정치민주연합은 3패(경제, 인사, 부정부패)의 권력과 싸울 불퇴전의 용기가 있는가. 싸울 용기도 없이 당내 계파 싸움만 할 것인가. 절체절명은 자신들이 만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절체절명의 순간을 산다. 다시 시작한다는 문재인의 결연한 선언은 비장했다. 재보선을 다시 복기할 필요도 없다. 아니 하나는 기억해라. 싸우지도 않고 전리품만을 챙기려는 자들은 기억해 두어야 한다.
전쟁에서 내부의 적이 외부의 적보다 더 무섭다. 뒤에서 겨누는 적의 비수는 죽는 줄도 모르고 죽는다. 어쩌면 이것이 진짜 절체절명일지도 모른다.
기다렸다. 아니나 다를까. 언론이야 제 버릇이지만 재보선의 책임을 지고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는 사람이 나왔다. 사무부총장 임명을 두고 당무를 거부했던 사람이다. 수순이 빤히 보인다. 장기에서도 상대가 수를 읽으면 하수다. 당 지도부가 총사퇴하면 당의 문을 닫자는 것인가. 무엇을 노리는 짓거리인가. 국민을 바보로 아는가.
■불퇴전의 결의
관악을에서 치명상을 입은 정동영이 자숙하겠다고 한다. 절체절명을 느낄지도 모른다. 그럴 거 없다. 이제 총선이 1년 남았다. 전주로 가면 된다. 전주가 만만하냐고 화낼 것 없다. 발 달린 짐승이 오는 것이야 어찌 막을 것인가. 명분을 만들어 낼 것이다. 그러면 또 찍어 줄 것이다. 이러면서 무슨 개혁인가. 투표 안 하기는 국민이나 염치는 정치꾼이나 똑같다.
“대파 뽑아낸 듯 속이 다 후련하다” 재보선 후 광주시민들이 한 말이라고 한다. 이해가 간다. 내 주머니 속에 든 떡인 것처럼 생각했던 호남이다. 이정현 이후 다시 한 번 당하는 충격이다. 홍준표에게 ‘홧팅’을 외쳐도 당당한 호남이다. 동교동계가 절체절명의 운명 앞에 선 것인가. 하기 나름이다.
정치인에게 용기가 없으면 숨이 붙어 있어도 죽은 목숨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그 많은 죽을 고비에도 불퇴전의 용기를 잃지 않았다. 김대중 대통령을 보면서 호남사람들은 항상 대의와 명분과 용기를 잃지 않았다. 어떤가. 지금 김대중 대통령이 생존해 있다면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정치인들, 특히 호남 정치인들이 생각해 볼 일이다. 재보선에서 뒷짐 지고 있던 호남 정치인들이 밤마다 김대중 대통령에게 혼이 날 것이다. 한광옥·한화갑·김경재는 할 말이 없는가.
천정배는 호남에서 새로운 인물들을 모으겠다고 했다. 세력화한다는 의미다. 호남신당을 생각하는 것인가. 오만이다. 천정배가 이번 당선으로 눈이 무등산 꼭대기로 올라간 모양이다. 호남의원들이 천정배를 쪼르르 따를 것이라는 순진한 생각은 어디서 나오는가. 호남의 구태의연한 기득권 세력인 새정치민주연합에게 느낀 환멸에서 반사이익을 얻었을 뿐이다. 호남의 지도자가 되려면 아직 멀었다.
■국민의 눈
‘운동경기장에 가면 가장 꼴불견이 해설자다.’ 고인이 되신 유명한 작가의 말씀이다. 요즘 ‘정치평론가’와 ‘시사해설가’가 지천으로 널려 있다. 어느 독설가는 장마철 지렁이 같다는 심한 말까지 한다. 이미 언론이기를 포기한 종편에 나와 시청자를 보는 것인지 아니면 누가 봐주길 바라는 것인지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들의 입에서 ‘절체절명’은 오늘의 단골메뉴가 됐다. 바로 그들의 소망이다. 정치인의 눈은 하나지만 국민의 눈은 수 천만이다. 성완종은 이제 뉴스가 아니다. 이제 국민의 뉴스는 문무일이다. 가장 기대되는 검사 중에 포함되는 문무일 검사. 비록 얼굴 한 번 본 적이 없지만, 가슴으로 기도한다. 지금도 국민은 윤석렬 검사를 그리워한다. 이유를 알 것이다. 문무일에게도 같은 심정이다.
역사에 가정이라고는 없다고 하지만 만약에 정동영이 앞을 보는 조금의 눈이라도 있었다면, 그래서 관악을에서 야당이 당선됐다면 어떻게 됐을까. 마치 당장 죽을 것처럼 떠들어 대는 언론은 지금 뭐라고 했을까. 그런 의미에서 정동영은 야당을 절체절명으로 몰아넣은 위대한 마술사다.
국민은 어떤가. 이제 국민도 스스로 회초리를 자신을 향해 들어야 한다. 투표는 했는가. 투표를 안 하면 야단칠 자격도 없다. 자격도 없는 주인이 머슴을 어떻게 부리는가. 투표를 안 했으면 정치를 욕할 생각도 말라. 자신의 종기부터 도려내라.
절체절명은 비겁한 자의 도피처다. 이를 이겨내는 자가 진정한 지도자다. 5월이다. 6·16의 반란과 5·18의 투쟁. 그리고 노무현이 목숨을 끊은 5월이다.
이기명 팩트TV 논설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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