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 창신초등학교.-
70년 넘어, 그리움의 편린.
이 기 명(팩트TV논설위원장)
그렇게 넓던 운동장이 손바닥만 하다. 그렇게 크던 건물이 요렇게 작다니. 그 때 교실에는 70명이 넘는 꼬맹이들이 수선을 떨었다. 그 때 없었던 건물들이 요란하다. 1948년 창신초등학교. 그 때는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였다. 내가 뛰어 놀던 운동장. 당시 축구와 송구를 잘 하던 나는 운동장을 누비며 살았다. 이제 70여 년 전으로 뒤돌아 간 운동장에 80이 넘은 늙은이가 서 있다.
기억을 더듬었다. 기억이 되는가. 아 기억이 난다. 가사가 틀릴지 모르지만 기억 나는대로 쓴다.
-동으로 동으로 자꾸 가면
동해 바다가 보인다네.
동대문 나서면 우리학교.
햇님이 앞장 선 우리 앞 길.
창신 창신 우리 창신.
잘 배우자 동무들아.-
창신초등학교 교가 1절이다. 가사가 틀렸어도 용서하라. 31회(1949년?) 졸업생 할아버지 선배가 기억해 낸 교가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뺨으로 흘러내리는 뜨거운 액 채. 눈물이다. 왜 눈물이 흐르는가. 아니 눈물이라도 흘리는 게 정상이 아닌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오늘 이 시간. 그래 흘러라 눈물아. 마음놓고 흘러라.
### 반가운 동창들. 이래서 선거가 좋다.
늙은 동창들과 만나 차를 마신다. 창신초등학교 동창들이다. 새파란 풀 잎 같던 꼬맹이들이 쪼글쪼글해졌다. 별로 만날 기회도 없는 친구들이 바깥바람을 쐰 것이다. 이것도 선거 덕인가. 모두 나를 쳐다본다.
‘아무래도 네가 제일 잘 알겠구나. 어떻게 될 것 같으냐. 종로가 정치1번지라고 야단들이던데.’
선거 얘기는 별로 하지 않았다. 그리고 오고 간 모든 얘기를 다 말 할 수도 없다. 다만 한 가지.
“<광주5.18항쟁>은 민주화 운동으로 엄연한 역사적 사실인데 ‘사태’가 뭔가. 정직해야지.”
또 한 친구가 입을 열었다. 이른바 친노와 친문의 이야기다. 여당 후보에 대해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답할 가치도 없었지만 한마디 했다. ‘유치하다’는 한마디다. 선거에는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하기 마련이지만 합리적 상식은 필요하다. 제 발등 찍는다.
### 공정하게 경쟁해라.
선거에는 자신이 지지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정당도 마찬가지다. 어느 나라나 다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러나 지지와 반대가 마치 원수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후보자와 정당의 정책이 판단의 기준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과거 이승만 정권 때는 막걸리 선거가 있었고 고무신 선거가 있었다. 아예 투표함을 바꿔치기한 선거도 있었다. 그런 선거를 꿈꾸는 정신병자는 없을 것이다. 공정한 경쟁이다.
### 사랑한다. 사랑한다.
이 거리 저 골목 다니면서 만난 꼬맹이들이 귀엽다. 거의 다 창신초등학교에 다닌다고 했다. 내 후배다.
“할아버지가 너희들 선배다”
똘망똘망 두 눈이 커진다. 저 노인네가 창신학교를 다녔다니. 믿을 수 없는 모양이다. <동으로 동으로 자꾸 가면 동해바다가.> 교가를 흥얼거리니 얼굴이 환해진다. 거기까지다. 참 좋다. 죽을 때도 생각 날 기억이다.
선거가 없었으면 여길 다시 와 보지 않고 세상을 떠났을 것이다. 다시 운동장에 섰다. 학교건물을 올려다본다.
내 눈에는 이 세상 어느 건물보다도 아름다운 건물이다.
이 기 명(팩트TV논설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