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더 한번
저 산에도 까마귀 들에 까마귀
서산에 해 진다고
지저귑니다
앞 강물 뒷강물
흐르는 물은
어서 따라 오라고 따라 가자고
흘러도 연달아 흐릅디다려
### 살아 다시 보고 싶은 친구 시인들.
머리와 손에 쥔 펜 한 자루. 시인이 가진 전부다. 시인들은 나라를 사랑했다. 맨몸으로. 독재에도 항거했다. 일제 강점기에 시로서 일제에 저항했던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를 나는 최고의 애국시로 생각한다. 그의 시는 대구 달성공원에 <시 비>로도 기억되고 있다. 대구에서 잠시 군대생활을 할 때 음악다방 <녹향>과 달성공원을 많이도 찾았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이 상 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쁜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 기름을 바른 이가 지심매던 그 들이라도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찐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쌈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우스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띄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명이 지폈나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분단과 동족상잔의 비극을 통곡한 우리들의 시인을 기억하자. 광주의 시인 박봉우와 부산에 시인 이현우. 나는 그들의 처절한 시를 기억하는 것으로 늘 고마움을 표시했다. 그들에게 지역감정은 없었다. 아아 보고 싶다.
-휴 전 선-
박 봉 우.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저어 서로 응시하는 쌀쌀한 풍경. 아름다운 풍토는 이미 고구려 같은 정신도 신라 같은 이야기도 없는가. 별들이 차지한 하늘은 끝끝내 하나인데…… 우리 무엇에 불안한 얼굴의 의미는 여기에 있었던가.
모든 유혈은 꿈같이 가고 지금도 나무 하나 안심하고 서 있지 못할 광장. 아직도 정맥은 끊어진 채 휴식인가, 야위어가는 이야기뿐인가.
언제 한번은 불고야 말 독사의 혀같이 징그러운 바람이여. 너도 이미 모진 겨우살이를 또 한번 겪으라는가 아무런 죄도 없이 피어난 꽃은 시방의 자리에서 얼마나 더 살아야 하는가 아름다운 길은 이뿐인가.
산과 산이 마주 향하고 믿음이 없는 얼굴과 얼굴이 마주 향한 항시 어두움 속에서 꼭 한번은 천동 같은 화산이 일어날 것을 알면서 요런 자세로 꽃이 되어야 쓰는가
-끊어진 한강교에서.-
이 현 우.
그 날,
나는 기억에도 없는 괴기한 환상에 잠기며
무너진 한강교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미 모든 것 위에는 낙일(落日)이 오고 있는데
그래도 무엇인가 기다려지는 심정을 위해
회한과 절망이 교차되는 도시,
그 어느 주점에 들어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나의 비극의 편력은 지금부터 시작된다.
취기에 이즈러진 눈을 들고 바라보면
불행은 검은 하늘에 차고,
나의 청춘의 고독을 싣고
강물은 흘러간다.
폐허의 도시 <서울>
아, 항구가 있는 <부산>
내가 갈 곳은 사실은
아무 데도 없었다.
죽어간 사람들의 음성으로 강은 흘러가고
강물은 흘러가고,
먼 강 저쪽을 바라보며
나는 돌아갈 수 없는 옛날을 우는 것이다.
옛날.
오, 그것은 나의 생애 위에 점 찍힌
치욕의 일월(日月)
아니면 허무의 지표, 그 위에
검은 망각의 꽃은 피리라.
영원히 구원받을 수 없는 나의 고뇌를 싣고
영원한 불멸의 그늘 그 피안으로
조용히 흘러가는 강.
우리는 4.19를 잊지 못한다. 독재에 저항한 젊은 대학생들이 독재의 총탄에 허망하게 쓰러졌다. 가슴에서 피를 쏟으며 죽어가는 젊은 오빠들을 눈물로 바라 본 초등학생. 당시 수송초등학교 4학년이던 강명희는 어린 가슴으로 이렇게 시를 썼다.
<오빠와 언니는 왜 총에 맞았나요>
강 명 희
아! 슬퍼요
아침 하늘이 밝아오며는
달음박질 소리가 들려옵니다.
저녁 노을이 사라질 때면
탕탕탕탕 총소리가 들려옵니다.
아침 하늘과 저녁 노을을
오빠와 언니들은 피로 물들였어요.
오빠 언니들은
책가방을 안고서
왜 총에 맞았나요
도둑질을 했나요
강도질을 했나요
무슨 나쁜짓을 했기에
점심도 안먹고
저녁도 안먹고
말없이 쓰러졌나요
자꾸만 자꾸만 눈물이 납니다.
잊을 수 없는 4월 19일
그리고 25일과 26일
학교에서 파하는 길에
총알은 날아오고
피는 길을 덮는데
외로이 남은 책가방
무겁기도 하더군요
나는 알아요 우리는 알아요
엄마 아빠 아무말 안해도
오빠와 언니들이 왜 피를 흘렸는지를
오빠와 언니들이
배우다 남은 학교에서
배우다 남은 책상에서
우리는 오빠와 언니들의
뒤를 따르렵니다.
박정만 시인은 소설가 한수산의 전두환 시절 중앙일보 연재소설이 불온하다며 보안사에 걸렸을 때 한수산과 친하다는 이유만으로 고문을 당했다. 그 후유증으로 갔다. 화장실에서 삶을 마감했다. 죄 없는 착한 시인이 이렇게 죽어도 되느냐. 기가 막힌다.
법이 없어도 살 착한 시인의 마지막 시다. 제목도 종시(終詩)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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