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수미의 눈물. 희망의 눈물.-
이제 국민의 마음을 알았는가.
이 기 명(팩트TV논설위원장)
(상략)
“가장 힘들었던 게, 나 자신이 용서가 안 되는 거였어. 안기부에 끌려가 고문을 한 20일 받는데, 원래 우리가 약속한 게 묵비권을 행사하자는 거였어. 근데 일주일쯤 버티다 무너졌어.”
-고문이 심했구나.
“사람을 밟는 거지. 굴리면서 밟든가 가랑이 사이를 기게 하든가, 물고문에 손가락 꺾기… 그때 허리를 다쳐서 허리를 내내 못 썼어. 21명이 3교대로 잠을 안 재우면서 취조를 했어. 근데 어느 날 그 21명이 다 철수를 하는 거야. 그리고 세 명의 남자가 들어왔어.”
-정규 조에 없던 사람들이?
“모르는 얼굴들. 그때 우리한테 군복 같은 걸 입혀놨었는데 지하2층으로 끌고 가서는 머리채를 끌고 벽에다 치는데 단추가 뜯기고… 알몸이 드러났어. 세 남자는 술에 취해 있었고. 성폭행을 하겠다는 명백한 암시였지. 너무 무서웠어. 내가 거기서…무너졌어.”
-넌 지금껏 그런 얘길 한 적 없어.
“얘기 못했지. 그 일이 있고 타협을 한 게 뭐냐면 내가 스스로 불지는 않지만 다른 동료들이 얘기한 것에 ‘예스’는 한다…였지. 그게 두고두고 스스로 용납이 안 돼서 괴로웠어. ‘너, 민주주의를 위해 죽겠다고 하지 않았냐? 근데 성폭행이 두려워서 입을 여는구나….’나와 친구들을 무너뜨린, 짐승의 시간이었어.”
한겨레신문에 실린 은수미의 인터뷰 중 일부다. 긴 인터뷰를 읽으며 나는 몇 번이나 눈을 감았고 입에서는 아 아 하는 신음이 새어 나왔다. 인간은 이렇게 잔인할 수 있고 이렇게 강할 수도 있구나. 은수미의 필리버스터 생방송을 들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방송을 듣는 동안 은수미의 얼굴에 겹쳐서 수 없는 얼굴들이 지나갔다.
김대중 노무현 김근태 장준하 최종길 박종철 전태일 권인숙 그리고 부산 ‘부림’사건 때 행방불명된 자식들을 찾아 부산 해변을 헤매던 어머니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일이 거명할 수 없는 사람들, 독재의 희생자들이다. 그리고 기막히게 이근안의 얼굴도 김형욱의 얼굴 이후락의 얼굴도 보였다.
### 국민이 필리버스터로 나섰다.
민심은 천심이란 말을 나는 믿는다. 자신이 하늘인 듯 착각과 망상 속에서 국민을 억압하던 독재자들은 모두 제 명을 다 살지 못하고 비명에 갔다. 일일이 손으로 꼽을 수도 없다. 독재자들에게 인간의 목숨은 어떤 것인가. 새삼스럽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필리버스터’란 의사진행 방해 행위다. 요즘 필리버스터가 국민들의 가슴을 꽉 채우고 있다. 감동으로 꽉 찬 가슴도 있고 분노로 부글거리는 가슴도 있을 것이다. 바로 이 필리버스터를 19대 선거공약으로 약속한 것이 새누리당이라고 하면 얼마나 대단한 ‘아이로니’인가. 그 때 오늘을 생각도 못했을 것이다.
야당의원들의 필리버스터를 들으면서 저토록 할 말 잘 하는 의원들이 왜 못된 새누리당 정치버릇을 고쳐놓지 못했는지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아무리 잘못된 테러방지법 비판을 한들 몇 시간씩 필리버스터를 계속하는 야당의원들의 올곧은 소리를 따라 갈 수 있겠는가. 특히 은수미 의원의 필리버스터를 들으며 내가 살아 온 인생이 너무나 부끄럽다. 일제를 거처 한국의 온갖 독재를 다 겪어 온 인생은 바로 시궁창이었기 때문이다.
### 은수미의 눈물. 또 다른 희망.
오마이뉴스가 정리한 간첩 조작 사건, 불법 도·감청 및 시국 사건 등은 수도 없이 많다. 여기에는 경찰·보안사·검찰 등이 주도한 것은 제외했다. 5.16 군사반란 이후다.
1961년 조용수 민족일보 사건
1964년 인혁당 사건
1965년 경향신문 매각 사건(이준구 사장 간첩과 연루 조작)
1967년 이수근씨 및 처조카 배모씨 간첩 조작 사건
1969년 동백림 사건
1970년 유럽 간첩단 조작 사건
1973년 최종길 서울대 교수 간첩 조작 및 고문치사 사건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1974년 민청학련 사건
1976년 제주 어부 간첩 조작 사건
1977년 재일교포 간첩단 조작 사건
1980년 김기삼 간첩 조작 사건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1981년 1, 2차 진도 간첩단 조작 사건
1982년 오송회 사건
1983년 최양준씨 간첩 조작 사건
1984년 이장형 간첩 조작 사건
1986년 김양기 간첩 조작 사건
1987년 수지김(김옥분) 사건
죄 없는 국민에게 없는 죄를 뒤집어 씌워 간첩을 만들고 고문 치사한 것은 그자체가 바로 테러며 이를 방지하기 위한 범국민적인 테러방지법 반대는 반드시 필요하다. 마음만 먹으면 백을 흑으로 만들 수 있는 ‘엿장수 테러방지법’은 어떤 일이 있어도 막아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에서 법이 없어서 테러를 못 막는다는 것인가. 웃기는 얘기지만 ‘국가테러대책위원회’라는 것도 있고 의장이 국무총리다. 단지 총리 자신이 의장인지조차 모르는 한심한 위원회다. 이러면서 무슨 테러방지법인가.
은수미 의원은 안기부에서 모진 고문을 당한 사람이다. 그가 필리버스터를 하고 있는 동안 듣고 있는 국민들은 많은 눈물을 흘렸다. 공감의 눈물이고 증오의 눈물이다. 또한 희망의 눈물이기도 하다.
독재정권이 말하든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집단이라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한국이 테러방지법을 만들어야 할 정도로 다급할 상황이었다면 법이 없어서 방지 못한 테러는 어떤 것이었는지 국민에게 밝혀야 한다. 북한이 핵실험을 했기 때문에 테러방지법이 필요하다면 테러방지법으로 핵실험을 막을 수 있다는 생각인가.
테러방지법은 정부가 일방적으로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 수 있는 법이 아니다. 국민들은 그 동안 너무나 많은 거짓날조에 속았다. 이제는 더 속지 못하겠다는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누구라도 테러위험가능자가 되어 자유가 박탈될 수 있는 악법은 절대로 받아드릴 수가 없다.
“사람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밥 이상의 것을 배려하는 것이 사람이고, 그래서 헌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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